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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계 명사 대담] 권오곤 ICC 당사국총회 의장 “재판기록은…”

    재판기록은 역사가 우리를 판단하는 기록
    재판 공개가 현실화 되어야 더불어 사법도 발전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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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윤 편집국장) 올해로 국제형사재판소(ICC) 탄생 근거가 된 '로마규정'이 지난 7월 17일 체결 20주년을 맞았습니다. ICC 당사국총회 의장으로서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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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곤 ICC 당사국총회 의장) 먼저 한 나라가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가입한다는 것이 그 나라와 국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모든 주권국가는 자국민의 인권과 법익보호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국가는 없지요. 심지어 테러와 전쟁 등 불가항력적인 상황 때문에 정상적인 국가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을 때에도 국가는 최선을 다해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력으로 불가능하다면, 국제사회·국제법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말이죠. 로마규정 가입은 이러한 '자국민 보호의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아울러 로마규정은 잔혹한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집단학살 등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사실상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면제권(impunity)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123개국이 로마규정에 가입했는데, 이는 정의 없이는 지속가능한 평화(sustainable peace)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폭넓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 형사절차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측면도 주목할 만합니다. 로마규약은 단순히 ICC라는 기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재판절차 참여 및 피해자에 대한 구제 내지 보상을 통한 회복적·보상적 정의(restorative and reparative justice)의 모델을 만들고, 보충성(complementarity)의 원칙에 따라 개별 주권국가의 국내 형사절차에 우선권을 주면서 국제적으로 불처벌 종식(fight against impunity)을 도모하는 새로운 형사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실효성도 큽니다. 올해 7월 17일부터는 침략전쟁(Crime of aggression)을 처벌하는 법이 발효됐는데 만일 이를 인근국가가 모두 비준하게 되면 그들 사이에 매우 강력한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아쉬운 점은 먼저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세 나라, 미국·러시아·중국이 가입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강대국들은 해외 파병중인 자국 군대가 전쟁범죄 혐의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입을 주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평화유지활동(peace keeping operation)이나 국제평화를 위한 인도적 개입을 자주 하는 편인데 ICC 가입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는 있겠지요. 또 유엔 회원국의 3분의 1 정도가 ICC에 가입하지 않은 점 역시 한계로 지적됩니다. 비(非) 가입국의 경우, 예를 들면 시리아나 예멘 같은 국가의 경우, 심각한 내전상황에서 잔혹한 범죄가 지속돼도 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ICC가 개입하기 힘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ICC는 지난 20년간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왔고, 앞으로도 발전의 가능성이 크다고 믿습니다. 이제 2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ICC당사국 총회'는 ICC 운영을 감독하는 기구

    국제재판관 되려면 그 나라 國格도 큰 영향력


    정) 올해 7월 발효된 침략전쟁의 항구적 처벌 규약을 우리나라도 비준을 따로 해야 하는지요.

    권) 그렇습니다. 개정된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 조항을 국회가 새롭게 비준을 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35개국이 비준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비준에 소극적입니다. 아직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분단국으로서 앞장서서 비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주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 제5조 1항이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천명하고 있는 이상, 장기적으로는 침략범죄 조항의 비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 ICC 당사국총회 의장의 업무와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권) 국제형사재판소 자체는 재판부, 소추부,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당사국총회(Assembly of States Parties)는 이러한 재판소의 운영을 감독하는 정치적 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재판관, 소추관 등을 선출하고, 로마규정 뿐만 아니라 소송규칙 등 각종 규칙을 제정, 개정하며, 예산을 승인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지요. 

     

    당사국총회는 매년 연말에 1회 열리지만, 21개국으로 구성된 이사회(Bureau)는 수시로 열리는데, 당사국총회 의장은 이사회 의장도 겸임하기 때문에 출장이 잦습니다. 회의는 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와 당사국 공관이 많이 나와 있는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번갈아가며 열립니다.

     

    ICC 당사국은 123개국이어서 유엔 회원국의 3분의 2 정도가 가입하고 있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53개국 중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 19개국만 가입하고 있어서, 제 임기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도서국가들의 가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아시아 지역이 인구도 가장 많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활발한데도 불구하고, EU나 아프리카 연합(AU) 등과 같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정치적 지역기구나 공통된 인권재판소도 없기 때문에, ICC 당사국을 늘리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우리나라가 배출한 국제재판관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처음으로 UN총회에서 선거를 통해 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관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의장님 개인 역량도 있겠지만 국가의 역량도 보탬이 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평가하는 우리나라 법조계의 수준은 어떤지요.

    권) 재판관 선출은 개인적 역량뿐 아니라 그 나라의 국격(國格)이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제가 2001년 3월 ICTY 재판관 선거에 나가 당선될 무렵, 많은 국가들이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몇 안 되는 나라라는 점을 인식하고 후한 점수를 줬던 것 같습니다(웃음). 

