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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67주년 특집] “판사 됐으면 끝까지… 법관들 자부심 가졌으면”

    광명시법원서 10개월… 조병현 원로법관

    이장호 기자 jangho@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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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인터넷에서 한 미국 노(老)판사의 재판 영상이 화제가 됐다.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70대 정도로 지긋해보이는 판사가 교통법규 위반자의 어린 아이들을 법대로 불러 의견을 들어가며 재판을 하는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재판을 이끌어가는 모습에는 오랜 판사 생활의 연륜이 묻어나왔다. 정년이 지나도 종신제로 근무할 수 있는 '시니어 법관' 제도가 있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올해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의 법정 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 원로법관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종신제는 아니지만 법원장까지 지낸 경력 30년 이상의 원로판사 5명이 일선 시·군법원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소액사건이나 즉결심판 사건 등을 담당하고 있다. 본보는 창간 67주년을 맞아 원로법관 가운데서도 최고참인 조병현(62·사법연수원 11기) 광명시법원 원로법관을 만나 원로법관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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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광명시 지하철 7호선 철산역 인근에 주민센터보다 작은 법원이 하나 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광명시법원이다. 판사 1명과 직원 8명으로 구성된 이 작은 법원에는 지난해까지 판사가 상주하지 않았다. 안산지원에서 파견된 판사들이 주기적으로 들러 재판하는 것이 전부였다. 올 2월 이 작은 법원에 거물급 법관이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대구와 대전, 서울에서 고등법원장을 지낸 조병현 원로법관이다. 대법원은 올초 평생법관제 정착의 일환으로 법관 경력 30년 이상의 판사 가운데 자원을 받아 원로법관으로 임명해 시·군법원 등에서 소액사건 등 민생사건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 부장판사를 비롯해 조용구(61·11기), 심상철(60·12기), 강영호(60·12기), 성기문(64·14기) 등 법원장을 지낸 원로판사들이 광명과 광주시법원,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원로법관으로 일하고 있다. 정년을 앞둔 연륜 있는 노(老)법관들이 시민들 곁에서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갈등 해결사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34년 판사 생활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군법원 판사 생활이 어떤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 원로법관은 "무척 만족스럽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긴 법관 생활 동안 이렇게 작은 법원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민사지법에서 초임 법관 생활을 시작한 조 판사는 대부분의 법관 생활을 서울, 수원, 대전, 부산 등 큰 도시 법원에서 했다. 광명시법원 식구는 조 판사를 포함해 9명에 불과하다.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서초동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고요함과 평온함이 법원 입구에서부터 느껴진다.

     

    인터뷰 시작 전 집무실에서 잠깐 지켜 본 50대 후반의 사무원과 조 원로법관의 대화에서는 마치 '10년 지기' 이상의 친분이 느껴졌다. "식구가 9명이다보니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웃음). 거의 매일 점심을 함께 하죠." 

     

    조 원로법관의 일주일은 작은 재판의 연속이다. 소액사건 재판은 목요일 하루뿐이지만 화요일 오전에는 즉결심판, 오후에는 조정위원들과 조정을 한다. 수요일에는 협의이혼을 신청한 부부들의 이혼의사를 확인한다. 금요일과 월요일에는 재판 준비로 분주하다. 작은 시법원의 소액사건들이라 대부분이 이웃끼리, 가족끼리 다투는 소소한 분쟁이다. 하지만 그는 사건 하나하나의 무게감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복잡하고 무거운 사건들은 서울중앙지법에 더 많죠. 그러나 당사자들이 목숨을 거는 사건은 사건의 소가(訴價)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소가가 작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절실한 사건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소가로만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원로법관의 능력은 더 빛을 발한다. 조 원로법관은 최근 50대 형제가 송사를 벌인 일화를 들려줬다. 형제간에 서로 욕설을 주고받으며 싸운 터라 마음에 앙금이 쌓여 화해가 쉽지 않았는데, 그의 말 몇 마디에 20분만에 화해로 끝이 났다고 했다. "처음 형제가 법정에 왔을 때 저는 '나는 형제 간 다툼을 판결로 해준 적이 없다. 이 자리에서 둘이 화해해야 한다'고 하자 형제들이 처음에는 황당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돈이 목적이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계속 싸울 것이냐'라고 묻자 형제가 처음엔 머뭇거리다 '판사님이 해법을 제시해주시면 따르겠다'고 하더군요."

