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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법창

    월요법창

    오늘도 걱정

    오늘도 걱정

    3년 전 입적하신 보성 큰스님의 생전에 인연이 닿아 뵌 적이 있다. 법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을 아시곤, "법의 주인이 되어야겠느냐, 법의 심부름꾼이 되어야겠느냐?"라고 물으셨다.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뭐라고 법의 주인이겠는가. 당연히 심부름꾼이겠지' 생각했다가, '법의 지배는 법이 바른 법일 때에만 정당하지 않은가. 마냥 법의 심부름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생각했다. 그러다 '아. 스님 말씀이니 부처님의 법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럼 내가 주인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잠시 출제자의 의도를 떠올렸다가, '속세의 법이든, 부처님의 법이든, 내가 주권자이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라면 주인이 못 될 것은 무엇인가.' 출제자가 판 함정을 의심했다. 이제 와 되돌아보면, 스님께서 대답을 기대하고 물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날개를 잃고 (심지어 옷도 잃고 알몸 상태로) 땅에 떨어졌던 천사 미카엘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다.”, “사람에겐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라는 답을 내어놓는다(왜 천사가 땅에 떨어졌는지, 왜 이런 답을 하는지는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아주 재미있을 뿐 아니라 감동적이기도 하고, 다른 좋은 단편들도 실려있으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검사인 나에게도 물어보고 싶어졌다. “검사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검사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

    글쓰기의 재미와 의미

    글쓰기의 재미와 의미

    월요법창에 글을 기고한 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판결문이나 논문 외에 글을 써본 경험이 많지 않았던 필자로서는 주제 선정부터 고민이 많이 되었고, 지금까지 재판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여러 법조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예전에 동료 판사들과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판사들마다 매번 소개하는 책의 장르가 일관된 것이 흥미롭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시집이나 소설을 추천하는 분, 자기개발서를 추천하는 분, 과학 서적을 추천하는 분은 매번 비슷한 종류의 책을 추천했었는데,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첫 기고문에서도 썼지만, 좋은 판사가 어떤 판사인지는 지금도 유효한 고민이다. 사회는 많은 사건을

    내 인생의 사다리

    내 인생의 사다리

    30년도 더 지난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절의 경험을 지금과 비교하며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필자가 법대를 입학하던 시절에는 사법시험 공부 과정을 적은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또는 '어머니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합격기가 있었다. 이러한 제목의 합격기를 기억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고, 필자 역시 합격기를 읽으며 합격만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수험생활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법조인이 되는 시험을 두고 흔히들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고 한다. 합격이 출세를 보장하는 시기도 있어서인지 이를 사다리에 비유한 것 같다. 사다리의 본래 용도는 집이나 건설현장에서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위치한 장소에서 작업할 때 사용하겠지만,

    참을 의무, 알 권리

    참을 의무, 알 권리

    얼마 전 남부 지방 일대 양봉 농가의 벌통에서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던 중,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저술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연상시킨다는 부분에서 호기심이 동했다. 책의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새소리도 벌소리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없는 죽음의 계절이 머릿속에 펼쳐지는 순간 책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벼운 인문학적 저술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무려 60년 전에 발간되어 봄만 되면 언론을 타는, 나만 모르는 환경학 고전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책은, DDT 등 화학적으로 합성된 살충제, 제초제가 어떻게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을 파괴하고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며,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몸에 축적되어 때로는 급속하게 때로는 세대를 거쳐 서

    김 검사의 지방 근무 이야기

    김 검사의 지방 근무 이야기

    월요일 아침 5:30 알람이 울린다. 아내가 깨기 전 재빠르게 알람을 끄고 일어난다. 후다닥 옷을 챙겨입고 아파트 입구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이 시간에 서울역을 가는 데는 지하철보다 버스가 더 빠르다. 모처럼 일요일 저녁에 집에 있었더니 아이들도 신이 났는지 잠도 안자고 놀자고 하여 놀다보니,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월요일 새벽에 내려가는 날은 왠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항상 일요일 저녁에 내려오기를 고수하는 선배는 일요일 밤 식어있는 관사에서 잠드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집에서의 일요일 밤도 그리 편치만은 않다. 대형사건 수사팀에 속하여 일하다 모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 출근하려는데 아들이 "아빠,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 하더라는 예전 선배들 시절은 아니더라도,

    형사재판과 여론

    형사재판과 여론

    작년에 '악마판사'란 드라마가 방영된 바 있다. 주변에서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보았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라마 속에서의 판사 '요한'은 경제적·사회적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국민심판대에 올려 통쾌하게 응징을 한다. 이런 판사 '요한'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하였다. 드라마와 달리 실제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사건에 관하여만 유·무죄와 양형을 정하고, 여론이 아닌 증거에 따라 판단한다. 어떻게 보면, 그런 판사의 모습이 소극적이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언론에 비춰진 모습, 그 사람의 평소 행실에 비추어 보면, 당연히 유죄이고 엄벌에 처해야 할 것 같은데, 고민하고 있는 판사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형사재판을 하면서 많이 고민되었던 부분은 여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였다.

