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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법조회고록] 이병호 변호사 ④ 변호사 생활의 反省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정직과 성실로 일관해서 살아가 는 것만이 자기 자신의 인생을 풍성하게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 생 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그 실천 이 참으로 어렵다. 論語의 한 구절에"증자가 말 하기를 내가 날마다 세 가지 나 자신을 살피는데, 사람을 위하 여 꾀함에 충실치 못하였던가, 벗과 사귀는데 믿음이 없었는 가, 배운 것을 익히지 못 하였는 가."라는 부분이 있다. 나는 누 구나 이 부분을 거듭 새겨볼 필 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늘 자 신을 반성한다. 나는 직업이 변호사인지라, 수임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의 뢰인의 승소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고, 사건의뢰인도 자신의 승소를 바라고 변호사를 선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법조회고록] 이병호 변호사 ③ 隨想集『法窓散稿』

    1977년1월, 정읍지원장에서 광주지법부장으로 온 무렵, 평 소 다정하게 지내오던 金載周 광주고법 부장이 춘천지법원 장으로 승진,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他界하였다. 허무 하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 다. 나도 언제 갑자기 죽지 말 라는 법이 없다. 지금까지 신문 잡지에 기고했던 글들을 책으 로 만들어 내가 이 세상에 다녀 간 흔적이라도 남겨 두자. 서둘 러 만들어 낸 수상집이『法窓散稿』다. 광주관광호텔에서 출판기념 회를 가졌고, 많은 분들의 축하 를 받았다. 당시 李英燮대법원 판사는 다음 같은 書評을 기고 했다. 「지난 1월 현재 光州地方法院部長判事로 계시는 李丙皓 선생께서는 法窓散稿라는 이름 을 붙여서 과거 20여 년에 걸쳐 서 쓰신 글들을 모아서 예쁜 장 정으로 아담한 隨想集을 出

    [나의법조회고록] 이병호 변호사 ② 판사시절의 회고

    이 무렵 나는 주기적으로 충 정로 용아빌딩에 있는 문화방송 국에 나아가 일반서민들의 법률 문제에 관한 상담에 출연했다. 그로 인해서 일반서민대중이 알 기 쉽도록 쓴 법률상식에 관한 책이 필요하다고 통감했다. 이 로부터 밤이면 늦도록 사건 줄 거리를 이야기처럼 쓰고 이에 대한 법률적 해답과 판례를 소 개한『생활인의 법률상식』이란 책을 펴내게 되었다. 그 당시는 일반인이 친숙하게 읽기 어려운 전문적 법률서적 말고는 아무나 이해하기 쉬운 법률 책이 귀하 던 때라 독자들의 호응이 좋았 다. 이에 힘입어 법률상식의 분 량을 늘리고 분야별로 나누어 써서『알기 쉬운 재산·가족법 해설』『, 알기쉬운 형벌법해설』 을 펴냈다. 이 책에 대해서 그 당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李漢基박사는 다음 같은 書評을 기고했다. 「요

    [나의법조회고록] 이병호 변호사 ① 판사시절의 회고

    대한민국 정부수립후 판검사 나 변호사 자격취득 경로를 보면 일제시대의 고등문관시험 사법 과 합격, 조선변호사시험 합격, 간이법원판사임용시험 합격, 판 검사특별임용시험 합격, 사법요 원양성소입소시험 합격, 군법무 관임용시험 합격 등 다양했다. 나는 제8회 고등고시사법과에 합격한 후 사법관시보 임용을 바 랬지만 이루어지지 못해서 수습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일년의 수 습기간을 거쳐 1959년7월29일 수습변호사 실무고시에 합격, 변 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바로 변호 사 개업을 할만한 형편이 아니었 고 그러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군법무관을 자원 하기 위해서 전북병사구사령부 를 찾았다. 내 말을 들은 담당자 의 말은 입대 대상자도 기피하는 데 연령초과로 입대대상이

    [나의법조회고록] 양병호 변호사 ② 변호사의 보람(下)

    6·25 사변이 일어나고 얼마 가 지나 동네에 인민위원회 등의 기구가 생겨났을 때 하루는 어머 님이 우리 집에 쌀이 많이 있다는 허황된 소문이 동네에 돌고 있다 고 걱정하기에 나는"이곳 인민 위원회 위원장이 조유성이라고 하는데 그 조유성이는 6·25사 변전 치안유지법(6·25사변 전 에는 이 법 위반 형사사건이 당시 전체 형사사건의 태반 이상을 점 하고 있었음) 위반 사건으로 서울 형무소에 구속되어 있을 때 내가 그 사람의 변호를 맡아 여러 번에 걸친 면회와 재판 때 성심성의껏 열심히 도와 주었으니 만약 헛 소 문이 인민위원회에 알려지면 그 사람을 찾아가 얘기하면 무고함 을 밝혀줄 것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내무서에 잡혀가게 되자 어머님이 내무서에까지 따라와 "우리 아들은 아무죄도

