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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법해석과 정당화

    변종필 교수(동국대 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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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Ⅰ.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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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해석이란 (불명확한) 법문의 의미에 관한 이해가 문제되는 경우 그 의미를 해명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과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해석에는 해석자의 ‘선이해’(개인적 경험이나 특성, 윤리적·정치적 태도 등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제반 조건)가 불가피하게 작용한다. 선이해가 법해석(및 법적 결정)에서 법언어의 불명확성과 연계하여 초래하는 문제점에 관해서는 익히 미국의 법현실주의가 잘 보여준 바 있다. 이에 법해석(및 법적 결정)의 타당성을 확보하자면 선이해의 부정적 작용에 대한 합리적 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이해는 그 자체 직접적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단지 우회적 방식, 즉 법해석 및 적용의 ‘과정’을 심사하는 ‘절차적 방식’을 통해서만 통제될 수 있다.

     

    나아가, 법해석은 법규의 의미에 관한 해석자의 단순한 주관적 이해, 즉 해석자 자신과의 사적인 대화과정(독백)으로 파악될 수는 없다. 일정한 법률이나 법규에 관한 준수가 상호주관적인 것이라면, 준수해야 할 행위의 대상범위를 정하는 일, 즉 법해석 역시 상호주관적인 것으로 파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법해석은 사회적 실천으로서, 법문에 관한 해석자의 주관적 이해를 넘어 다양한 해석가능성들을 함께 심사함으로써 해석자의 해석을 정당화하는 상호주관적인 규범적 활동이다. 이에 해석자는 해석활동에서 상호주관적인 언어사용규칙(해석카논을 비롯한 논증 형식이나 규칙)에 기초하여 자신의 법해석(및 법적 결정)을 정당화해야 하는 요청에 직면한다.


    Ⅱ. 해석카논의 활용과 정당화방법


    1. 형법해석에서 해석카논의 역할

    해석카논은 통상 학계나 실무에서 형법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널리 활용하고 있는 해석방법(문리해석, 주관적 해석, 체계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 등)이다. 이들 방법은 형법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한 상호주관적인 논거형식이다. 따라서 일정한 형법해석의 적절성 여부는 그 해석이 이러한 형식들에 기초하고 있는지, 나아가 이들 형식을 활용함에 있어 요구되는 정당화요청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해석자는 자신의 형법해석이 정당하다는 요청을 제기하려면 불가피하게 이들 형식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 형식은 법해석의 합리성을 보장해주는 절차로서의 성격을 띠며, 이로써 법해석의 정당성 문제는 요컨대 이들 형식을 활용한 절차적 정당화의 문제로 귀착된다.


    2. 해석카논의 활용과 논증


    (1) 해석카논 활용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

    대법원이 형법해석에서 제시하고 있는 ‘명시적’ 기준으로는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형법해석은 문언에 따라 엄격하게 해야 하며, 법문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률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대법원은 형법해석을 정당화함에 있어 문리해석을 주된 해석방법으로 삼으면서 목적론적 해석방법도 함께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단은 외형상의 표현에만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법원은 이들 해석카논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체계적 해석카논, 즉 때로는 좁은 의미의(가령, 관련조문을 전체적?종합적으로 해석하는 방법), 또 때로는 (헌법합치적 해석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의, 경우에 따라서는 목적론적 해석까지 아우르는 광의의 체계적 해석방법도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해석카논 활용상의 문제상황과 추가적 정당화

    형법해석을 정당화함에 있어 일정한 해석카논(들)을 활용한다고 하여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단일한 해석카논을 활용하는 경우에도 다른 해석카논을 활용한 다른 해석이 전개될 수 있음은 물론, 추가적인 다양한 문제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제상황으로는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해석카논 자체에 내재한 문제상황이다. 모든 해석카논은 그 자체 일정한 전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가령 목적론적 해석카논에서는 당해 법규가 지향하는 목적이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역사적 입법자의 의사를 원용하는 경우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해석자는 일정한 근거제시를 통해 그러한 목적 혹은 의사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할 요청에 직면한다. 이처럼 일정한 해석카논이 법해석의 정당화근거로 작용할 수 있으려면 그 안에 포함된 일정한 전제들을 충족시킬 것이 요구된다. 이는 해석카논을 활용한 해석의 정당화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추가적인 혹은 제2의 정당화요청이다.

