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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8)

    4부 낙관(落款) ⑱ 공자명강(公慈明剛) 중신인행(中信仁行)
    발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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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직을 수행함이 도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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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가까이 살아왔던 새장을 스스로 빠져나와 다시 날갯짓하며 지낸 지도 20년을 훌쩍 넘겼다. 새장 속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 2015년 말경이다. 그때로부터 7년이 흐른 오늘 발문을 쓴다.

    내가 거친 공직을 회고하며 글을 시작하면서 한두 달 안에 글쓰기를 마치겠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는 부지런히 써서 2016년 초에 글을 대강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서둘러야 할 만한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을 떠난 다음, 1년 남짓 야인으로 지내던 기간 중 홍콩에 며칠 놀러 간 일이 있었다. 이때 그곳의 유명한 역술인을 찾아가서 내 사주팔자를 물어보았다. 1995년 11월경으로 기억되며, 철판신수(鐵板神數) 강천일(江天逸)이 그 사람이다.

    그가 나의 사주를 풀어 8페이지로 만들어 준 작은 책자의 마지막 줄에 기재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13글자다.

    ‘77歲 魂還流水去 魄逐洛花飛.’ 풀이하면, ‘혼(魂)은 흐르는 물로 돌아가고, 백(魄)은 떨어지는 꽃과 함께 흩어진다.’ 그는 나의 수명을 77세로 못 박았다. 내가 그를 찾을 때까지 살아온 과정을 그는 거의 내 손금 보듯 적어 놓았으며, 그 이후 몇 년간 지내면서 간간이 그 책을 들춰 보았더니 거의 틀림없이 그대로 된 것처럼 느낄 만한 내용이 들어 있는 책자였다.

    역술가가 말한 내용을 다 믿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의 예언이 완전히 헛된 것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것이 당시의 내 심정이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수명이 77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77세까지가 내 수명이라면 죽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익법인인 천고법치문화재단의 설립을 끝냈고, 장문의 유서를 써서 딸에게 남기기도 했으며, 내가 거친 공직에 관련된 글도 대부분 써 두었다. 이런 모든 일이 내 나이 76세까지 끝낸 것들이다. 그런데 나는 77세에 죽지 않았다. 만 80세를 넘긴 오늘까지도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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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한정(嘉閒亭) 전경-회사와 재단의 남쪽 정원 부지에 세운 8각정으로 휴식처임 
    <사진 = 송종의 장관 제공>


    나의 공문행적(公門行蹟)을 글로 남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나의 공직 생활 중 내가 저지른 잘못을 가감 없이 드러내 공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를 거울삼아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는 뜻이고, 둘째는 오직 나만이 알고 경험한 사실로서 이 세상 어디에도 기록으로 남지 않았던 내용을 글로 써 두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그것이다.

    첫 번째의 사정은 이 회고록 곳곳에 드러나 있어서 그 사례도 여러 가지다. 검사장의 직급으로 승진되기 이전의 공직 생활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검사장으로 승진된 이후에는 이런 내용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장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수행하는 직책이므로 이런 일을 처리하면서 잘못을 저지른다면 이는 대부분 용서받기 어렵다. 내게 이런 일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또 분명하게 드러내서 나의 잘못이었다고 스스로 글로 써서 남길 만한 내용도 별로 없었다.

    내게 남아 있는 업무 일지를 여러 번 뒤적여 보아도 꼭 집어서 이것이 나의 큰 잘못이라고 단정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고,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시절의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은 후세에 꼭 알려야 할 내용임에도 검찰 역사에 남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내용을 정리하여 여기에 기록으로 남긴다. 이것이 글을 쓴 두 번째 사정이다.

    내 글 중에는 나와 인연이 있는 많은 사람의 이름이 들어 있다. 그 사람들과의 인연은 대부분 가연(佳緣)이었다. 옥의 티였다고나 할까? 몇 사람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들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털어 버리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심사숙고한 결과, 이 역시 옳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내 글을 마무리한다. 훗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직의 행적 글로 남기는 두 가지 이유는
    잘못 가감없이 드러내 다음 세대 거울되고
    기록되지 않은 사실 남기려는 소명 의식
    “들을 말 전혀 없다” 비난 없으면 만족

    공직 수행의 바른길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않아서 탈이 생기는 것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한세상 살아가는 의미가 그것 아닐까


    이 후기를 쓰기 며칠 전 나의 외우(畏友) 문종수(文鍾洙) 공이 내게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정민(鄭珉) 교수가 쓴 『점검(點檢)』이란 책이다. 1016 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의 저술이었다.

    이 책을 펼쳐 보기 시작했더니 잠시도 눈을 떼기 어려웠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바쁜 일을 처리하면서도 며칠간 이 책을 다 읽었다. 아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문 공이 이 책을 읽어 보고 다시 몇 줄 더 써서 내 글을 마무리하라는 뜻으로 보내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책에 들어 있는 두 꼭지의 글을 여기에 옮긴다.

