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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황희 정승의 집에 있던 하인들이 서로 다투었다. 하인들이 차례로 황희 정승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자 황희 정승은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고 하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인이 "결국 누가 맞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판단이 명확치 못합니다"라고 말하자, "부인 말도 맞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서로 대립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재판부의 업무를 처리하여 오면서는 이 일화를 떠올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양 당사자의 입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황희 정승과 같이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고 답할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간에 어느 당사자가 그로 인한 법적 책임을 부담할 것인지 여부

    불편한 반대자

    불편한 반대자

    내가 속한 재판부는 재판을 종결(변론종결)하고 판결을 선고하기 전주에 3인의 판사가 모두 모여 '합의'를 한다. 합의는 통상 주심 판사가 먼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쟁점 사항들에 대한 검토 의견과 사건 결론(판결 주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 나머지 2명이 그 사건에 대한 의견 등을 밝히면서 의견을 조율하여 최종 결론(판결 주문)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배석판사 두 분은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각자 고민하는 사항(사실관계의 확정 문제이든, 법률관계 해석·적용의 문제이든)들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어서 막상 합의 자리에서는 두 분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재판장인 나는 주심판사의 반대 입장에서 '다른 쪽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미안해요, 리키

    미안해요, 리키

    최근 참가했던 노동사건실무 법관연수에서 '미안해요, 리키'라는 영화를 접하는 기회가 있었다. 영화는 리키가 택배배송회사의 매니저와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리키는 지금까지 상급자의 지시를 받으며 피고용자로서 열심히 일해왔지만 이제 자신 혼자 일하고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매니저는 택배배송기사야말로 그에 적합한 일이라고 답변하며 그를 채용한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리키의 택배배송기사의 일과 삶이 어떠한지를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작년에 개봉된 작품으로, 다큐멘터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리키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결말조차도 현실적이어서 '답이 없는' 채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영화가 말하고

    on time, in time

    on time, in time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다보면 재판이 지체되어 당사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차제 소환으로 각 사건당 시간이 배정되어 있지만 때로는 특정 사건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지난주 재판에서도 오전 재판의 후반부 들어서며 진행이 지체되어 오전 마지막 사건을 12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판을 마치고 나오면 마음도 편치 않다.   나는 평소 생활 중에는 말 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같이 있을 때 내 이야기를 많이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선호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익숙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판할 때는 말이 많아지고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 소송 단계에까지 이른 당사자들 사이의 분쟁이 몇 마디 말로 정

    어느 소회

    어느 소회

    십여년전 첫 근무를 발령받으면서 근무지와 가까운 곳으로 월세방을 구했더랬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자리에서 첫 월세를 현금으로 교부한 후 집주인에게 영수증을 요구했다. 나이가 지긋한 집주인은 웃으면서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런 것까지 쓰느냐며 나의 요청을 흘려버리려 했다. 재차 요구하자 자기는 그런 사람 아니라며 불쾌한 기색마저 내비쳤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껄끄러웠던데다가 후에 그다지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확실시되지도 않는 일에 더 이상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 영수증 받는 것을 포기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일이 종종 생각나는 것은 기록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의외로 비일비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처분문서나 금융자료 등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좋은

    커피와 재판

    커피와 재판

    평소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는 편이라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변에서 세 가지 정도의 추출방식을 보게 된다. 우선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하는 방식은 분쇄한 커피를 포터필터라는 용기에 담아 적당한 압력으로 다진 후 추출기에 고정하여 고온·고압의 물로 빠르게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다. 핸드드립 방식은 여과지를 넣은 깔때기 모양의 드립퍼에 분쇄한 커피를 담은 후 주둥이가 좁은 주전자로 적당한 온도의 물을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골고루 따라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다. 커피전문점에서는 이 두 가지 방식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데, 재판진행의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변론준비절차 등을 통해 쟁점을 정리한 후 1~2회의 '집중된' 변론기일에서 증거조사를 한꺼번에 마치고 판결을 선고하는