     

    법원 입장에서 보면 소송은 그저 매일 처리해야 할 일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일생이 걸린 문제인 경우도 많다. 따라서 재판이 끝나더라도 당사자가 결과에 쉽게 만족하는 법이 드물다. 혹여 재판장이 어려보이면 "젊은 놈이 뭘 알겠어!"라며 핀잔을 놓기 일쑤다. 그래서 일부 판사들은 흰머리가 생겨도 염색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연륜이 느껴지는 원로법관의 한마디 한마디는 힘이 있다. "형제 둘다 저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타이르는 말이 통하는 거죠. 나이가 당사자들보다 많은 경우가 많으니 통할 때가 많습니다. 노인들을 상대로 고가에 건강식품을 판 판매업자들에게는 '노인들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팔면 노인들이 자식들과 며느리에게 뭐가 되겠느냐'고 하면 물건값을 양보합니다. 이런 점이 오랜 재판 경험을 가진 원로법관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로법관의 효과는 객관적 실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조 원로법관이 11월까지 처리한 사건은 1057건이다. 이 가운데 423건을 판결로 선고했는데, 항소한 것은 고작 23건뿐이다. 불복률이 5.4%에 불과한 것이다. 이 밖에도 144건은 조정·화해로 원만하게 분쟁을 해결했다. 

     

    조 원로법관은 또 조정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양보를 하는 당사자의 체면과 위신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조정을 잘 하려면 원고가 양보를 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법정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양보하는 것이 바보 같은 게 아니라 '당신이 다 이길 수 있지만 상대방 처지를 생각해 양보를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면 원고도 양보를 하게 됩니다."

     

    34년 판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판사 7년차 울산지원 형사단독 시절 맡았던 60대 할머니 사건이었다고 했다. "산밑에서 밭을 일구던 할머니가 군청 직원들의 말을 무시하고 혼자 밭을 태우다가 불이 산으로 번져 큰 불이 난 사건이었습니다. 사안이 중해 구속재판이 이뤄졌는데 그 할머니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지금 제가 다시 재판을 하면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을텐데, 그때 저는 그 할머니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분이 항소를 하지 않아 그 형을 다 살았습니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인 상태에서 재판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곱씹어 봅니다. 평생 재판하면서 아직까지 마음에 걸립니다."

     

    조 원로법관은 퇴임 후에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보수와 상관없이 공적인 업무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변호사를 하면 돈은 더 벌 수도 있지만, 판사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이제는 개인을 위해 뭘 한다는 게 새삼스러워집니다. 제 경험을 살려 사심없이 국가나 공적인 일에 봉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최근 법원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재조사를 할지 말지는 대법원장님의 결정사항이고 권한입니다. 재조사를 반대하는 측도 있고 요구하는 측도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법관들이 어느 쪽을 더 많이 지지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재조사를 하기로 했으면, 대법원장님이 그렇게 결정을 했으면, 믿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여기에 정치적 편향성과 같은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는 블랙리스트 재조사위원장인 민중기(58·14기)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서울고법원장일 때 수석부장으로 같이 일을 해 잘 알고 있다"며 "균형 감각이 있고 신중한 성격이라 잘 풀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선 판사 가운데 최고참인 그는 후배법관들에게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경력법관제와 법조일원화가 자리를 잡으면 앞으로는 평생 법관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될 것입니다. 판사가 된 이상 끝까지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법관으로서 긍지를 충분히 가져도 되는데, 우리 판사들은 너무 자조적인 것 아닌가 합니다. 우리 사법부는 외국에서도 효율적·경제적 판결을 한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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