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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4. 민법 下

    권영준 교수 (서울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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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해행위 취소로 원상회복된 부동산 소유권의 법률관계(대법원 2017. 3. 9. 선고 2015다217980 판결)


    (1) 사안
    A회사는 자신의 부동산을 B회사에 매도하고 등기를 넘겨주었는데 매도행위가 사해행위로 취소되어 등기가 말소되었다. 그러자 A회사는 자신에게 등기가 환원된 것을 이용하여 그 부동산을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고, 그 이후 이에 기초한 다른 등기들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A회사의 채권자인 원고는 그 등기들을 말소하라는 소를 제기하였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채무자가 사해행위 취소로 등기명의를 회복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더라도 이는 무권리자의 처분에 불과하여 효력이 없으므로, 채무자로부터 제3자에게 마쳐진 소유권이전등기나 이에 기초하여 순차로 마쳐진 소유권이전등기 등은 모두 원인무효의 등기로서 말소되어야 한다”고 한 뒤, “이 경우 취소채권자나 민법 제407조에 따라 사해행위 취소와 원상회복의 효력을 받는 채권자는 채무자의 책임재산으로 취급되는 부동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위하여 원인무효 등기의 명의인을 상대로 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3) 분석
    사해행위 취소에 관한 상대적 무효설에 따르면 사해행위 취소의 결과 채무자 명의로 등기가 회복되더라도 채무자는 그 부동산 소유자가 아니므로 제3자에 대한 채무자의 처분이나 이에 터 잡은 등기는 무효이다. 대상판결은 이 점을 이유로 원고가 그 등기 말소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등기 말소를 구할 수 있는 원고의 권리 발생 근거이다. 원고에게는 말소를 구할 계약상·법률상 권리가 없었다. 채권침해나 불법행위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은 제한적으로만 인정된다. 특히 제3자가 선의인 경우에는 더욱 더 채권침해나 불법행위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대상판결은 말소청구권의 발생 근거와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은 채 법 형성에 가까운 해석론을 펼쳤다.

    2.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의 계약체결상 과실책임(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5다10929 판결)

    (1) 사안
    원고들은 피고와 중고자동차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피고에게 자동차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록을 마쳤으나 중간에 개입한 성명불상자의 사기적 행각으로 인하여 피고는 그 성명불상자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하였다. 그 후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매매대금의 액수에 관한 의사 합치도 없었음이 밝혀졌다. 원고들이 피고에게 소유권이전등록말소를 구하자, 피고는 반소를 제기하여 주위적으로는 매매계약의 유효한 성립을 전제로 자동차 인도를, 예비적으로는 매매계약의 불성립을 전제로 매매대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였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피고의 예비적 반소 청구취지에 관하여, “계약이 의사의 불합치로 성립하지 아니한 경우 그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상대방이 계약이 성립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을 이유로 민법 제535조를 유추적용하여 계약체결상의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3) 분석
    민법 제535조는 원시적 불능에 대해서만 규정하나, 학설 차원에서는 이를 계약체결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에 확장 적용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계약교섭의 부당 파기, 계약의 불성립이나 무효, 취소, 설명의무 위반 등의 문제도 민법 제535조의 손해배상책임으로 규율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학설은 다분히 독일적 시각에 기초한 것인데, 독일과 달리 포괄적 불법행위법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계약체결상 과실책임의 범위를 이처럼 무리하여 확장할 필요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종래 대법원은 후자의 입장에 따라 계약의 무효, 계약교섭의 부당 파기, 착오로 인한 계약 취소의 경우에 민법 제535조를 적용하거나 유추 적용하지 않았다.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이 의사 불합치로 성립되지 않은 경우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있어도 민법 제535조를 유추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지금까지의 판례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판결이다.

    3.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 해지 요건(대법원 2017. 6. 12. 선고 2016다249557 판결)