     

    둘째, 해석카논들 간의 우선순위 문제이다. 이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하지만, 지금으로선 어느 나라의 법체계를 보더라도 해석카논들 간의 우선순위를 규정하는 메타규칙은 없는 실정이다. 향후에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메타규칙이 제시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로서 해석자들은 적어도 이 문제로 인한 압박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셈이다.

     

    셋째, 서로 다른 해석카논을 활용함으로 초래되는 해석의 충돌상황이다. 만일 여러 해석카논을 활용하여 일정한 법해석을 정당화할 수 있다면, 이 경우 그 해석이 갖는 정당성의 정도는 더 강력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해석자들이 각자의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한 해석카논이 서로 다른 해석(및 해석결과)을 낳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해석자가 자신의 해석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이 경우 해석자에게는 자신의 해석을 타방의 해석보다 우선시하는 이유를 추가적인 근거제시를 통해 해명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


    (3) 문제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대응방식

    이들 문제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대응은 최근의 개선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할만한 수준의 것이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예컨대, 중요한 문제점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통상 형법해석의 한계기준으로 삼고 있는) ‘법문의 가능한 의미’를 원용하는 경우의 문제점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공히) ‘법문의 가능한 의미’라는 동일한 기준을 활용하면서도 전혀 상반된 해석을 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그 기준이 형법해석의 실천적 한계를 제시해주는 적절한 척도로 기능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이로써 향후 합리적 논증을 강화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추가적인 정당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별도의 근거제시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대법원은 ‘입법의 목적이나 취지’(목적론적 해석카논)를 정당화 근거로 활용하면서도 이를 단순히 원용하기만 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는 (대체로) 논증하지 않고 있다. 입법의 목적이나 취지가 무엇인지는 때때로 매우 분명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하며 달리 파악될 수도 있다. 나아가, 그러한 해석과정에는 해석자의 선이해를 이루는 비합리적 요소나 법정책적 입장 등이 암암리에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근거제시가 없는 한, 그러한 식의 법해석에 대한 타당성 의문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그 밖의 논거형식 활용과 관련된 문제점이다. 예컨대, 대법원은 형법해석의 정당화 근거로 때때로 ‘일반 국민의 법감정’ 혹은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정’ 등을 원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히 주관적이고 고도로 문화적인 이러한 모호한 일반개념을, 형법해석을 정당화하는 상호주관적인 논거형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또한 대법원은 ‘처벌의 공백’, ‘처벌필요성’ 혹은 ‘불처벌의 불합리성’을 논거로 원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거는 (약한 의미의 결과지향적 논거로서) 죄형법정원칙의 법치국가적 요청을 그르칠 위험성을 안고 있어, 설령 이를 법해석의 근거로 사용하더라도, 그것이 법해석의 실질적 정당화근거로 작용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Ⅲ. 나가며


    요컨대, 형법해석의 정당화의 핵심은 해석자가 상호주관적인 논증 규칙과 형식을 활용하여 근거제시를 충실하고도 섬세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는 형법해석자가 단순히 현재보다 ‘논증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법해석을 정당화하려면 그와 같은 식의 논증이 필수적임을 뜻한다. 법해석이 해석자의 단순한 주관적인 이해를 넘어선 상호주관적인 규범적 활동임을 감안할 때, 법해석의 정당성과 합리성, 이로써 법의 객관성은 그러한 요청에 얼마만큼 충실하게 부응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호주관적인 참여와 소통이 중시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그에 따른 법치국가의 요청에 비추어 볼 때, 법해석자가 해석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상황에 솔직하게 반응하여 이를 합리적 근거제시를 통해 (가급적) 투명하고 충실하게 밝힘으로써 자신의 법해석(및 법적 결정)을 정당화하는 일은 불가피한 책무이자 과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