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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68주년 특집] “정말로 필요한 곳에서 ‘변호사의 직’ 수행 보람”

    울릉도 유일의 변호사 백승빈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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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 공급이 꾸준히 늘면서 국내 누적 법조인 수가 3만명을 훌쩍 넘어선 지 오래지만, 여전히 변호사가 1명도 없는 '무변촌'이 상당수다. 사람들은 무변촌으로 오지 않는 변호사들을 탓하지만, 외지 출신 법조인이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지역 사회 구조도 변호사들의 지방행을 막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단순한 '직(職)'이 아니라 법률가로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공익적인 '업(業)'으로서의 변호사의 가치를 살리려, 사명감을 갖고 지방행을 선택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있지만 현지에 적응해 뿌리내리기가 녹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동해의 외딴 무변촌 섬에 들어가 3년 가까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변호사가 있다. 울릉도의 백승빈(35·사법연수원 45기)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본보는 창간 68주년을 맞아 국토 동단 끝 자락에서 주민들에게 한줄기 등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백 변호사를 울릉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람이 살고 있는 국토의 최동단(最東端), 울릉도 내 유일한 변호사. 서울에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지난달 29일 이른 아침 서울에서 KTX 열차를 타고 내려가 그날 오전 10시 50분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백 변호사를 만나 울릉도행 배편에 올랐다. 대구고법에서 열린 건물명도소송 재판에 참여하느라 그에게도 5일 만의 울릉도 귀환길이었다. 백 변호사는 두툼한 서류뭉치가 담긴 가방을 손에 쥔 채 배에 올라 익숙한 일인 듯 휴대폰으로 메신저를 통해 의뢰인과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포항에서 217㎞ 떨어진 울릉도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울릉도 주변 해역은 파도가 거칠고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도 배가 좌우로 크게 요동치는 바람에 섬을 처음 찾은 관광객들은 심한 멀미로 고생을 했다. 기자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백 변호사는 그런 기자를 보고 말했다. "울릉도 바다를 얕보면 안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뭍에 오가면서 멀미로 고생깨나 했지요. 지금은 적응이 돼서 상관없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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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에는 법원이 없기 때문에 백 변호사는 배편을 이용해 포항지원까지 나와 업무를 보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날씨 사정 등으로 뱃길이 자주 막히는 바람에 1주일 넘게 돌아가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겨울철에는 한 달에 10번 남짓만 배가 뜰 때도 많다고 했다. 이때문에 그는 '울릉 알리미'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수시로 배편과 날씨를 확인한다. 

     

    4곳서 자문위원으로 위촉

     

    배는 항해 예정시간인 3시간 10분을 훌쩍 넘긴 오후 2시 30분께에야 울릉도 남쪽에 있는 도동항(港)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백 변호사는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그의 사무실은 도동항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자리를 오래 비운 탓인지, 그의 책상에는 각종 서류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 중에는 '울릉군여객선지원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는 통지서와 위촉장도 있었다.

     

    "지역 내 유일한 변호사라, 군청을 비롯한 공무소에서 수시로 찾아와 법률자문을 구합니다. 조례 해석에서부터 행정처분의 적법성 여부까지 세세하게 물어보십니다. 그러다보니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곳만 벌써 4군데가 넘네요."

     

    포항지원까지 나와 송무 처리…

    뱃길로 3시간 걸려


    때마침 군청 공무원이 조례의 부칙 적용에 관해 자문을 듣고 싶다며 방문해도 되는지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백 변호사는 흔쾌히 승락했다. 군청에서 한 달에 25만원 남짓한 자문료를 받고 있단다. '그 정도 자문료에 수시로 상담을 해주면 손해가 아니냐'는 질문에 백 변호사는 "법률가가 정말 필요한 곳에서, 법률가로서의 일을 수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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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도동항의 전경

     

     "무변촌 주민들은 변호사가 꼭 필요한 사건에서도, 변호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해 변호사를 찾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그동안 변호사 문턱이 많이 높았구나'라는 점을 실감합니다." 

     

    한 달 자문료 25만원…

    군청 직원들 수시로 찾아와

     

    법조인은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를 확산시키는 첨병이다. 그는 폐쇄적인 작은 지역 사회나 공동체일수록 법조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어온 인습과 불합리한 문화를 걷어내고 합리적인 갈등 해결 방식 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지인으로서 무변촌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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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는 공간이 부족해 한 건물에 다양한 영업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백 변호사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도 같은 층에 분식점과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함께 입주해 있다.

     

     "무변촌 주민들이라고 해서 변호사가 왔다고 처음부터 반기는 건 아닙니다. 외지인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의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분들에게 변호사의 필요성을 먼저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보도 온전히 제몫이죠. 저는 혈혈단신으로 무변촌에 뛰어드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조력자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토박이 사무장에 늘 감사

     

    백 변호사가 말하는 조력자, 귀인(貴人)은 울릉도 토박이인 공해동(55) 사무장이다. 공 사무장은 2016년 5월 백 변호사가 처음 울릉도에서 개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백 변호사의 곁을 지켰다. 고군분투하는 백 변호사를 위해 그의 생활과 사무실 대소사를 알아서 조용히 성실하게 챙긴다. 이때문인지 주변에서 '사무장 변호사 사무실'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백 변호사는 모든 상담과 서면작성, 송무를 직접 챙기면서 이런 의혹을 불식시켰다.

     

    해가 기울자 백 변호사는 의료소송 관련 책을 꺼내들었다. 최근 맡은 의료기기 관련 분쟁 때문이다. 그는 무변촌 특히 섬 등 격오지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이 겪는 최대 애로사항으로 다양한 소송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점과 선배 법조인으로부터 도제식으로 꼼꼼하게 배울 기회가 적다는 점을 꼽았다.

     

    3년째 고군분투…

    지역주민의 마음 얻기 쉽지 않아


    "사법연수원 수료 후 바로 이곳으로 오다보니, 폭넓은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또 홀로 일하다보니 선배나 상사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지도 못하구요. 스스로 책을 보면서 열심히 연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무변촌 개업을 생각하는 동료나 후배들이 있다면, 적어도 (대도시 등에서) 3~4년 정도는 변호사 경험을 쌓고 도전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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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동항에서 내려 바라본 울릉도 거리의 모습

     

    무변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무실 유지를 위해 수입원을 확보해야 하지만, 안정적인 수익 창출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백 변호사가 주로 하는 일은 지역 특성상 등기나 지급명령 신청 등 생활법률과 밀접한 사건이 대다수다.

     

    선배로부터 배울 기회 없어

    모든 문제 '독학 해결'

     

    "저는 '우리 동네에도 변호사가 있다'는 사실을 울릉도 주민 모두가 알 때까지 계속 남아있을 겁니다. 그것이 울릉도 첫 변호사로서 제 역할이기도 합니다. 만일 나간다해도 다른 변호사를 초빙하고 출도(出島)할 겁니다. 나중에는 대구나 포항의 변호사들이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면서 근무하는 구조를 만들어볼까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공 사무장을 먼저 퇴근시키고 쌀쌀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온 그는 무변촌 개업을 희망하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많은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반려자만 있었으면

     

    "무변촌에 살다보면, 정말 제가 꼭 필요한 곳에 와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법조인으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객지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지만 천혜의 자연환경과 도움 주시는 많은 분들의 격려도 저를 일으켜 세워주시구요. 이제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반려자만 있으면 부족함이 없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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