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뉴스

    인터뷰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자타공인 ‘미스터 조세’ 임승순 화우 대표

    손현수 기자  boysoo@lawtimes.co.kr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맹자 이루(離婁)편을 보면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禮人不答反基敬 愛人不親反基仁 治人不治反基智)'는 말이 있습니다." 임승순(62·사법연수원 9기)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로펌을 경영하면서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구절이라고 했다. "실력과 배려심, 두 가지 덕목을 갖춰야만 맡은 역할을 다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모인 로펌의 구성원들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런 가치를 항상 되새겨야 합니다." 조세분야의 달인으로 '미스터 조세'라는 별칭을 가진 임 대표는 시종일관 차분하면서도 힘있는 태도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6년간 화우를 이끌고 있는 그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화우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전 출신인 임승순(62·사법연수원 9기)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는 어린시절 시험을 통해 초등학교 1학년을 건너뛰고 2학년으로 곧바로 입학할 정도로 영특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낯선 생활속에 사춘기를 겪으며 잠시 방황하기도 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을 안 다녔습니다. 어린시절 어울리던 동네 친구들이 저보다 한 살 많았는데 이 친구들이 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버리니 같이 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교장실에서 시험을 보고 그 친구들과 같은 학년인 2학년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당시에는 그런일도 가능했었나 봅니다(웃음). 이후 아버님이 교육열이 높아 고향 대전이 아닌 서울고에 시험을 봐서 유학을 왔습니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그때부터 자취, 하숙을 했어요. 2학년 때 같이 하숙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는 하지 않고 방황했습니다. 성적도 많이 떨어졌고 결국 1년간 재수를 하게됐죠. 그렇게 1973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을 건너뛴 탓에 고등학교 동기들이 모두 형이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야 같은 나이의 친구들을 만난 셈이죠(웃음)."

    교육열 높은 아버님 권유로 고교 때 서울 유학
    한때 방황하다 법조인이던 숙부님 댁에서 재수
    법대 진학 4년 뒤 사시 합격… 숙부와 같은 길로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숙부님 댁에서 자취를 했다. 임 대표의 숙부는 특허법원장을 지낸 임대화(74·사시 1회) 변호사다. 그가 법대에 진학는데에는 법조인이던 숙부의 영향이 컸다. "저희가 오남매인데 부모님이 자식 모두 공부시킨다고 조금씩 땅을 팔았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자 숙부님이 집으로 들어와 재수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재수 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4년 뒤인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은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습니다만, 숙부님 댁에서 공부를 하며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숙부님의 대전고 동창이자 친구인 가재환(76·고시 15회) 전 사법연수원장님과 김종구(75·사시 3회) 전 법무부장관님이 함께 모여 서로를 축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큰 영감을 받았죠. 법조인이 된 이후에도 숙부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979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육군법무관을 거쳐 판사가 된 그는 법관 시절에도 숙부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때 가르침은 그가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1982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임용이 됐습니다. 판결문을 많이 썼는데 재판장이신 부장님은 제가 쓴 판결문을 많이 고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이후 작성한 판결문을 모아 숙부님께 보여드렸는데 종이가 새까매질 정도로 고쳐서 돌려줬습니다. 초임 판사시절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좋았을 때라 숙부님께 배웠던 것들이 이후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최근 화우가 발간한 '법률문장론-어떻게 쓸것인가'도 그때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숙부님께서 저한테 물어보시는 경우도 많은데 꼬박꼬박 검토를 해드립니다. 어린 시절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이죠(웃음)."

