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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통신원] 아르메니아 결의

    김진한 해외통신원 (변호사·독일 에어랑엔- 뉘른베르크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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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에게 언제든지 나의 편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여도 그 친구만큼은 내 편이 되어줄 친구. 하지만 친구가 잘못된 길,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 명백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침묵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 6월 2일 독일 연방의회는 이례적인 결의를 하였다. 1915년 터키가 아르메니아 민족에 가한 공격행위에 대한 결의였다. 독일 연방의회는 결의에서 터키의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상의 집단학살(Volkermord, genocide)이라고 규정하였다.

    집단학살이란 국제법상 최악의 범죄이다. 종교적, 인종적, 민족적으로 구분되는 한 집단을 멸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대규모 살해행위가 발생한 경우에 인정된다. 1948년의 국제연합 제3회 총회에서는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었으며, 이 협약은 1951년에 발효되었다.

    터키 정부는 독일 연방의회의 이 같은 결의에 대해 강력 반발하였다. 에르도완 터키 대통령은 독일 주재 터키 대사를 소환하였으며, 터키의 외무장관은 스스로의 부끄러운 역사를 덮기 위하여 다른 나라의 역사에 근거 없는 비난하고, 치욕을 가하는 결의라고 비난하였다. 결의문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 연방의회는 백여 년 전 터키제국이 행했던 학살에 의해 희생된 아르메니아 및 기독교소수민족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당시 '젊은 터키당 정부(jungturkische Regierung)'는 오스만 제국 내에 있는 아르메니아 민족을 거의 완전한 절멸에 이르게 하는 학살을 자행하였으며, 그 밖에 아시리아, 아람 등의 기독교 소수자 공동체에 대하여도 학살을 감행했다.

    백만 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계획적인 학살 행위는 1915년 4월 24일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대표적인 민족학살(Volkermord)의 행위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러한 대량학살 행위는 끔찍하지만 20세기 인류역사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통하여 독일이 지은 죄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하여 독일의 죄와 책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대한 일임을 알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학살이 자행될 당시 보였던 독일제국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당시 독일제국은 오스만제국의 가장 중요한 군사동맹국이었다. 그리고 독일제국은 독일의 외교관의 정보보고와 선교사 등의 증언을 통하여 터키제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계획적인 학살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제국은 오스만제국의 행위를 막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독일 연방의회는 이 결의를 통하여 지구상 가장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에 대한 숭모의 염을 표하고자 한다.

    2005년의 제안에 기초하고 있는 연방의회의 결의는 희생자에 대한 추모, 역사적인 진실규명을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화해에 기여하고자 하는 데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의회에 참여한 모든 정당의 대표들은 2015년 4월 24일 연방의회의 토론에서, 그리고 연방대통령은 연방의회의 토론이 있기 전날의 연설에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민족학살을 규탄했으며,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화해를 호소했다. 그리고 독일제국이 이 사건에 대하여 공동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였다. 연방의회는 독일이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터키와 아르메니아가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 화해와 이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지지하고 지원하고자 한다. 이러한 화해의 과정은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있고, 새로운 자극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오늘날 거론되는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대규모 민족학살은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에 즈음하여 발생하였다. 아르메니아인들이 공격당하고 희생되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다툼이 없다. 과연 얼마나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살해되었는가, 그것이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집단살해였던가에 관하여 다른 관점이 대립하고 있다.

    1987년 유럽의회는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것을 선두로 하여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유럽에서만 스물이 넘는 국가의 의회가 아르메니아의 비극을 집단학살로 규정하였다. 희생자의 수를 대략 백오십만 명으로 추산하였다. 하지만 터키는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터키 정부의 공식입장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터키 영토 내에서 분쟁과 반란이 있었고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양측 모두의 희생이 있었을 뿐이며, 유럽 의회들의 결의는 그 규모와 내용에서 엄청난 과장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터키 정부의 입장은 고립되어 있다.

    시기로 볼 때 독일 연방의회의 이번 결의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뒤처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의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 문제에 한 발을 담그고 있었던 독일 스스로의 역사가 그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당시 터키 제국과 동맹관계에 있었던 빌헬름 황제 통치 하의 독일제국은 사태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희생을 중단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국가였다. 하지만 독일제국은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오스만제국 군대와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결의를 통하여 터키의 역사를 비난한다면 방관자 내지 방조자로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고, 홀로코스트로 더럽혀진 독일의 과거사에 새로운 부끄러운 결과를 더하는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일은 이번 결의에 신중과 숙고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결의안에서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앞으로 부담해야 할 책임을 강조하였다. 최악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있는 독일의 입장을 강조하며 어려운 역사를 인정해야 하는 터키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였다. 결의에 앞선 토론에서 사회민주당(SPD)의 Von Rolf Mutzenig 의원은 "홀로코스트 당시 터키는 독일의 유대인들과 민주지도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던 사실을 기억한다. 우리가 오늘 터키에 기대하는 것은 그와 같은 개방과 담대함이다"고 하였다. 결의안의 공동제안자 중 한 사람이었던 녹색당의 Cem Ozedemir 의원은 "이 문제에 관한 독일의 공동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 결의를 제안한 것은 우리가 터키에 비하여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화해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결의안이 통과되고 며칠이 지난 후 터키 에르도완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의원들 가운데 터키계 의원들을 향해 심한 비난을 가하였다. 이미 이들 의원들에게 협박전화와 편지가 쇄도하는 상황이었다. 에르도완 대통령은 이들이 "조국의 배신자이며, 이들은 터키인으로서의 피가 부패하였다(verdorben)"고 하였다. 독일 의회로서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Lammert 독일 연방의회의 의장은 의회 전원회의를 열었고, Lammert 의장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통하여 대응하였다. 이번 회의에는 메르켈 수상을 비롯한 정부의 주요 각료들이 대부분 참석하였다.

    「나는 우리 의원들과 함께 의원들의 직무수행에 대한 압력과 협박을 받고 있는 모든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연대할 것을 다짐한다. 의원들을 공격하는 자들은 우리가 의원들 가운데 한명에 대한 공격을 의회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1세기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일 연방의회의원을 상대로, 그 표결 내용에 대하여 실망했다는 이유로 피가 부패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역사를 보는 건강한 시각은 건강한 정치의 시작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역사일 수는 없다. 자손들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는 마음이라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역사는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 다른 이가 강제하여 돌아보는 역사는 설혹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여도 자신의 깨달음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아무리 부끄러운 과거라고 하여도 스스로 깨물면 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쓴 약이라고 피한다면 궁극에는 공동체의 파멸로 이어진다. 그래서 스스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관점을 키우고 길러야 한다. 이것이 비단 터키와 독일 또는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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