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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한국 공익전담 변호사 1호’ 염형국

    "변호사들 활동해야 할 곳 법정으로 한정 말아야"

    이장호 기자  jangho@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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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법 제1조가 규정하는 '변호사의 사명'이다. 하지만 법률서비스 시장의 장기 침체 등으로 변호사 1인당 월평균 수임건수가 1.69건대까지 떨어지며 변호사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으로는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 규정은 점차 선언적인 의미만으로 퇴색하고 있다.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사회정의가 들어설 여지는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13년간 소수자들의 기본적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공익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는 변호사가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을 설립한 공익변호사의 맏형 염형국(42·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변호사가 된 2004년 이후 줄곧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장을 위해 공익법 활동이라는 한 우물만 파고 있는 그를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공감 사무실에서 만났다.

    염형국(42·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는 이제 대한민국 공익변호사의 상징이 됐지만, 그가 어릴 적부터 공익변호사의 길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활동하는 모습이 막연하게 좋아보였다.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에 걸릴 수도 있고 외국을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걸 알고 외교관 꿈을 접었습니다(웃음). 또 제가 어학에 소질이 있는 줄 알았는데 어학에도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외교관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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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그는 법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격이어서 혼자 고시 공부를 하며 개인플레이가 만연한 분위기가 낯설기만 했다. "법대 분위기가 살벌했습니다. 다들 혼밥(혼자 밥 먹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4년 내내 적응하지 못하다 졸업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제대 후 그제서야 변호사를 해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3년 간 공부를 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2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했다. 그러나 낯설었던 법대 생활만큼이나 일반적인 법조인으로서의 삶도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판·검사 시보도 해보고, 대형로펌에 가서 일도 해봤지만 적성에 안 맞더군요(웃음)." 그런 그를 공익변호사의 길로 이끈 이가 박원순(60·12기) 서울시장이다. 2002년 봄 당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였던 박 시장은 사법연수원 특강에서 공익변호사야말로 블루오션(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져 있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의 특강에 감명을 받은 염 변호사는 공익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박 시장님이 아름다운 재단에서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2003년 12월 1일 아름다운 재단으로 첫 출근을 해 이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있던 2003년 겨울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사법연수생을 대상으로 이색적인 채용공고를 냈다. '낮은 곳에서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리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로펌을 만들겠습니다.' 재단 산하에 공익변호사그룹을 만들기 위해 낸 공고였다. 염 변호사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소라미, 김영수, 정정훈 변호사 등 3명이 뜻을 함께 하겠다고 지원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염 변호사 등 변호사 4명과 간사 1명으로 이뤄진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출범했다. 6평 남짓한 아름다운 재단 사무실 2층 베란다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공감은 이제는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여성 등 아직도 우리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소수자들을 위한 어엿한 대한민국 대표 공익변호사 단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늘 보람찰 것만 같았던 공익변호사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재정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염 변호사는 그보다는 공감의 활동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난들을 직접 맞닥뜨렸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저희들의 활동이 100% 공감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주민이나 성소수자 문제에는 사회적으로 차별이나 낙인이 너무 심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하고 근거없는 비난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에서 겪으면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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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에서 염 변호사와 함께 일하고 있는 소라미 변호사는 최근 이주민 인권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이주민 인권 보장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2014년 서울시 인권헌장을 발표할 때 위원으로 참여한 염 변호사는 당시 인권헌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폭력을 목격하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공청회에 난입해 멱살을 잡고 폭행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기까지 했습니다. 반대 의견을 이야기할 수는 있죠. 그런데 자신의 입장을 폭력으로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보면서 무력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반대가 예상됐던 사람들의 비난은 그래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소수자들이 공격할 때는 난감 그 자체였다. 최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는 현행 정신보건법의 문제점이 논란이 됐다. 염 변호사는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는 현행법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관계자들과 협상을 하자 피해자들이 "너희도 똑같은 놈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병원 등 관계자들과 서로 논의하고 합의해 절충점을 찾아가자 피해자들이 오히려 야합이라고 비난을 해 마음 고생이 많았다. 피해자들은 정신병원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공감은 장애인, 난민, 이주민,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아직까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여전히 많다고 염 변호사는 말했다. 그는 특히 나라를 위해 희생했지만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군대를 가면 사격을 하는데 이때 총 소음이 엄청 큽니다. 때문에 이명(耳鳴, 귀울림이 없는데도 잡음이 들리는 병적인 상태)이 생긴 피해자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보상은 전혀 없습니다. 이명과 함께 난청 정도가 심해야 국가유공자 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대부분 최하등급도 못 받는 게 현실입니다." 그는 이명 피해자들을 대리해 행정소송은 물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그러나 모두 기각됐다. "군대에 가고 싶어서 간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국가에서는 치료도, 보상도 안 해줍니다. 이건 명백히 인권침해입니다." 염 변호사는 또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복지재정을 늘리고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송파 세 모녀 사건'같은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소수자 보호를 위한 정부의 관심은 아직 부족하기만 하다. 염 변호사는 그 단적인 예가 각종 인권조약 등에 가입하고도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유엔 회원국이 된 1990년 이후 최근까지 자유권 규약 등 주요 인권조약 대부분에 가입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염 변호사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지키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관, 판사, 입법자들도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데 어떤 공무원이나 판사가 국제법규를 처분이나 해석의 근거로 삼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또 "국제협약을 근거로 처분을 내리는 공무원은 0.1%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조약이 '공자님 말씀'으로 남아있는 현실에 대해 씁쓸해했다.

    염 변호사는 최근 혐오 범죄가 늘어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혐오 정서가 퍼지고 있는데에도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점점 사회가 양극화되고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이주민, 정신병원에 있어야 하는 장애인들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들은 소수자들이 무임승차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혐오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양극화 해소,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 염 변호사는 일반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데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 센터장을 맡아 변호사들이 일상 속에서 봉사활동 등을 통해 공익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변호사들과 함께 여름 한밤 서울역 등을 찾아 노숙인들의 허기를 달래주고, 홀몸 어르신들의 생일을 챙기면서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변호사들이 직접 만든 빵을 어려운 이웃에게 직접 배달하는 등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변호사의 활동 자체가 공익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변호사들도 여러 수많은 직업군 중 하나이고, 그런 논리라면 모든 직업이 다 공익입니다. 법률사무를 독점하고 있는 변호사 입장에서 더더욱 공공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염 변호사는 젊은 변호사들에게 변호사가 활동을 해야 하는 곳을 법정으로 한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법조인을 필요로 하지만 아직 변호사들이 진출하지 않은 블루오션이 많다고 강조했다.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송무 비율은 자연스럽게 50%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젊은 변호사들이 송무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조금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공감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젊은 법조인들이 조금 더 시야를 넓히고 용기를 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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