    첫 번째는 이 책 985~987쪽에 들어 있는 글이다. 그 제목은 「화생어구(禍生於口)」이다. 모든 재앙은 입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이 글을 여기에 그대로 옮기는 이유는, 돌이켜 보니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쓴 많은 내용이 바로 사려분별 없이 내뱉은 말로 초래된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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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한정 내부에서 찍은 나의 독사진 <사진 = 송종의 장관 제공>

     

    “성대중(成大中. 號는 靑城, 英·正朝의 文臣. 1732-1809)이 말했다.

    재앙은 입에서 생기고, 근심은 눈에서 생긴다. 병은 마음에서 생기고, 때는 얼굴에서 생긴다[禍生於口 憂生於眼, 病生於心 垢生於面].

    또 말했다.


    겸손하고 공손한 사람이 자신을 굽히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니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없다. 교만한 사람이 포악하게 구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사람들이 미워하니 이보다 큰 손해가 없다[謙恭者屈節, 於己何損, 而人皆悅之, 利莫大焉, 驕倣者暴氣, 於己何益, 而人皆嫉之, 害孰甚焉].

    다시 말했다.

    나를 찍는 도끼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찍었던 도끼다. 나를 치는 몽둥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남을 때리던 몽둥이다[伐我之斧非他. 則我伐人之斧也, 制我之梃非他, 卽我制人之梃也].

    어찌해야 할까? 그가 말한다.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 엄격하되 잔인하지 않고,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는다[淸而不刻, 和而不蕩, 嚴而不殘, 寬而不弛].

    또 말한다.

    이름은 뒷날을 기다리고, 이익은 남에게 미룬다. 세상을 살아감은 나그네처럼, 벼슬에 있는 것은 손님같이[名待後日, 利付他人, 在世如旅, 在官如賓].”

    어떻게 공직을 수행하는 것이 정도(正道)인가 하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비록 수십 년간 공직 생활을 했으나 그 정답은 알 수 없다.

    위 책에서 그럴듯한 글을 보았으므로 두 번째로 그것도 여기에 옮긴다. 「치옥사요(治獄四要)」라는 제목으로 그 책 911~913 쪽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명나라 설선의 종정명언은 중국에서보다 일본 막부에서 더 인기가 높아 여러 차례 출간된 책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위정자의 마음가짐을 적은 짧은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옥사를 다스리는 데는 네 가지의 요체가 있다. 공정함과 자애로움, 명백함과 굳셈이 그것이다. 공정하면 치우치지 않고, 자애로우면 모질지가 않다. 명백하면 능히 환히 비출 수 있고, 굳세야만 단안할 수가 있다[治獄有四要, 公慈明剛. 公則不偏, 慈則不刻, 明則能照, 剛則能斷].

    치옥(治獄)의 네 요소로 꼽은 것이 공자명강(公慈明剛)이다.

    법은 공정하되 자애롭게, 명백하되 굳세어 결단력 있게 집행해야 한다. 공정을 잃으면 자애는 봐주기나 편들기가 되고, 명백하지 않은 굳셈은 독선과 아집으로 흐른다. 잣대를 잃고 상황에 영합하면 공정한 법 집행은 물 건너간다.

    중은 입법의 근본이요, 신은 행법의 핵심이다[中者立法之本, 信者行法之要].

    법을 만들었으면 반드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들어 놓고 행하지 않으니 그저 있으나 마나 한 헛것이 되어 다만 아랫것들의 나쁜 짓을 부추기기에 족할 뿐이다[法立貴乎必行, 立而不行, 徒爲虛文, 適足以啓下人之翫而己].

    지금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는 법을 천토(天討)라고 했다.

    법이란 하늘이 내리는 토벌이다. 공정함으로 지키고, 어짊으로 행해야 한다[法者天討也, 以公守之, 以仁行之].

    입법의 공정성이 중요해도 사법의 바른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정민 교수의 말처럼 과연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임이 틀림없다.

    설선(薛瑄. 明代 儒學者. 從政名言의 著者 1389~1464)의 말을 잘 음미해 보면 공(公), 자(慈), 명(明), 강(剛), 중(中), 신(信), 인(仁), 행(行), 이 여덟 글자가 공직자로서 지녀야 할 신념이며, 추구할 가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이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잘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언제나 행하지 않아서 탈이 된다.

    내가 모아 놓은 여러 꼭지의 글은 문자 그대로 ‘관규려측(管窺蠡測)’이다. 즉, 대롱을 통해 하늘을 보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의 양을 잰다는 그 말이 맞는다. 그러나 모두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들을 말이 전혀 없다는 비난만 받지 않는다면 나는 만족한다.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저렇게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건만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 가운데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분들이 많다. 이름을 불러 보아도, 모습을 떠올려 보아도, 오직 아득할 뿐이다.

    사람의 일생이 이런 것인데, 무엇 때문에 죄를 지어야 하며, 또 그 죄를 찾아 단죄하려고 애쓰는 것인가? 그리하여 일찍이 불가(佛家)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고 하였음이라. 사람의 몸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비로소 그 이치(理致)를 증득(證得)하게 되리니, 사람이 한세상 살아가는 의미가 또 그것이 아니겠는가?

    2022년 1월 하순


    八十叟 還生居士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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