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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군법무관의 대부(代父)’ 전창열 변호사

    "남이 하지 못한 것을 찾아 익혀야 인생에 보람이…"

    박미영 기자 mypark@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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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회 군법무관 임용시험 출신으로 25년간 복무하며 군 '법무병과' 발전을 위해 힘써온 예비역 소장이 있다. '군법무관들의 대부(代父)'로 불리며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전창열(77·군법1회) 법무법인 한덕 대표변호사다. 제21대 육군 법무감과 국방부 법무관리관, 국방부 군사법원장 등 법무병과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그는 헌법 개정으로 군법회의가 군사법원으로의 변화하던 시기에 오늘날의 군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퇴역 후에는 후진들에게 자문을 아끼지 않으면서 역사와 불교 연구에 심취해 있다. 국군의 날을 1주일 앞둔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한덕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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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서울 마포구 신공덕에서 4남 1녀의 차남으로 태어난 전창열(77·군법1회) 법무법인 한덕 대표변호사는 어린 시절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겪었다.

     

    "1950년 6·25 전쟁이 나던 해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학살 당하고 죽는 처참한 현장을 목도했습니다. 당시 복막염으로 치료를 받으시다 퇴원하신 지 얼마 안 된 어머니께서 피난길에 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막막했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피난길에 강제노역에 끌려가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전 변호사는 군 생활을 하던 형을 대신해 아버지를 모시고 어려운 형편에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비를 보탰고, 고생하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학업에 매진했다. "끼니조차 어렵던 시절, 저를 지탱했던 건 아버지께서 사오신 동아백과사전이었습니다. 학생 때 덩치도 크고 체력도 있어 자칫하면 나쁜 길로 샐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단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박봉에도 백과사전을 사오신 모습을 보고, 그게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박봉에도 '백과사전' 사 오신

    아버지 보고 감격

     

    묵묵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의 믿음은 그를 바른 길로 이끌었다. 그의 인생에 운명과도 같은 '법'과의 첫 만남도 이때 이뤄졌다.

     

    "당시 중학교 동기의 형이 고려대 법대를 다녔는데, 그 사람이 말도 멋있게 하고 생긴 것도 잘 생겨서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형에게 은연중에 법대생의 장점도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검사가 꽤 괜찮은 직업인 거 같아 검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법대를 지원했어요."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전후(戰後)의 빈곤은 그에게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졸업을 눈앞에 두고 가정 형편이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도 퇴직하시고, 병역입대연령이 되니까 밑에 딸린 동생들까지….마음이 급박했습니다.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는데, 연거푸 7~8회를 떨어지니 실망도 컸습니다. 그런데 마침 군법무관 시험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생각할 것도 없이 응시했죠. 변호사 자격도 준다니까 여차하면 다른 기회를 찾자. 애초에는 그렇게 군법무관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검사와 여선생' 영화보고

    검사 되려 법대 지원

     

    생계를 이유로 들어선 군법무관의 길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근현대사의 격동을 맞이하게 됐다. 논산훈련소 병 부식 부정사건,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교육부정사건,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의 유류부정사건 등 전례없는 대형 사건들이 발생했다.

     

    "1979년도에 육군본부 검찰부장으로 왔는데, 그 해에 창군이래 대형 비리사건이 모두 터졌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군용유류 부정사건이었는데,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이 처음에는 부정처분한 유류를 8000드럼이라고 사건 송치를 해왔는데, 기록을 살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당시 군법무관은 직접 수사권이 없었습니다. 보강수사라는 형식으로 당시 인천지검에 윤재기 검사와 의견을 교환해 수사에 나서, 1만 드럼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법무병과라는 곳에 검찰관이 2~3명밖에 없었던 시절입니다. 인원이나 수사 경험, 수사 장비도 그렇고 체제 정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건을 통해 훈련을 했던거죠."

     

    군내 비리를 파헤쳤던 그에게 최근 불거지고 있는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방위산업이라는 게 발전이 더디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외국 무기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군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점인지 파악해 미리 고쳐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방산비리 문제는 외국과 관련된 군수납품비리가 많았고, 연구개발하는 과정에서 늦어지는 바람에 스펙을 고쳐 합리화했다해서 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같은 데가 없습니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수없이 많은 실패를 딛고 무기를 개발합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방위산업을 육성하려면 정부의 지원 없이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물론 잘못된 부분은 밝혀내고, 처벌해야 하지만 방위산업 전체를 부정하거나 범죄시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군시절 대형비리사건 모두 경험…

    변곡점은 10.26

     