    (1) 사안
    원고들은 휘트니스 클럽 운영자인 피고가 클럽 운영을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써 입게 된 손해배상을 구하였다. 피고는 여러 항변을 하였는데 그 중에는 휘트니스 클럽 운영 과정에서 경영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하였다는 등의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 항변도 포함되어 있었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피고의 사정변경 항변을 배척한 원심판결의 결론을 지지하면서, “계약 성립에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3) 분석
    대상판결은 얼핏 보면 사정변경 원칙과 관련하여 그 동안 선고되었던 일련의 판결들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 이유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이론적으로 주목할 만한 차이점도 있다. 그 동안 사정변경 원칙으로 인한 계약해제 요건으로 제시된 것은 ① 현저한 사정변경, ② 예견 불가능성, ③ 해제 주장 당사자의 귀책사유 부존재, ④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③ 요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③ 요건은 ①과 ②의 요건에 사실상 흡수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는 타당하다. 또한 ④ 요건에서는 신의칙을 언급하지 않은 채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라는 두 가지 구체적 유형을 제시하였다. 신의칙의 분칙인 사정변경의 세부 요건으로서 다시 추상적인 신의칙을 제시하기보다는 사정변경 원칙의 적용 유형을 예시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러한 판시 내용은 사정변경에 관한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의 민법 개정시안 제538조의2와 거의 동일한 것이다.

    4. 임대인 소유 건물 중 임차 부분 화재로 나머지 건물 부분이 불에 탄 경우의 법률관계 (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다86895, 86901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안
    원고(임대인)는 피고 1(임차인)에게 원고 소유 2층 건물 중 1층 일부인 150평 부분을 임대하였다. 피고 1은 피고 2(보험회사)와 화재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임대차 기간 중 임차 건물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임차 건물 부분 외의 부분에도 불이 옮겨 붙어 임차 건물 전체가 소훼되었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종래 임차 건물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임차 외 건물 부분까지 불에 탄 경우 두 부분이 구조상 불가분 일체를 이루는 경우에 한하여 임차 외 건물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한 86다카1066 판결 등을 폐기하면서, 임차 외 건물 부분에 대해서도 민법 제390조, 제393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정하면 충분하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임차 외 건물 부분에 관하여는 임차인의 계약상 의무 위반, 그 의무 위반과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민법 제393조에 따른 손해 범위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판시하였다. 두 번째 판시 사항에 관하여는 두 개의 별개의견과 하나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3) 분석
    대상판결이 이른바 구조상 불가분 일체론을 폐기한 것은 타당하다. 구조상 불가분 일체론은 화재의 특수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지나친 확대를 막기 위한 이론이지만 법적으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에서 가장 문제가 된 쟁점은 번지는 화재의 특수성 앞에서 위험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임차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다수의견은 임차인의 계약상 의무 위반과 관련된 증명책임을 임차 건물 부분(임차인)과 임차 외 건물 부분(임대인)으로 나눔으로써 손해배상책임의 합리적 제한을 꾀하였다. 별개의견 1은 불법행위법의 적용을 통하여, 별개의견 2는 신의칙에 의한 책임제한에 의하여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반대의견은 명시적으로 이러한 고려를 하지 않았으나, 통상손해에 의한 합리적 손해배상범위의 설정을 통하여 충분히 합리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다고 본 듯하다.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다. 다수의견은 임차 건물 부분에 관해서는 결과채무인 임차목적물 반환의무 이행불능이, 임차 외 건물 부분에 관해서는 행위채무인 임차목적물에 대한 선관 주의의무 위반이 각각 문제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두 의무는 목적-수단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임차목적물을 잘 보존하여 반환할 의무'라는 하나의 큰 의무 아래 상호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태에 대해 손해 발생 부분에 따라 두 의무를 분리하여 증명책임을 달리하는 것은 인위적이다. 임차 건물 화재에 관한 위험배분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임대인은 임차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화재 발생 지점 자체가 분명하지 않으면 화재로 인한 위험은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한편 임차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더라도 그 화재 원인이 임대인의 지배 영역 내에 속한 것이라면 여전히 그 화재로 인한 위험은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반면 화재 원인이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 화재로 인한 위험은 임차 건물을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요컨대 화재 발생 지점의 불명확성에 대한 위험은 임대인이, 화재 발생 원인의 불명확성에 대한 위험은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이다. 다만 화재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신의칙 또는 실화책임법의 유추 적용에 따라 임차인의 책임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5. 임대인 지위 승계 전 발생한 연체차임이 새로운 임대인이 반환할 임대차보증금에서 당연 공제되는지 여부(대법원 2017. 3. 22. 선고 2016다218874 판결)