     

    해외에서 겪은 우리나라 법조의 장점은 일단 국내 법조인들이 법률가로서 훈련이 잘 돼있다는 점입니다. 사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쟁점을 정리하는 법률가로서의 자질이 매우 뛰어납니다. 이러한 능력은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근면성을 들 수 있습니다. 국제기구에서도 한국 법조인들은 높은 노동강도를 소화하는 부지런한 일꾼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륙법과 영미법의 절충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국내법체계가 국제재판소에서의 적응을 돕는 측면이 있습니다. 국제재판소는 보통 영미법과 대륙법을 조화한 절충적 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 순수한 영미법계 법조인과 대륙법계 법조인들은 서로의 법체계를 이해하지 못해 추론과정에서 혼선을 빚기도 하는데, 절충적 형태에 능한 한국의 법조인들이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 인정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법조인들이 자신감을 갖고 국제기구에 도전해서 한국 법조의 장점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들이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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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형사법제를 포함해 대부분의 법제도를 유럽 대륙에서 들여오고 이후 영미법계 제도를 가미하면서 수정·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지만 국제재판소의 형사재판 절차와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우리 제도 가운데 미흡하거나 개선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권) 국내 법원에서 이뤄지는 사법(司法)절차와 국제재판소의 절차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제재판소는 소수의 '중대한 범죄'를 몇 해에 걸쳐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규명합니다. 이는 사건 규모가 크고 이질적인 문화의 당사자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국제재판의 필연적 속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소송을 기한 내에 처리해야 하는 국내 법원에서 이러한 절차를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원칙론적 입장에서 부족한 측면이 보입니다. 먼저 재판과정의 투명성이 아직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국제 재판의 경우 기록 관리도 매우 합리적·과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문서의 종류에 따라 '공개(public)'와 '비밀(confidential)' 서류로 나누고, 비밀서류는 당사자 쌍방에 공개되는 문서(inter partes)와 서류를 제출한 당사자 일방에게만 공개되는 문서(ex parte)로 구분하는데, 사무국(Registry)에서 기록을 분류하고 관리하는 역할도 대부분 전문지식을 갖춘 변호사들이 담당합니다. 비밀문서의 경우에도 필요한 경우 비밀사항을 삭제한 후 공개 버전을 만들기도 하고, 나중에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면 재판부 결정으로 문서 전체를 공개하기도 합니다. 공개 버전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지요. 판결문 뿐 아니라 소송기록까지 누구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투명성이 보장됩니다. 

     

    전범재판의 효시가 된 뉘른베르크 재판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전범재판소를 만들려고 했을 때 처칠은 반대 했습니다. 그는 "왜 극악한 범죄자들에게 변명의 기회를 마련해 주느냐"고 물었지요. 하지만 루즈벨트는 "우리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남겨 이를 후세에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반박하면서 법정이 세워졌습니다. 그때 수석검사를 맡았던 미국의 로버트 잭슨(Robert. H. Jackson, 1892~1954) 연방대법원 판사는 "우리가 피고인들을 재판하는 기록이, 나중에는 역사가 우리를 판단하는 기록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We must never forget that the records on which we judge these defendants is the record on which history will judge us tomorrow)"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재판기록 공개의 중요성과 관련해서도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재판 공개의 원칙을 천명해놓고 있지만, 실제 재판에 있어서 재판공개의 원칙은 형해화된 상태입니다. 재판 공개가 현실화되어야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더불어 사법도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 형사재판의 경우 구속된 피의자의 방어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일단 한국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추정의 원칙'이 기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보호가 미흡하지요. 또한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재판을 위해서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툴 수 있는 시간을 당사자에게 충분히 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속기간 6개월은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제 재판처럼 5~6년씩 진행되는 것은 과하더라도 6개월은 지나치게 짧으므로 현실적으로 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 최근 판사의 국제기구 파견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입니다. 일부에서는 유엔대표부 파견이 '일제 강제징용 판결'의 대가로 얻어낸 것이라는 맹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하고, 또 일부에서는 국내법적 틀에서 벗어나 국제적 감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법관의 해외 파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권) 저는 법관이 '판사의 신분'을 가지고 타 기관에 파견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법원에 근무할 때 3년간 청와대에 파견을 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심각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판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행정부 공무원 같은 위계질서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제 자신이 그러한 딜레마를 겪고 나니, 외부기관은 물론이거니와 법원행정처도 판사가 그 직(職)을 가지고 가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판사의 신분을 유지한 채 상하관계가 뚜렷한 계선조직에 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독립적인 판사의 역할을 어떻게 잘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개방직으로 돌려서 외부 인력을 수혈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판사가 사직을 했다가, 필요한 경우 다시 임용을 받는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국외에도 법무협력관이나 사법협력관이 많이 나가있는데, 어느 나라도 한 나라의 검사, 판사가 자신의 신분을 유지한 채 외교부 일을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본처럼 출향(出鄕)을 해서 외교관 발령을 새롭게 내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만일 판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행정·외교 업무에 몰입했다면 복직 시키지 않으면 되겠지요.