    군시절 연이은 대형 사건 처리 경험은 그의 인생에 변곡점이 됐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로 10·26 사건이었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입니다. 앞서 유류 부정처분 사건을 마치고 기진맥진해서 서빙고 군인아파트에 귀가해 쉬고 있는데 늦은 밤 갑자기 전화가 따르릉 울렸습니다. 육군본부 지하벙커 B1으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부리나케 들어갔더니 장성들이 왔다갔다하고 심각한 분위기였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변호사는 그 길로 궁정동 안가로 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현장 검증에 나섰다. 현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돼 있었지만,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운명적으로 10·26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사건처리 전체를 총괄지휘하는 한편 김재규와 김계원에 대한 직접 조사를 맡았습니다. 김재규의 범행동기와 목적을 밝혀야 했는데, 확실하게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알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김재규는 나중에 점점 민주투사로 자기가 논리를 구성하고 주장해 남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건 아니지 않느냐' 생각했습니다. 혁명을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어설펐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연계를 하지 않고 자기 부하들한테만 그 얘기를 했고, 시해하고 난 다음 남산터널 근방에서 어디로 갈지 방향조차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체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통령을 현직 정보국장이 살해하는 사건이 이후에도 발생한다면 폭력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후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테니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민주투사로 불릴 수도 있겠지만, 항상 사람의 양면성이라는 게 있는데,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건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현장검증…

    김재규도 직접조사

     

    10·26 사건은 군과 정치 표면에 법무감실의 역할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전 변호사는 군내에 법무병과 역할 증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육군 법무감(준장)을 마치고 국방부 법무관리관(소장)으로 부임했습니다. 당시에 법무관리관실에 오는 법무업무라고 하면 일종의 요식행위처럼 협조에 사인을 하고 장관 결재를 받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사전에 법률적 검토를 해서 수정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반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 마침 노태우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소야대 국면이었는데, 모든 업무에 있어서 법률적 검토를 받지 않으면 국회에서 비판과 질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법무관리관실에서 대국회업무를 전담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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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국회업무를 시작하면서 업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국방분야에서도 법치의 기틀이 마련됐다. "일이 많아지면서 인력이 부족해, 육군본부에서 연수원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을 각 군으로부터 선발했습니다. 그쪽에서 실무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험 있는 사람들이 손질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결과적으로 법률에 의해 일을 처리하며, 한편으로는 군의 정당한 이익도 옹호할 수 있었습니다. 소위 국방업무의 법치행정에 크게 기여를 했던 셈입니다."

     

    그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 최초로 국방부에 판례법령 검색시스템을 고안하기도 했다. "1985년께 미국 군사법시찰 방문 때 참 신기한 것을 봤습니다. 법령 검색시스템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나게 두꺼운 판례집을 꺼내가지고 전부 다 일일이 찾아서 쌓아놓던 시절이었는데, 단어를 딱치니 해당 법령이 쭉 나오고 판례가 나오고, 어떤 사건의 문제점이 주르륵 나왔습니다. 귀국해서도 계속 그 시스템 생각이 나더군요. 그런데 설치할 방법이 없어 난망하던 차에 미 8군에 랜이 들어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걸 끌어들이면 되겠다 싶어 군수예산 불용액을 전용해 판례법령 검색시스템인 렉시스(Lexis)를 국방부에 설치했습니다. 지금이야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외무부나 법무부에서도 미국에 관한 법령 같은 것을 찾으려면 우리 쪽에 올 만큼 앞서 나갔습니다."

     

    인터넷 없던 시절 최초

    판례법령 검색 시스템 도입


    1992년 전역한 전 변호사는 그제야 고교시절부터 마음에 품었던 '불교'와의 인연으로 인생의 2막을 열었다. 법조인불교인회 회장과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도 각각 8년여간 지냈다. 

     

    "고 3때 무기정학을 맞았던 일이 있습니다. 방황하던 때였는데, 아무것도 없다보니 큰 맘 먹고 도망간 게 절이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산골에 들어가서, 2개월쯤 보냈죠. 한참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집은 가난하고 감수성은 예민할 때이니 생각이 많았습니다. 칠흑같은 밤, 정적 속에 들려오는 풍경 소리, 바람 소리가 좋았습니다. 내 나이 또래의 어린 승려들이 신화처럼 들려주는 불교 얘기 같은 게 굉장히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마음을 잡고 대학에 진학한 후 가장 먼저 찾아간 게 불교학생회였습니다. 나중에는 한국 대학생 불교연합회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곧 팔순… 새로운 것보다 

    자신의 확립에 힘써

     

    산수(傘壽, 80세)를 바라보는 그는 새로운 것보다 자신을 확립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 앞서 나가지도, 너무 뒤쳐지지도 않게, 젊은 후진들이 자문을 구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군대라는 게 사실은 좋은 직장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절제된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에 왕성한 책임감이 생깁니다. 

     

    좁은 사회에 있으니까 상하좌우 인간관계가 상당히 친밀해질 수 있고. 일반 법조계와는 달리 군사와 행정, 법률에 관한 지식과 경험은 물론이고. 때로는 국제감각을 익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변호사 개업을 하는데 재조의 송무, 재판 경험을 따라갈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한다는 기분으로 새로운 분야로 가서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연구하라고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비단 군법무관 후배들 뿐만 아니라, 청년법조인들도 남이 못한 것을 찾아 전문 지식과 경험을 익혀 사회로 진출해야 인생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날 사진을 촬영한 용산 전쟁기념관은 그가 국방부에 있을 때 주도했던 전쟁기념사업의 결과물이다. 전 변호사는 명예퇴직금의 4분의 1을 이 전쟁기념관 건립에 쾌척했었다. "지나온 인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제 삶이 자랑스럽습니다." 진심을 다해 군인이자 법률가로 살았던 그의 인생 제3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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