    (1) 사안
    임차인인 피고는 임대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였으나 차임을 연체하였다. 한편 임대인으로부터 임대차목적물의 소유권을 취득함으로써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원고는 피고의 차임 연체를 이유로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고하였다. 이때 원고가 반환할 임대차보증금에서 원고의 임대인 지위 승계 전 연체 차임을 공제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임차건물의 양수인이 건물 소유권을 취득한 후 임대차관계가 종료되어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경우에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기 전까지 발생한 연체차임이나 관리비 등이 있으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차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된다”라고 판시하면서, 그 이유를 “일반적으로 임차건물의 양도 시에 연체차임이나 관리비 등이 남아있더라도 나중에 임대차관계가 종료되는 경우 임대차보증금에서 이를 공제하겠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의사나 거래관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3) 분석
    대상판결에서는 신 임대인이 반환할 임대차보증금에서 구 임대인에 대한 연체차임이 당연 공제된다고 보았다. 신 임대인이 타인의 연체차임채권에 기해 당연 공제로 인한 혜택을 누리는 법적 현상이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당연 공제가 인정되는 근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임대차보증금계약의 당사자인 임대인과 임차인은 “임차인의 채무 담보를 위해 임대인이 일단 임대차보증금을 받아놓되 임대차기간 중에는 임대인의 의사에 따라 임대차보증금에서 임차인의 채무를 공제할 수 있고, 임대차 종료로 목적물을 반환받는 때에는 임차인의 채무를 당연히 공제하고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준다”는 합치된 의사를 가진다. 이러한 사전 합의(공제예약)에 따라 임대차 종료 후 임대차보증금 반환 시 당연 공제(공제의 결과)가 실행된다. 우선 임차인은 임대차 종료로 임대차목적물을 반환할 때 누가 임대인이건 간에 임대차보증금에서 자신의 채무가 공제되는 것에 반대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그것이 훨씬 간편하고 수월한 결제 방법이기도 하다. 요컨대 연체차임 등을 임대차보증금에서 당연 공제하는 것은 임차인의 일반적인 의사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연체차임 결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한편 신 임대인은 계약상 지위를 인수하면서 임대차보증금계약에 내재한 당연 공제의 가능성도 함께 인수한다. 이는 신 임대인의 이익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임대차에 관련된 일체의 지위를 인수하고자 하였던 그의 일반적인 의사에도 부합한다. 구 임대인은 이러한 당연 공제 가능성의 이전으로 인해 연체차임 채권이 무담보 상태로 전락하는 불이익을 입게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신 임대인에게 자신의 계약상 지위를 이전함으로써 임대차보증금의 당연 공제 가능성이 함께 이전된다는 점을 스스로 감수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차임을 연체한 임차인보다는 건물 소유자인 신 임대인으로부터 연체차임 상당액을 회수하는 쪽이 채권을 만족 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요컨대 구 임대인에 대해서도 대상판결과 같은 결론이 부당하게 불리하지만은 않다. 대상판결의 태도는 이처럼 당사자들의 일반적인 의사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법률관계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담보한다.

    6. 농지임대차계약과 불법원인급여(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3다79887,79894 판결)

    (1) 사안
    원고는 피고에게 농지를 임대하였다. 피고는 임대차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원고에게 임대료 전액을 선불로 지급하였다. 임대차 종료 후 피고는 원고에게 농지를 반환하지 않았다. 그러자 원고는 피고에게 농지 인도 및 인도 시까지의 차임 상당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그러자 피고는 위 농지임대차계약은 농지임대차를 금지한 농지법 제23조에 위반하여 무효이므로 원고가 피고에게 임대료 전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소를 제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농지임대차계약이 무효인지, 또한 원고가 피고에게 차임 상당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이 불법원인급여 법리상 금지되는지가 문제되었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농지법 제23조가 강행규정이므로 농지임대차계약이 무효라고 보면서, 불법원인급여가 되기 위해서는 “급부의 원인이 된 행위가 그 내용이나 성격 또는 목적이나 연유 등으로 볼 때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될 뿐 아니라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하거나, 급부가 강행법규를 위반하여 이루어졌지만 이를 반환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규범 목적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경우 등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전제한 뒤, “오늘날의 통상적인 농지임대차는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 등을 위하여 특별한 규제의 대상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 내용이나 성격 자체로 반윤리성·반도덕성·반사회성이 현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 불법원인급여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3) 분석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한 농지법 제23조를 강행규정으로 보아 농지임대차를 무효로 보는 대상판결의 태도는 타당하다. 다만 농지 임대차는 본질적으로 ‘좀 더 강한 규제를 받는 부동산 임대차’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농지 임대차는 매우 흔하게 이루어진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임차농가의 비율은 57.6%, 임차농지비율은 50%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무효인 농지 임대차에 기한 급부를 불법원인급여로 보아 이에 대한 반환청구 또는 그에 준하는 손해배상청구를 금지해야 할 정도로 농지임대차가 반사회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대상판결은 '임대 목적이 농지로 보전되기 어려운 용도에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서 농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경우' 또는 '임대인이 자경할 의사가 전혀 없이 오로지 투기의 대상으로 취득한 농지를 투하자본 회수의 일환으로 임대하는 경우' 등 농지법의 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되어 반사회성이 현저하다면 불법원인급여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불법원인 여부가 사안의 속성과 맥락에 좌우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처럼 농지 임대차와 불법원인급여에 관하여 닫힌 법리가 아니라 열린 법리를 제시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대상판결의 결론에 대해서는 농지 임대차가 무효라고 하면서도 농지 임대인이 차임에 상당하는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을 받도록 허용하는 것은 농지 임대차를 유효하게 취급하는 것과 결과적으로 같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는 부당이득반환의 원칙을 포기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농지임대차에 관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규제를 마련하거나, 이미 마련된 형사처벌 규정의 적절한 활용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7. 사고로 인한 자동차 가격 하락 손해가 통상손해인지 여부(대법원 2017. 5. 17. 선고 2016다248806 판결)