    화우는 다른 대형로펌들과 비교할 때 청년변호사 교육에 매우 적극적이다. 청년변호사들을 위한 교육기관인 화우연수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청년변호사를 위한 전문분야 해설서인 화우총서와 각종 서면을 작성할 때 지침서로 삼을 수 있는 법률문장론을 잇따라 발간했다. 여기에는 임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저는 사회가 발전하려면 지식이 공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업소송실무, 공정거래법 해설, 세법의 쟁점 등 실무상 필요한 내용들이 담긴 화우총서를 누구나 쉽게 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려놓았습니다. 한 신입변호사는 화우에 지망한 동기를 '인터넷에 올려진 총서를 보고 화우는 열린 생각을 가진 로펌일 것 같았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법률문장-어떻게 쓸것인가'를 발간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청년변호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또 법률문화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으면 하는 생각에 발간하게 됐습니다. 외국에도 학술적인 내용의 법률문장론은 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로펌 홍보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지식은 공유돼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사업입니다."

    재판연구관 때 '조세조' 배치… 조세법과 인연
    '지식 공유'는 소신… 청년변호사 교육에 적극
    법조인으로 40여년… 이제는 봉사활동에 관심

    법조 선배이자 대형로펌을 이끄는 CEO로서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덕목은 크게 두 가지다. '실력'과 '배려심'. 그는 변호사들이 두 덕목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고교시절 교장선생님께서 늘 '언제 어디서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를 위해선 실력과 배려, 두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있어야 역할에 충실할 수 있고, 발전을 위해선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법조인과 로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펌에 속한 변호사들 역시 기본적으로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갖춰야하고 남(동료)의 감정을 이해하고 맞춰줄 수 있는 배려심이 있어야 합니다. 작게는 로펌, 크게는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기본 덕목이죠."

    임 대표의 별명은 '미스터 조세'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조세법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 '조세조'에 배치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 2년 6개월 동안 조세사건만 연구했는데 당시 관련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조세법을 접하게 된 계기이자 관련 공부를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였죠. 이후 부산지법 부장판사로 발령이나 조세법을 잊고 살았는데, 이회창(81·고시 8회) 전 대법관의 화갑기념 논문집에 참여하면서 다시 감각이 되살아났습니다. 당시 여름 내내 조세법 관련 논문을 두편이나 썼습니다. 논문 내용은 기존 대법원 판례가 변경된 부분인데,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84누250)과 환급청구권 소멸시효에 관한 사건(91다32053)입니다. 이후 조세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평석을 틈틈이 썼습니다. 그러다 1996년 사법연수원 교수로 가게 됐는데, 당시 조세법 강좌가 처음 생겼고 그 강좌를 제가 맡게 됐습니다. 교재용으로 책을 만들었죠. 그리고 1999년 출판사와 연이 닿아 '조세법' 초판을 발간했고 이후 15년 정도 개정판을 냈습니다. 자연스레 조세법에 내공이 쌓였죠. 지금은 책에 제 목소리도 실을 수 있게 됐습니다.(웃음)"

    그는 20여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다 2000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판사와 변호사 모두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판사는 일에 대한 보람을 쫓으며 사는 사람이고, 반대로 변호사는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많은 편입니다. 가족과 많은 시간도 보낼 수 있죠.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판사는 업무특성상 수직적인 구조에 갇혀있기 때문에 사고방식과 시각 역시 수직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판사 시절 성당에 나가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껏 법대에 앉아 위로는 부장(선배), 아래로는 사건 당사자만 봐왔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수직적인 관계에 익숙했었죠.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며 수평적인 시각으로 사람을 만나다보니 '이 사람들도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어리석게도 그 전까지는 그걸 깨닫지 못했었죠."

    40여년간 법조인으로 활동한 그는 앞으로 큰 계획은 없지만 소박한 다짐은 있다고 했다. 조용히 공익활동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특별히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운 것은 없지만 공익차원의 봉사활동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을 때부터 20여년 간 성당 봉사활동 단체에 가입해 가톨릭병원 청소나 잡초뽑기 등 작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임입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모임에 가면 소주를 한잔 마셔도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이해관계없는 친한 사람들이 모여있어 부담이 없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나누고 사회에도 헌신하며 즐거움을 누리고 싶습니다."


    최근 많이 본 기사

    리걸북스

    더보기

    리걸에듀

    리걸인사이트 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