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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민사소송법의 대가’ 호문혁 사법정책연구원장

    연구원은 대학의 연구와 다른 독자적 가치 있어
    법조인·로스쿨생,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이순규 기자 soonlee@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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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뗏목은 강을 건너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 뗏목을 붙잡고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민사소송법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호문혁(70) 사법정책연구원장은 40년 가까이 서울대 등 강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해왔지만 자신의 가르침도 뗏목과 같다며 제자들에게 과감하게 버리라고 말한다. 배움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지에 이르길 바라는 스승의 마음이다. 그는 넉넉한 인품으로 제자들을 살갑게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호 원장은 1978년 영남대에서 강의를 시작해 1986년부터 서울대 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8년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로스쿨을 정착시키는 데 헌신했고, 2016년 2월에는 사법정책연구원장으로 취임해 사법제도와 재판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에 매진했다. 열정적인 삶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했다. 부모님이 북에서 빈손으로 내려왔지만 성실한 삶을 통해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보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눈빛으로 거침없이 대답하면서도 중간중간 농담을 건네는 '소탈한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다. 사법정책연구원장 퇴임을 앞둔 지난달 24일 '한국 민소법의 대가' 호 원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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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문혁(70) 사법정책연구원장은 1948년 7월 17일생(生)이다.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공포된 날이다. 헌법과 생일이 똑같다.

     

    "부모님 두 분 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입니다. 거기서 두 형을 낳으셨고 해방 이후 서울로 내려오셔서 저를 낳았습니다. 헌법은 제 쌍둥이 동생입니다. 제가 아침에 좀 일찍 나왔거든요(웃음)."

     

    호 원장은 공과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경기고 3학년 때 법대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제가 적색과 녹색이 헷갈리는 적록색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적록색약이 있는 사람은 당시 이과 지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굉장히 실망했어요. 그러고는 우리말에 일본말이 섞여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고 예쁜 우리말을 개발하는 국어학자가 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실 책상이 조금 삐뚤어져 있어 바로 잡으려고 하는데 앞에 앉아 있는 친구 의자에 걸려서 안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좀 빼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뒤돌아보면서 '야! 너 법대나 가라!'고 하는 겁니다. '뜬금없이 왜 법대를 가라고 하지?' 이상하게 자꾸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정말 법대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방문학자로 독일行…

    민소법 분야 박사학위 까지

     

     

    민사소송법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됐지만 호 원장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오히려 형법에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법대 동아리인 형사법학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생들의 형사모의재판은 세간에서도 유명해 동양방송이 녹화중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대 교수이던 이시윤 전 감사원장의 소송물론 강의를 듣고 '소송법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소송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민사소송법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호 원장은 처음에는 독일에서 박사를 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국내에는 민사소송법 전공자가 희귀종이어서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데 영남대에서 교수로 오라고 했습니다. 이후 방문학자로 독일에 갔는데 국내에서는 말은 들었지만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던 논문들이 그곳에서는 손만 벌리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죽어라 복사를 해도 한계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눌러 앉아 여기서 박사 과정을 하자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호 원장은 당시 지도교수였던 페터 아렌스(Peter Arens) 교수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했다. 

     

    "이 양반이 점심 먹자고 해서 멋 모르고 덜렁 간거예요. 밥을 먹으면서 그동안 뭘 읽었냐고 슬쩍 물어봐요. 당시 집을 옮겨 이사도 하고 그래서 별로 못 읽었다고 하니 표정이 싹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렸습니다. 점심 먹자는 말이 공부한 거 가져오란 소리였던거예요. 그 이후에는 저도 달라졌죠. 한 번은 가족들과 이탈리아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기로 했는데, 교수님이 '휴가 끝나면 밥 먹자'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결국 여행을 취소하고 긴 연휴 내내 공부만 했어요(웃음). 독일에 총 5년을 있었는데 여행을 거의 못 갔어요. 연휴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밥 먹자'고 전화가 왔거든요. 교수님 덕분에 3년만에 학위를 따고 서울대 교수로 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송법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죠."

     

    그래서 호 원장도 제자들을 가르칠 때 '팽이 이론'을 이용한다고 한다.