    노동전문법원

    노동전문법원

    2년째 노동사건 전담부를 맡고 있다. 사물관할상 임금지급을 구하는 사건이 대부분이지만, 작년 한 해 적지 않은 수의 노동사건을 처리하면서 주로 느낀 것은 노동사건이 일반 민사사건에 비하여 두드러지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사건의 재판사무를 실제로 처리하는 입장에서 가장 와닿는 점은 법리에 있어서 독특한 측면이 있다는 것, 바꿔 말하면 전문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서 그에 관한 제반 문제는 인간 개인의 복잡다단한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점 때문에 노동사건에서의 법리가 논리의 정합성보다는 그 당위성을 강조한 결과 다소 독특한

    노안에 대한 위안

    노안에 대한 위안

    갈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있다. 작년에 시력검사를 하러 갔을 때 다초점렌즈 안경 착용을 권유받았지만, 당시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거절하고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싶다. 어느 날은 기록에 있는 작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가까이, 다시 멀리 가져가다가 착용 중인 근시 안경을 벗었더니 신기하게도 글자가 또렷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법관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사무실에서 기록검토 및 판결문 작성에 할애하고 있는데, 판례·연구문헌 등 법률정보가 누적되고, 그 정보에 대한 검색과 접근이 보다 수월해졌으며, 이들을 활용한 주장서면, 참고서면 등 소송자료의 생성이 간편화되어 감에 따라 각 사건별로 읽어야 할 소송자료의 분량도

    재판의 한계

    재판의 한계

    실제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이 하게 되는 말이 "판사는 신이 아닙니다"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재판을 진행하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재판이 실현하여야 할 궁극적인 목적임은, 그에 대해 판사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함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제3자에 불과한 판사가 사건의 실체 내지 진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사실적 한계가 있다.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진행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실험대상자들에게 미리 실험 내용을 알리지 않고 다수의 사람들이 일련의 행위를 연기하는 것을 보게 한 후 당일 실험대상자들에게 그대로 진술하게 하였는데, 의외로 그 순서 및 내용을 실제와 동일하게 정확히 진술한

    곤란한 질문

    곤란한 질문

    매년 1회 정도 중·고등학교에 특강을 나가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잠시나마 법대에서 벗어나 사건과 무관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학생들도 정규수업에서 늘 뵙는 선생님 대신 색다른 강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특강에서는 정의, 법치주의 같은 거창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간단한 법률용어나 법정의 모습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면 매번 나오는 질문 중에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나 나는 답변에 곤란함을 느끼곤 한다.   어느 해는 미리 답변을 준비해보고자 기억에 남는 재판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당사자가 되어 수조 원의 지급채무를 다

    대중의 심판

    대중의 심판

    소위 n번방의 주범으로 수사 중인 조주빈의 얼굴과 신상정보가 공개되었다. 성폭력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사례로는 최초라고 한다. 그와 함께 n번방에 입장 내지 가입한 회원들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진행되었다.   2010년 처음으로 피의자의 신상정보공개 제도를 규율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그 공개대상자를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자들에 한정하였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공공이익을 위한 필요성을 요건으로 규정하여 이를 신상공개의 근거로 삼고 있지만, 특정강력범죄의 특성상 구속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재판이 확정되기 이전의 신상정보공개가 그 이후의 신상정보공개보다 범죄예방에 있어서

    출제자와 응시자

    출제자와 응시자

    법관은 소송사건을 심리, 판단하는 자로서 재판의 '주재자', '판단자'라고 하거나, 운동경기의 '심판'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법관의 위치, 입장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큰아이, 작은아이 둘 다 문제를 읽는 둥 마는 둥하면서 답 구하는 것을 서두르고 그러다보니 틀리고 실수하는 것이 많다. 그러고서는 "문제가 어렵다", "문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이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출제자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렇게 잔소리하다보니 문득 재판도 학생의 문제 풀이와 다르지 않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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