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 기업의 도산이나 책임재산의 부족으로 임금 등을 지급받지 못하고 퇴직한 근로자가 체불된 임금, 퇴직금 및 휴업수당 등을 현실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하여 그 지급을 보장해주기 위해 '임금채권보장법'이 제정되었다. 국가가 근로자들을 위해 별도로 조성된 재원인 임금채권보장기금으로부터 사업주를 대신하여 그 지급을 보장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현실적으로 임금지급이 가능하더라도 기업의 도산 또는 파산 시 절차상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소요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근로자생활의 어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2) 고용노동부장관은 기업의 도산 등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근로자의 신청에 따라 해당 기업에 도산 등 사실인정을 하고 사업주를 대신하여 근로자에게 미지급 임금 등을 지급하는데 이를 체당금이라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자에게 지급한 체당금의 한도 안에서 사업주에게 근로자가 임금 등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대위하고 사업주에 대한 강제집행 업무는 고용노동부의 위탁을 받은 근로복지공단이 수행한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근로기준법'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받는다. 그런데 위 조항은 2005년 3월31일 '반의사불벌죄'로 개정되었다.
3) 근로기준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 때문에 임금채권보장법의 도산 등 사실인정제도가 근로자에게 임금 등을 지급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업주에 의해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임금채권보장법상 도산 등 사실인정 제도 및 이와 관련된 근로기준법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관련 법령
임금채권보장법 제7조제1항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장관은 사업주가 파산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퇴직한 근로자가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에 대하여 지급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469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같은 법 제7조제2항에 따라 그 근로자의 최종 3개월분의 임금, 최종 3년간의 퇴직급여, 최종 3개월분의 휴업수당 등을 사업주를 대신하여 지급하고, 같은 법 시행령 제5조제1항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장관은 ① 상시근로자수가 300명 이하일 것, ② 사업이 폐지되었거나 ㉠ 그 사업의 생산 또는 영업활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주된 업무시설이 압류 또는 가압류되거나 채무 변제를 위하여 양도된 경우, ㉡ 그 사업에 대한 인가곀昇죦등록 등이 취소되거나 말소된 경우, ㉢ 그 사업의 주된 생산 또는 영업활동이 1개월 이상 중단된 경우 중 어느 하나의 사유로 사업이 폐지과정에 있을 것, ③ 임금 등을 지급할 능력이 없거나 ㉠ 도산등사실인정일 현재 1개월 이상 사업주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 사업주의 재산을 환가하거나 회수하는 데 도산등사실인정 신청일부터 3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중 어느 하나의 사유로 임금 등의 지급이 현저히 곤란할 것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 당해 사업주로부터 임금 등을 지급받지 못하고 퇴직한 근로자의 신청이 있을 때에는 당해 사업주가 미지급 임금 등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인정(도산등사실인정)할 수 있다.
한편 근로기준법 제36조, 제109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나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3. 문제점
1) 임금채권보장법상 도산 등 사실인정요건은 너무 허술하다. 기업의 주된 영업활동이 1개월 이상 중단되고 사업주가 1개월 이상 연락이 안되면, 고용노동부는 해당 기업에 대해 도산 등 사실인정을 해야 한다.
2) 그러므로 사업주는 근로자를 퇴직시키고 나서 회사의 자산을 허수아비 사장을 내세워 다른 법인을 설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빼돌린다. 근로자는 고용노동부에 자신이 퇴직한 날의 다음 날부터 1년 이내에 도산 등 사실인정 신청을 할 수 있으므로 근로자가 고용노동부에 도산 등 사실인정 신청을 할 시점에는 사업주가 이미 회사의 자산을 다 빼돌려서 고용노동부에서 근로자를 대위하여 사업주에게 구상할 자산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3) 물론 근로복지공단이 법인격부인론 등을 주장하여 사업주가 설립한 다른 회사에 체당금을 구상하거나 사업주에게 직접 체당금을 구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적인 영역에서 공권력 주체가 사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법인격 부인론을 주장하는 것은 법인격 남용에 따른 부담을 사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법인격부인론을 공적인 영역에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견해가 있어 일단 법인격부인론을 적용할 수 있는지도 문제시되고, 가사 법인격부인론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주가 허수아비 사장을 내세우고 신설법인이 자신과 관련 없는 것처럼 주장하면 기존 법인과 신설 법인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조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구상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4) 근로자가 고용노동부로부터 해당 기업에 대해 도산 등 사실인정을 받고 이후 체당금까지 받으면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임금체불을 이유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자신이 기소된 건에 대해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해 줄 것을 종용하고 체당금을 받은 근로자들이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하면 사업주는 형사적 처벌을 면한다.
5) 이로써 사업주는 근로자의 임금체불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허수아비 사장을 내세워 계속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기획부동산 판매 등 영업이 주된 업종인 회사의 사업주는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텔레마케터 등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직원을 빨리 고용한 후 임금을 체불하고 회사를 폐업시킨 다음 다시 다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또 다른 직원을 고용하기도 한다. 체불임금에 대해 항의하는 근로자들에게는 체당금 제도가 있으니 고용노동부에 가서 받으라고 종용하고 근로자가 체당금을 받으면 근로자를 설득하여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하게 하여 임금 미지급에 대한 형사처벌을 피하는 것이다.
6)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에게 체당금을 지급하고 그 지급한 금액의 한도에서 근로자의 사업주에 대한 임금지급청구권을 대위하면서 법인격부인론을 원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법인이므로 주로 산재보험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에게 근로자의 사업주에 대한 임금지급청구권을 대위하면서 법인격부인론을 원용할 수 있도록 다 조사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 있다.
4. 해결방안
1) '임금채권보장법'상 도산 등 사실인정 요건을 보다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가 퇴직한 날의 다음 날부터 1년 내 도산 등 사실인정신청을 하는 것을 6개월 내 등으로 축소하고 기업의 주된 영업활동의 중단과 사업주가 연락이 안 되는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근로자의 기본생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임금채권보장법의 기본취지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2) 또 다른 방안으로는 체당금 제도가 인정되는 근로자의 범위에서 텔레마케터가 주 업무인 영업직 직원은 제외하는 것이다. 텔레마케터는 실질적으로 근로자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임금 산정도 어려우며 제조업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자신의 전문기술이 있으므로 도산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영업회사는 전문적 지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텔레마케터들을 고용하여 이들에게 전화로 영업을 하게 한 후 임금을 미지급하고 회사를 폐업해 버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국가재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는 체당금을 받는 근로자에 영업직은 제외해야 한다.
3) 위 두 방안 모두가 근로자의 기본생활의 안정 도모라는 체당금 제도의 기본취지에 어긋난다면 체당금 제도를 악용하는 사업주라도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사업주의 임금체불에 대한 처벌에 대해 근로기준법상의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삭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체당금을 받게 한 후 자신의 형사처벌을 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어야 사업주도 책임감을 가지고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려고 할 것이고 체당금이라는 국가재원도 낭비 없이 사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