    만남의 복

    만남의 복

    3월이면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를 입학하는 아이에게는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다. 학교에만 새로운 만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사이동으로 인한 각급 법원, 검찰 등 각 직역에는 3월이면 새로운 동료 판사, 검사, 새로운 기록, 새로운 당사자들과의 만남이 있다. 그 밖에도 많은 만남이 있겠지만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역사적인 만남에는 헬렌 켈러와 그의 개인 교사인 앤 셜리반과의 만남이 있을 것이다. 헬렌 켈러는 출생 때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났으나 생후 19개월에 앓은 열병으로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다. 헬렌 켈러의 스승인 앤 셜리반은 어린 시절 동생과 모친이 죽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그 충격으로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시력까지 잃게 된다. 하지만 앤

    조장(助長)의 비극

    조장(助長)의 비극

    재작년 봄부터 사무실에서 '아레카 야자'를 키우고 있다. 그간 여러 식물 키우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빈 화분만 남았었기에 이번에는 잘 죽지 않을 것 같은 큼직한 식물로 골랐다.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이제는 나도 식물 킬러가 아니라는 자신감이 붙던 차 새순이 삐죽 삐죽 올라오기 시작했다. 새순이 내 키만큼 자라난 후에도 이파리들은 꽁꽁 뭉쳐진 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작년 여름 무렵 드디어 줄기에 붙은 안쪽부터 이파리가 서서히 갈라져 펴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다 펴지지 않는 새순을 보며 이러다 썩거나 뒤틀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급해졌다. 내 손으로 하나 하나 이파리 사이를 갈라주고, 모양을 펴주었다. 금세 야자 잎 특유의 모양을 갖춘 새순은 이파리들이 조금 상하긴 했어도 밝은 연두빛을 뿜

    중독

    중독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도파민 단식(Dopamine fasting) 열풍이 우리나라에도 번졌다. 뇌에 쾌락과 만족을 제공하는 도파민 자극 활동인 스마트폰, 컴퓨터 사용, 운동이나 업무를 하지 않고 성관계는 물론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는 행동 등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신경물질로, 뇌 속의 쾌감을 조절하는 중추, 이른바 보상회로(reward pathway) 작동에 큰 역할을 한다. 즉 이 부위에 도파민이 증가하면 우리는 쾌감이나 즐거움을 받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파민을 늘이는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데,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 동기부여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라고 하겠다. 과학자들은 보상회로를 찾기 위하여 쥐를 이용한 실험을 했다. 레버를 누르면 혈관으

    참여재판의 기억

    참여재판의 기억

    국민참여재판, 그림자배심 프로그램(실제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않았지만 국민참여재판과 같은 배심원 역할을 체험)을 진행한 적이 몇 번 있다. 참여재판을 진행할 때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분들이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재판 절차에 참여한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림자배심으로 진행한 사건 중 마트에서 몇만 원 상당의 물건을 훔치다가 도주하면서 뒤로 세게 닫은 마트 유리문에 직원이 상해를 입은 사안이 있었다. 강도상해죄로 기소되어 유죄로 인정될 경우 법정형 하한이 징역 7년인 사안이었다. 그림자배심원으로 참여한 분들과 함께 실제 형사재판을 방청한 후 회의실로 돌아와 사안에 관하여 증거관계, 유죄로 인정될 경우의 양형 등에 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하였다. 배심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절도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믿음의 회복

    믿음의 회복

    믿는다는 것은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며,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맡기게 된다. 비근한 예로 지하철을 타거나 건물에 들어갈 때 지하철이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라 믿기에 또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기에, 은행에 돈을 맡길 때에도 은행이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 믿기에 맡기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것 중에서 더 신뢰가 가는 것을 선택한 나의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갈등과 피해, 범죄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우리는 법원과 검찰에 그 해결을 맡기고 있다. 법원, 검찰은 옳고 그름을 가려주는 곳이자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재판은 위의 예처럼 교통수단, 금융기관 등 선택 가능한 것 중에서 맡긴 것이 아닌 사회적 합의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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