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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보호소년들의 ‘호통판사’ 천종호

    "비행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곳은 따뜻한 가정"

    이세현 기자 shlee@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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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보호재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천종호'라는 이름은 안다. 혹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호통판사'라는 단어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가 비행청소년들에게 "무릎꿇고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열번 말하라"며 매섭게 호통치던 모습이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천종호(52·사법연수원 26기)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푸근한 인상이었다. 농담을 하고 웃다가도 비행청소년 얘기만 나오면 눈에 이채(異彩)를 띄며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생각한 것과 이미지가 다르다는 말에 "제 별명이 원래 두 얼굴의 사나이입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비행청소년들의 수호천사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천 부장판사를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부산 연제구 부산가정법원에서 만났다.

    "어린시절 7남매에 부모님까지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육성회비 500원을 못내서 학교에서 쫓겨난 적도 있고 중·고등학생 때는 동사무소에서 생활이 어렵다는 증명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고 학비를 반만 내고 다녔습니다. 수학여행은 꿈도 못 꾸었죠."

     

    학창시절을 어렵게 보낸 천 부장판사가 처음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 것은 '가족을 챙겨야겠다'는 막연한 책임감에서였다.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습니다. 형제가 일곱이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남을 도와주겠다고 생각하는 건 허영이었죠. 그래서 처음엔 판사를 좀 하다가 변호사로 개업할 생각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나중에 개업하면 도와줄테니 그때까지는 나한테 도움을 청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2월에 소년재판을 맡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져버렸습니다."

     

    이제는 가족보다 비행청소년들을 더 챙기게 돼 미안하다는 천 부장판사는 당시엔 소년재판을 맡게될 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가족들 부양' 막연한 책임감에

    법조인 꿈 꿔

     

    "통상의 인사관례대로라면 저는 2010년엔 부산지법으로 가야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고 인사발령을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기가 헐레벌떡 들어와서는 '형, 우리 창원으로 발령났어'라고 하길래 '그럴리가 없다'고 했었죠.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법원 정책이 바뀌어서 고참들을 각 지법으로 골고루 보낸 것이었습니다. 법원 정책 때문인데 지인들은 저를 위로하며 '어쩌다 그렇게 발령이 났느냐. 뭘 잘못했느냐'고 계속 그러니 기분은 별로 안좋았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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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지법 발령과 함께 천 부장판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형사단독재판과 소년재판 두 가지였다. 가사재판을 해 본 경험이 있는 그는 가정의 문제가 소년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소년재판을 택했다. 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호통 재판'을 시작했다.

     

    "처음 소년재판을 맡았을 때 하루 재판할 사건수가 평균 80건에서 많으면 120건이었습니다. 하루에 120명 재판하려면 한 아이에게 할애되는 시간은 3분가량 밖에 안 됩니다. 이름 부르고 비행사실 읽고 처분내리기도 모자란 시간이죠. 그 짧은 시간안에 아이들에게 법정에 선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음에 오면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 아이들에게 아무리 좋은 말로 해도 안 통하거든요. 그래서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호통'은 아이만 아닌

    부모에게도 향한 것


    그 '호통'은 아이들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아이의 부모님에게 호통치는 의미도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이 아이가 여기오지 않았느냐'는 뜻이죠. 예를 들면 어떤 부모가 이혼하면서 중학생 여자아이와 초등학생인 남동생을 다 고아원에 보내버렸습니다. 멀쩡히 부모가 있는 애들이 고아원에 왔으니 다른 원생들이 곱게 볼리 없지요. 그래서 이 아이들이 적응을 못하고 시설을 뛰쳐 나와 몇천원씩 돈을 훔쳐 생활하다가 결국엔 중학생 여자애가 조건만남을 하면서 남동생을 먹여살렸습니다. 그런 애들이 재판받으러 법정에 오면 부모를 야단칠 수 밖에 없습니다."

     


    천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외치라'고 시키는 것은 강압으로 비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엔 담담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할래, 말래'라고 해서는 아이들이 안 받아들입니다. 진지하게, 엄숙하게 해야죠. 비행청소년과 부모들은 대부분 사이가 안좋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거의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법정에 서게되면 그래도 자식이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겠다고 이혼한 부부들이 서로 연락해서 법원에 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법정이라는 공간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그걸 장난으로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입속말로 하는 것과 큰소리로 외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큰 소리로 해야 감정이 터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와의 관계 해소의 출발점이 됩니다."

