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뉴스

    인터뷰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헌법학계 ‘거목’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탄핵심판 누구도 예측 힘들어… 헌재 믿고 기다려야"

    박미영 기자  mypark@lawtimes.co.kr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탄핵정국으로 전국민의 관심이 헌법재판소를 향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매주 광화문에 모인 수백만의 국민들을 바라보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평생을 '국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연구에 매진해 온 학자가 있다. 올해로 81세. 아흔을 바라본다는 '망구(望九)'를 맞이한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이다. 그는 1971년 독일 뮌헨대학에서 헌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2001년까지 헌법을 가르친 헌법학계의 거목이다. 정년퇴임 후에는 초대 헌법재판연구원장을 맡아 헌법재판 연구에 힘썼다. 지난달 19일 서울 역삼동 연구실에서 허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국가'와 '헌법'에 대해 들었다.


    82.jpg


    1936년 충남 부여군 금지리 산골에서 태어난 허영(81) 경희대 석좌교수는 일제 식민지 시절과 광복, 6·25전쟁을 지나 4·19 혁명까지 격동의 세월을 온 몸으로 겪은 우리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 대전으로 터를 옮기면서 법학과 인연이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법학을 한다'하는 것은 정해진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법학을 공부해야 출세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절이죠. 제가 다니던 대전고의 한상봉 교장선생님께서 '넌 내가 관찰하니까 앞으로 대단히 성공할 것 같다. 법학을 해라'라고 하시더군요. 부모님께서도 그런 방향으로 권유를 하셨고, 자연스럽게 법학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광복을 맞이하고 대한민국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직접 목도하며 그에게 '국가'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다. 그의 '헌법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해방 후 남북 이념 대립 등을 목격하고 자라면서 국가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초등학교 2학년때 해방이 되고 정부가 수립되면서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통치라는 게 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공이 헌법이지만 그 중에서도 헌법철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1936년에 태어나 격동의 시대

    겪은 역사의 산 증인


    전쟁의 난리통도 이겨낸 그에게 가장 큰 위기는 고3때 찾아왔다. "6·25 이후 가세가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 위장병에 폐결핵까지 앓게 되셨는데 저도 전염됐습니다. 당시 폐결핵 사망률은 80%에 달했습니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잘 먹어야 낫는 병인데 집이 가난하니 잘 먹지도 못하고…."


    그러나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순간에도 그는 결국에는 모든 것을 이겨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바른 길로 가는 과정이 좀 복잡하고 지루할지라도 결국은 가야 할 길로 만사가 가게 돼 있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재주 있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셨는데 이를 악물고 버티면 죽지 않고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대학교 3학년 때 완치가 됐죠. 오랜 과정을 거쳤지만 나아지더군요. 그런걸 봐도 역시 내가 타고난 운명이 그렇다면 그 길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사필귀정(事必歸正)', 이 네글자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산다고 했다.


    "법학 하려면 독일로"… 

    홀로 독어 공부하며 꿈 키워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독일'이다. 폐결핵으로 학교를 가지 못하던 시절 혼자 독일어를 공부해, 훗날 경희여고에서 3년 간 독일어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법학을 하려면 법학의 원조인 독일로 유학을 가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독일어 공부도 꾸준하게 했죠. 결국 독일 장학생 제도 선발 시험에 응시해서 1966년 독일 유학을 떠났습니다."

    20.jpg


    어렵게 얻은 유학 기회였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유교사상이 깊었던 그의 아버지는 장남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허 교수의 유학을 반기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고, 7남매 중 위에 누나 한 분이 계셨으니 제가 맏아들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번민이 컸겠어요? 하지만 '내가 여기 남아 겨우 생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과연 우리 가족을 위해 명예로운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독일 유학 중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때는 통신이 느릴 때라 이미 장례식이 끝난 후에 전보를 받았는데 그 전보를 받아들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아버지 생각을 하면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평생을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허 교수는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허 교수는 현재 모교인 경희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명함 뒷면에는 박사를 뜻하는 'Dr(닥터)'가 두번 들어가 있다. 첫번째는 1971년 독일 뮌헨대학에서 받은 학위, 두번째는 2007년 독일 본 대학교에서 외국인 최초로 받은 명예법학박사 학위이다. 특히 두번째 학위는 본 대학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번째로 수여한 명예박사학위라 깊은 의미를 지닌다. 당시 허 교수의 학위 소식은 본지역 일간지에도 '한국과 독일의 교량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비중 있게 보도됐다.