     

    "팽이는 때리면 때릴수록 잘 돌거든요. 독일어를 공부한 지 얼마되지 않은 제자에게 40~50쪽 분량의 원서를 번역해 발표하라고 시킵니다. 죽을 고생을 하죠. 하지만 자존심들이 있으니 못한다는 말은 안하고 결국 해옵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하면 '이걸 봐라'하고 다른 독일어 책을 또 줍니다. 법학은 의학과 같아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잖아요. 판결문이나 소장을 엉터리로 쓰면 '준(準)범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남의 것 베끼고 그런 것은 안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도처에 블루오션…

    일할 곳도 많아

     

    호 원장은 "운이 좋아 제일 좋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제일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친 것 그 자체가 즐거운 삶이었다"고 했다. 다만 뒤를 이을 학문적 후속세대가 줄어드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 졸업생들은 다들 너무 잘나가기 때문에 뒤를 잘 안 돌아봐요. 법조계가 너무 매력이 커서 그런지 학교에 남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앞으로는 법조인과 법학자가 일원화될 것이기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그는 2년 동안 근무한 사법정책연구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사법정책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과 난민, 통일 문제 등에 대해 기존의 틀을 깨고 실질적인 결실을 맺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지난해 모스크바대학과 교류협약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뮌헨대, 와세다대, 베트남 법원아카데미 등과도 지속적으로 교류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연구원은 대학의 연구와는 다른 독자적 가치가 있습니다. 연구주제도 몇 사람이 앉아서 정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을 상대로 공고해 수립합니다. 연구보고서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비교법적 연구가 잘 돼 있어 내용이 탄탄합니다. 예산이 제한돼 있어 우수한 인재를 더 많이 채용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연구원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사법부의 진정한 싱크탱크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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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원장은 우리 사법제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사법제도는 국가의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법제도는 사건 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는 재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법관들은 죽을 힘을 다해 일하지만 여건이 안 따라줍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법관들의 사건부담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법원으로 들어오는 사건을 줄이고 법관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이 아닌 조정이나 화해와 같은 대체적 분쟁 해결(Altnernative Dipute Resolution, ADR) 수단을 적극 활용토록 하되 가급적 수소법원에서 하는 조정 등은 지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소법원이 하는 조정은 당사자에게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고 조정 과정에서 예단이 드러나면 당사자가 법원을 불신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 법관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지금보다 법관 수가 3배는 더 되어야 합니다. 독일에 있을 때 친구 아버지가 독일 법관이었는데 매일 노는 것 같은데 당신께선 자신이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가능·불가능의 개념이 우리와 다르더라구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할 때까지 일만 했는데도 다 못하면 '불가능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인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법관에게 부담을 주면 결국 국민이 손해입니다. 매일 야근하는 판사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사법개혁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로스쿨 제도의 초석을 마련한 호 원장은 로스쿨의 지난 10년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처음 로스쿨이 도입될 당시에는 60점을 줬어요.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의 법대는 폐지했기 때문에 로스쿨 취지에 맞게 다양한 전공을 공부한 사람들이 법조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로스쿨이 변호사시험 합격률에 너무 신경을 써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변시 학원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점수를 준다면 (과락에 가까운) 40점 정도입니다. 엄격한 심사기준을 만들어 로스쿨을 만들었으면 학교를 믿어야지, 그걸 믿지 못하고 시험 수준을 높게 만들어 변시를 통해 우수한 법률가를 만들겠다고 하면 로스쿨 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퇴임하면 명예교수로…

    '소송요건론' 집필 계획

     

    그는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발상 전환을 주문했다.

     

    "과거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시절의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로스쿨생 사이에서는 판례 3000개를 암기해야 변시에 붙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로스쿨 취지에 맞는 변시를 실시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맞지 않는 시험제도를 만들고 있어요. 미국처럼 변호사회가 변시 출제를 맡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일각에서는 '그렇게 되면 실력없는 변호사가 배출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놓지만 그건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호 원장은 또 '법조인'이라는 전통적 관념의 쇠창살을 벗어나 법조인들이 기업과 행정부 등 각 분야에 널리 진출해 분쟁 예방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인뿐만 아니라 로스쿨 학생들도 생각이 박스 안에 갇혀 있습니다. 법조인이라면 판사·검사·송무변호사 그거 밖에 생각을 안 해요. 기존의 고정관념 틀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외국 기업의 CEO들은 로스쿨 출신이 많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생각을 바꾸면 블루오션은 널려 있어요. 훨씬 더 창의적이고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행정부에서 기획을 한다면 그 분야에서는 쥐고 흔드는 지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법률가들이 할 일은 세상에 무궁무진합니다. 미군에서는 폭격을 할 때도 법률 검토를 한다고 하잖아요."


    호 원장은 퇴임 후 서울대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대학원생과 법조인들이 볼 만한 수준 높은 '소송요건론'을 집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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