    (1) 사안
    원고는 운송회사로서 A차량의 소유자이다. 피고는 B차량의 운전자이고, 피고회사는 B차량에 관한 보험자이다. 피고는 B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의 A차량과 충돌하였고, 원고는 피고회사 및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였다. 이 사안에서는 수리 완료 후에도 존재하는 자동차 가격 하락 손해(격락손해)가 통상손해로서 배상될 수 있는지가 다투어졌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자동차의 주요 골격 부위가 파손되는 등의 사유로 중대한 손상이 있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리를 마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상회복이 안 되는 수리 불가능한 부분이 남는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하고, 그로 인한 자동차 가격 하락의 손해는 통상의 손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뒤, “이 경우 그처럼 잠재적 장애가 남는 정도의 중대한 손상이 있는 사고에 해당하는지는 사고의 경위 및 정도, 파손 부위 및 경중, 수리방법, 자동차의 연식 및 주행거리, 사고 당시 자동차 가액에서 수리비가 차지하는 비율, 중고자동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 사고 이력으로 기재할 대상이 되는 정도의 수리가 있었는지 여부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일반의 거래관념과 경험칙에 따라 객관적·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이는 중대한 손상이라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였다.

    (3) 분석
    판례는 물건이 훼손된 경우 수리가 가능하면 수리비 상당액, 수리가 불가능하면 교환가치 감소분이 통상손해라고 판시하여 왔다. 손해배상법의 목표는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손해가 발생하기 이전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물건이 훼손된 경우에는 이로 인해 침해된 가치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 종국적으로 중요한 것은 수리 가능 여부가 아니라 물건의 가치 감소 회복 여부이다. 수리 가능 여부는 이러한 가치 감소분의 회복 가능성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적 개념일 뿐이다. 그러므로 일단 물리적·기술적으로 수리가 완성되어 물건이 정상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사용가치 감소는 없더라도 물건의 교환가치 감소분이 여전히 존재하면 그 부분은 규범적으로 수리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해야 한다. 즉 그 교환가치 감소분이 통상손해로 배상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자동차 가격 하락이 자동차의 객관적 가치 감소 때문이라기보다는 사고 차량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일반인들의 불안함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중고차 시장에서의 가격 하락이 곧 자동차의 객관적 가치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의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고차 거래량이나 거래 시스템을 보면,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은 자동차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반영할 정도로 공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한 시장가격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교환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하고 완벽한 기준은 아닐지 몰라도 손해가 발생하였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또한 자동차관리법령에 따르면 자동차매매업자가 매수인에게 발급하는 중고자동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는 사고 유무를 표시하고 중대 사고의 경우에는 그 수리 부위 등도 반드시 표시하여야 한다. 실제로도 사고 차량은 중고차 시장에서 통상 더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이러한 법령과 거래 현실을 고려하여 보험약관에도 자동차 시세 하락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거래 현실을 반영하여 온당한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가격 하락 손해가 과연 통상손해인가에 대한 의심의 시선에 대응하여 법리의 적용 범위를 적절하게 제한하였다.

     


    권영준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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