    뮌헨대학서 '규범통제' 주제논문은

    최고등급 받아


    "독일에서 박사학위 논문이 성립되려면 세가지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첫번째는 주제의 독창성입니다. 독창적이어서 누구도 다루지 않은 주제로 써야합니다. 두번째는 논증의 독창성입니다. 논리 전개가 독특하거나 다른 사람의 전개와는 달라야 합니다. 세번째는 결론의 독창성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도입되지 않았던 '규범통제'를 주제로 한 허 교수의 논문은 논증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최고 등급인 슘마쿰라우데(summa cum laude, SCL)를 받았다. 논문이 통과되고 그의 지도교수가 그에게 전한 말은 지금까지도 마음을 울린다고 말했다. "지도교수님께서 '자네가 비록 SCL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학위라는 것은 공부를 끝냈다는 증명이 아니라 이제부터 자네가 혼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거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말고 자네 스스로 혼자 공부를 해 나갈 수 있도록 자격을 인정해 준 것임을 잊지 말게'라고 하셨습니다."


    '법학자는 학문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목적으로 생각하라.' 그의 학문적 롤모델인 패터 레르혜(Peter Lerche) 교수에게 배운 철학이다. "제가 제자들에게도 학자로서 늘 얘기하고 강조하는 것이 교육, 연구, 사회봉사입니다. 사회봉사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역할은 연구와 교수에 비중을 둡니다. 사회봉사는 아직까지도 하고 있지만 지금 헌법적으로 주요한 이슈가 등장했는데 바른 이야기를 해주는 게 사회봉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회봉사를 정치계에 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소위 말하는 폴리페서(polifessor)가 너무 많아 그런 점은 지양해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박 대통령의 결정적 잘못은

    '국무회의 절차' 무시


    허 교수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으로 지탄 받고 있는 현 정권을 강력 비판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서글프고,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격이 그것밖에 안 되나 싶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헌법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어떻게 대통령이 그렇게 헌법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했을까, 국정을 수행하는 절차와 방법이 있는데…'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헌법 제89조는 국무회의 심의 항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적인 잘못은 이 같은 국무회의 절차를 무시하고 비선정치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이 정한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국정을 살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대해서는 냉철한 학자로서의 이성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법학자답게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탄핵심판 절차도 형사소송 절차와 비슷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줘야 합니다. 대통령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증거에 대해서는 검증해야 하고, 그 절차가 얼마나 걸릴 것인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죠. 여론에만 편승해 빨리빨리만 강조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신중하게 그러나 속도감 있게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탄핵 계기로 정치수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그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정치권의 역할도 촉구했다. "법정신에 따라 해야 하는 게 재판입니다. 여론에 편승해서 할 수 없죠. 그걸 지키지 않으면 재판이 아니라 인민재판입니다. 국민은 마음 급하게 생각하지만 어차피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돼 있는 상태이니 기다릴 것은 기다려야 합니다. 빨리 인용하라는 쪽이나 기각하라는 쪽이나 사회를 양극화 시키는 것은 국익에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헌재가 신속하고 공정하게 심판할 것과 그런 헌재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허 교수는 개헌과 관련된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번 탄핵심판 사건을 계기로 정치수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합니다. 탄핵이 되든 안되든 현행 헌법에 따르면 다음 대통령은 또다시 제왕적 지위를 누릴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개헌을 추진하도록 현행 헌법에 부칙 조항을 추가하는 내용의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차기 대통령은 개헌을 강제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거죠. 현행 헌법을 놔둔 채 부칙에 한 조문만 추가하는 내용의 원 포인트 개헌으로 차기 대통령이 보다 폭넓은 개헌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대 대통령이 취임 후 1년 이내에 국민이 원하는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회부하고, 개정 헌법에 따른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제 아이디어입니다."


    허 교수는 헌법학계에도 전문화, 디지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헌법학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첫째가 전문화입니다. 헌법학이 아니라 예컨대 양심의 자유, 지식재산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얼핏 그사람이 떠오르도록 말이죠. 이제는 전문화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두번째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헌법학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헌법학은 아날로그 헌법학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제는 디지털 시대가 됐기 때문에 그에 맞는 헌법학을 위해 기본권도 보충해야 합니다. 디지털 기본권이 발생시키는 문제점, 예를 들면 타인의 명예·권리침해, 공중도덕해이나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그런 사태가 많이 발생하는데 그에 대한 예방책을 깊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많이 본 기사

    리걸북스

    더보기

    리걸에듀

    리걸인사이트 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