     

     

    천 부장판사는 "법정은 가족관계 해소의 출발점에 서게 해주는 것 뿐이고 나머지는 국가나 사회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 비행 막으려면 품행교정 보다 

    환경조성 중요

     

    "재비행을 막기위해 필요한 것은 품행교정과 환경의 조정입니다. 품행교정은 상담이나 교육인데 이것만 해서는 반쪽자리 정책에 불과합니다. 비행청소년이 낮에 상담소 가서 바르게 살아야지 맘 먹었는데, 당장 집에 돌아가니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폭력을 쓰고 어머니도 안계시고 먹을 것도 없다면 그 마음 먹은 것이 오래 가겠습니까. 품행교정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 조정입니다. 그런데도 국가는 환경 조정 분야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습니다. 부모 책임이라며 초기에는 방치하다가 문제를 저지르면 소년원에 보내버리죠. 그렇게 소년원 보낸 애들이 나오면 다시 방치했다가 교도소 보내는 그런 잘못된 교정정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초기 비행단계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보살펴주면 비행의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는 애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니 소년재판하는 많은 판사들이 속이 타지요."

     

    그렇게 애가 타는 마음에 창안한 것이 '사법형 그룹홈'이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다시 비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대안 가정을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사법형 그룹홈이 복지법 적용을 받는 공식 시설로 인정되기까지의 과정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국회의원 300명에게 편지를 써 보내며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했는데, 법안이 발의되고 국회 본회의 표결까지 가는 데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어렵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갔는데 거기서 반대해서 또 좌절했죠.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는데 비행청소년을 위한 법을 누가 신경써줄까 싶어 솔직히 포기했었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또 몇년이나 걸릴까 생각하니 아득하더군요. 그때 임종헌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에 뜻 있는 분들이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줘서 마지막 본회의 때 겨우 통과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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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안은 통과 됐어도 아직 갈 길은 멀다. 기획재정부가 법 통과 당시 예산을 신청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천 부장판사는 국가가 비행청소년을 지원하는 것은 단지 소년법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선진국들은 청소년지원시설에 아이 한 명당 수천만원씩의 예산을 지원합니다. 선진국은 저출산이 심각한 상태인데, 출산장려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잘 관리해서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적 비용이 덜 든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과감하게 투자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저출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들수 있는 초기 비행청소년이 전국에 수만명이 있고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가정입니다. 지금은 180명가량만 사법형 그룹홈 위탁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설 확대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소년재판부는 판사들 사이에서 기피부서로 통한다. 너무나 많은 감정소모에 '번아웃(burn out, 탈진)'되기 때문이다. 그런 소년재판을 8년째 맡으면서, 대안가정까지 만들어 가며 부단히 노력하는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사명이라고 생각하니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힘들죠. 상처 입어 밤잠도 설치고 그 처분이 정말 맞는 처분이었나 하는 고민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많이 도와주고 싶고 비행을 멈추게 해주고 싶으니까요. 제가 여기서 멈추면 소년 관련 제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지 못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큽니다."

     

    천 부장판사가 언론과 접촉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바로 비행청소년을 위한 더 많은 제도를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보고 미쳤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중에 정치하려고 그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비행청소년의 실상을 누군가 대변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 아이들은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합니다. 부모가 지켜주지도 않고 사회가 멘토 역할을 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런 악순환을 태생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처지입니다. 그냥 그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는 가족보다 더 챙기게 된다는 보호소년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다시 자신 얘기를 꺼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갈 무렵 등록금 마련이 쉽지 않은 등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습니다. 원서쓰는 마지막날까지 원서를 못 넣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부산)국제시장 근처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서로 이름만 아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그 친구가 대뜸 원서썼느냐고 묻기에 안 썼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자기돈으로 원서도 사주고 같이 학교가서 교장선생님 직인도 받아주고 대학교까지 데려다줘서 마감 20분 전에 원서를 접수시켰습니다. 그 친구 아니었으면 대학에 못갔겠죠.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가와 너를 도와주려고 한다면 그걸 잡으라고 얘기하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다른 도움의 손길이 또 나타난다'고 말입니다. 비행청소년들이 도움의 손길을 잡고 과감하게 받아들여 자신을 바꾸고자하는 의지를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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