    한국 재판과정 투명성 아직 국제기준에 못 미쳐

    '판사 신분'을 타 기관에 파견은 바람직 않아


    정) 요즘 검찰 수사가 한창인 '재판거래' 의혹 사건으로 인해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법관으로 22년가량 근무하셨는데,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고 또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권) 1979년부터 2001년까지 판사로 봉직했습니다. 저 역시 이번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선 '재판거래'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는 팩트와 무관한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이 지나치게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재판거래가 없었다 할지라도 '재판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외관'을 사법부가 스스로 작출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성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재판의 염결성(廉潔性)은 재판 자체의 공정성 뿐 아니라 '공정해 보이는 외관'을 통해서도 형성됩니다. 현대의 사법이 절차적 정당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그런데 검찰에 압수된 행정처의 문건을 보면 판사로서 했다고 보기 어려운 지나친 워딩들이 포착됩니다. 법원이 사법정책과 행정기능을 수행하다 보니까, 행정처가 과도하게 관료화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네덜란드 같은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의 법원행정처 같은 기구가 독립된 위원회로 존재합니다. 물론 위원장은 전직 고위법관이 임명되지요. 이 '사법행정위원회'는 대법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활동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법관이 주축이 된 행정처가 국회나 기획재정부를 상대하는 대관업무를 맡다보니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대법원으로부터 독립된 기구가 사법부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판사 시절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연구부장으로도 근무했기 때문에 법원과 헌재 양 기관 모두에 해박하고 애정도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헌을 앞두고 미국처럼 헌법재판 기능을 대법원에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독일처럼 헌법재판소가 명실상부한 최고의 재판기관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 이 문제는 어떤 제도를 택하는 것이 국민에게 더 이로운지 하는 차원에서 꼼꼼하게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대법원안과 헌법재판소안을 비교해 볼 때 어느 쪽 제안이 더 탁월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이죠. 만약 우리가 최초로 사법제도를 설계하는 단계에 있다면, 개인적인 견해로는, 대법원에 사법심사권을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30년간 엄청난 업적을 쌓아온 헌재의 헌법심사기능을 폐지하는 것은 도입 가능한 방안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입법부에서 더 고민할 사항이지요. 이러한 논의가 양 기관 사이의 해묵은 갈등, 즉 누가 '최고법원'인지 따지는 위상 경쟁으로 비화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실익이 없고 불필요한 논쟁입니다.

     

    '법원 행정처'는 대법원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로

    대통령 임기 중 대법관 등 2/3이상 교체는 잘못


    정) 문재인정부에서 대법관은 14명중 13명이, 헌법재판관은 9명 중 8명이 교체됩니다. 큰 폭의 인선이 한 정권에서 이뤄지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권) 어느 대통령의 임기 중에 사법부 수뇌부의 구성이 3분의 2 이상 송두리째 바뀌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도중 탄핵을 당하는 바람에 공교롭게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지요. 대부분의 국제재판소 재판관 임기는 9년인데, 3년마다 3분의 1씩 재판관 교체가 이뤄집니다. 우리도 이러한 제도를 채택해 한 대통령의 임기 중 거의 전원이 교체됨으로써 행정부와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약화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 국내에서는 한국법학원 원장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한국법학원은 그동안 법조계와 법학계의 교류의 장으로서 법학의 실무와 이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법학원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지요?

    권) 한국법학원은 우리나라가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956년 국내 최초의 법률가단체로 출범했습니다. 초기에는 미국 댈러스의 남감리회대학(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의 지원을 받아 책자와 도서관을 마련했을 정도로 열악했지만 지난 60년간 공법학회, 민사법학회 등 주요 학술단체의 산파역할을 했고 수많은 법조인과 법학자들의 교육을 후원해왔습니다. 수준 높은 학술지인 '저스티스'를 꾸준하게 발간하고 있고, 매년 권위 있는 법률논문상도 시상하고 있습니다. 법학원은 판·검사와 변호사, 대학교수까지 법조계와 학계를 모두 포괄하는 유일무이한 법률가 단체이지만 최근에는 위상이 다소 약화됐습니다. 재정형편도 그리 좋지 못하구요. 하지만 법학원이 과거보다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여야 하는 시대적 요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법학원에서 진행하는 한국법률가대회를 대한변협의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 대회'와 통합해 최대 규모의 법조행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국내 모든 법조인들과 법학자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고 사법 발전의 매개 역할을 법학원이 수행하는 게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학 논문의 인용법을 통일시키는 방안도 구상중입니다. 지금은 학회마다 논문 주석을 다는 방법이 다 달라서 법률가들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법학논문의 인용방법이 통일된다면, 같은 논문을 여러 곳에 투고할 경우 주석을 다시 달아야 하는 수고로움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은 법학원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법원·헌재, 위상경쟁으로 비화되는 일 없어야

    돈을 벌기위해 법조인의 길을 선택해서는 안돼


    정) 후배 법조인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권) 국내 법조계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제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목적으로 법조인의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학에 대한 열의와 소명의식 없이는 법조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렵습니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무궁무진한 법조인의 길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은 우리 법조인들도 경청할 만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기관에서 여러 가지 법무업무를 수행하다 귀국하더라도 마땅한 수요가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귀국을 전제로 한다면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한계가 있긴 하지요. 하여간 한 마디로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의에 대한 열망과 용기를 늘 잃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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