    [나의법조회고록] 선우종원 변호사 ④ 제주도 비상사태

    전쟁의 전세는 날로 긴박해져 북괴군은 대구 포위작전에 나섰다. 대구는 당시 유엔군사령부를 비롯해 정부의 각 행정기관, 군수 물자의 보급창과 함께 동부비행 장이 있었다. 만일 대구가 적의 수중에 들어 간다면 정부는 제주도로 가야 할 판국이었다. 이미 일부 참모들이 제주도로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는 루머 가 돌 정도로 정세는 날로 심각 해졌다. 그런데 천도 후보지로 지목되 어 온 제주도에 난데없는 비상사 태가 벌어졌다. 8월21일 새벽2시에 조병옥 내 무장관의 긴급 등청명령이 내려 졌다. 난 당시 치안국 정보수사과장 이라는 특수한 자리에 있었던 만 큼 조 장관과도 수시로 만났었다. 내무장관실에 들어가니 신성 모 국방장관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얼굴이 심각하

    [나의법조회고록] 선우종원 변호사 ③ 사상검사 체포령과 피난생활

    1950년 6월25일 새벽. 38선을 밀고내려온 북괴군은 전차부대를 앞세워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는 아군을 밀어내고 단 숨에 수도 서울을 향해 맹진격을 해왔다. 당시 정부에서는 수도 사수를 다짐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라디 오를 통해"사랑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나를 믿으십시오"라며 집을 지키라는 방송을 했다. 국회에서도 수도사수 결의안 을 통과시켜 민심수습에 안간힘 을 썼으나 밀려오는 피난민의 입 에서는 한결같이'절대적으로 우 세한 북괴군'이라는 말뿐이었다. 27일, 저녁 나는 내 담당인 성 동경찰서를 둘러보니 이미 텅비 어 있었다. 급히 나는 육군본부로 차를 몰았으나 그곳도 마찬가지 로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있었 을 뿐 어디에서도 사람들의 모습 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

    [나의법조회고록] 선우종원 변호사 ② 남로당 총책 김삼룡, 정치고문 이주하 체포

    나는 일본 출장 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남로당 총책인 김삼룡과 정치고문인 이주 하의 행방을 찾던 중 1950년3월초 당시 김삼룡의 비 서인 김형륙을 체 포했다. 주 1회 접 선하기로 되어 있 는 필동'가두연 락선'에서 잡혀 우리 손으로 넘어 온 김형륙은'모든 일이 끝났다' 는 듯 자기가 알고 있던 비밀을 하 나 둘씩 털어 놓기 시작했다. 김의 진술로 드러난 김삼룡의 아지트는 수사진의 습격을 받았던 효제동 반찬가게를 비롯해서 이태 원, 공덕동 등 일곱군데나 됐다. 수사진은 낮에는 농림모에 수염 을 붙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김삼룡의 생활을 보고 아연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아지트 를 지키고 있는 주인은 모두 여인으 로서 다시 말해 김삼룡의 소실 노릇 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의법조회고록] 선우종원 변호사 ① 북로당의 사살검사 암살지령

    1950년 남로당 중앙당부에 대 한 본격적인 수사를 위해 서울시 경사찰과 홍만표 경위가 특별수 사반을 만들어 수사에 착수할 무렵이었다. 당시 서울고검 검사 겸 서울지 검 검사로 근무하던 나는 일본과 홍콩, 하와이의 한국공관에 침투 해 있던 이북 정치보위부 공작원 이거나 이들에게 포섭되어 있다 는 직원의 명단을 입수, 그 명단 을 가지고 외무부로 달려갔다. 그 때가 1월10일 경이었다. 장관 비서실장 유태하씨는 내 보 고를 듣고 허둥지둥 어디론가 사라 졌다. 한시간이나 기다렸을까? 다시 돌아온 유 실장은 퉁명스럽게 "일본대표부에 공산당이 침투했다 면 빨리 잡아와야 할 것 아니오. 여 권과 비용 전부는 부담할 터이니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준비를 하시 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나의법조회고록] 김일두 변호사 ① 언론사·야당 간부 심야폭파테러 사건

    언론사 간부들 집 잇따라 테러…야당·언론 탄압사건으로 정치 문제화 군인을 용의자로 지목, 본격 수사하자 검사 집에 기왓장이 날아들기도 범인 잡지 못한 채 수사본부 10여일 만에 해체, 사건은 영영 미궁 속으로 1965년9월8일 자정,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 대리였던 변영권씨 집에 정체모를 폭발물이 터져대문이 부서졌다. 또 거의 같은시각 동아방송 제작과장 조동화씨 집에도 괴한이 나타나 짚차로조씨를 납치해 갔으며, 민주당 당무위원장 유옥우씨 집 울타리에서도 폭발물이 터져 아이들 공부방과 가정부방의 유리창 4

    [나의법조회고록] 김일두 변호사 ③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下)

     文世光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는 수사진 외 통역관의 공로도 무척 커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돼 74년12월20일 서울구치소서 교수형 집행  집행전 文世光 "조총련에 속은 바보"였다며 눈물… 妻 재혼토록 유언 文으로부터 범행일체를 자백받는데는 鄭 검사의 뛰어난 수사력뿐만 아니라 수사 통역을 맡은 조윤제 통역관의 공로 또한 적지 아니하였다. 통역을 맡은 조씨는 한미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이었지만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 중국어 할 것 없이 능통하여 그 당시는 검사들 전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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