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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역사 쓰는 법학자'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3·1 운동은 민주체제 출발점이자 국민이 주인이 된 국가의 출발점”

    박미영 기자 mypark@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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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속의 법과 법률가의 의미'를 찾아나선 법학자가 있다. 한인섭(60)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다. 각종 사료를 뒤져가며 선인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끌어 온 그는 '책'을 통해 법률가들에게 역사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엄혹한 일제 식민지 시대 법정에서 항일 재판 투쟁을 이어나간 변호사들을 조명하고, 암울했던 근현대사를 비춘 인권 변호사의 표상을 보여줬다. 과거의 역사를 찾는 데만 그치지 않고 사법개혁위원회,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등에 참여해 '개혁'을 통해 현실을 시정하고, 미래의 기틀을 만드는 데에도 열심이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다. '3·1운동은 우리 민주체제의 출발점이자, 민주국가로서 국민이 주인이 된 국가 출발점'이라고 강조하며 3·1운동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한 원장을 지난달 22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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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경상남도 마산과 진주 사이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한인섭(60)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소개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던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한 원장은 11살이 되자 부산으로 갔다. 

     

    "원래 시골에 있으면, 너는 법대 가라고 합니다(웃음).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불의나 소외, 사람에 대한 하대 같은 현상들을 보면서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늘 바탕에 깔고 있었고, 주변의 기대와 압력도 있었죠."
    그에게 삶의 리더이자 멘토는 형이었다. 어린시절부터 함께 법조인을 꿈꿨던 형제는 산에 올라 헌법을 되새기기도 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형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형이 오늘이 제헌절인데, 우리는 법대에 가야 하니까 부산 금정산에 올라가서 기념을 하자고 하더군요. 산에 올라가서는 한 명은 앉고 한 명은 서서, 대한민국 헌법을 제1조에서부터 끝까지 교대로 낭독했습니다. 7월 17일이라 해는 쨍쨍한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린 학생들이 그러고 있었으니 지나가는 사람이 봤을 때 어땠을까요." 

     

    그러나 형제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한 원장은 법대로 진학했지만, 먼저 대학에 진학한 형은 정치학을 전공한 후 군사정치 교수가 됐다. 현재 국방부 교수로 재직중인 한용섭 교수가 그의 형이다. 형은 '무(武)'를, 동생은 '문(文)'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유신시대 법의 현실을 보며 ‘악법의 역사’ 연구 몰두

    깜깜한 역사 속에서도 ‘반딧불’ 같은 사람들이 보여

    5년 작업 끝 ‘식민지 법정서 독립을 변론하다’ 출간

     

    한 원장이 대학에 입학한 1977년은 엄혹한 유신시대였다. 한 원장은 군사정권시절 시위 전력 등으로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2008년이 되어서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로 27년 만에 합격증서를 받았다.

     

    "유신시대, 법대에 있는 게 창피했습니다. 법대를 정의가 아닌 밥을 추구하는 '밥대', 겁이 많은 '겁대'라고 자조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법 위에 권력이 있었고, 권력은 법을 도구로 시민을 탄압하는 그런 시대였죠. 악법역사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동안 인권을 침해하고, 나쁜 짓을 자행한 수많은 법률가들의 역사를 정면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백서가 아닌 사법 흑서를 써서 춘추필법으로 잘잘못을 정확하게 가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법조 역사 연구에 몰입하던 한 원장은 돌연 생각을 바꾸었다. "교육을 하면서 보니까 '이런 사람이 나빴다'라고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은 좋은 내용을 가르쳐야하니까요. 깜깜한 시대를 깜깜하게 만든 사람들을 살펴보다보니, 깜깜한 가운데 반딧불 같이 빛을 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깜깜한 때에는 반딧불조차 밝잖아요. 낮에도 달이 떠있는데 해가 눈부셔 볼 수가 없는 이치랄까요. 밤에는 달이 보이고, 달이 없으면 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 눈에 작은 반딧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찾은 반딧불은 한둘에 그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일생동안 내내 훌륭했다고 보지 말고 한 점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 때 그 사건에서는 정말 소신을 가지고 행동했다, 법률가였던 소신과 용기를 보고 조각조각 반딧불 찾기를 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찾다가 가만히 보니까 별자리로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은하수를 따라가보니, 원류가 일제시대 반식민지 항일 변론에서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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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탄생한 책이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호한 허헌, 김병로, 이인의 항일 재판투쟁기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이다. "다른 사람이 책 한 권 써놓았으면 그것을 읽고 말았을텐데, 본격적으로 글을 쓴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변론기록, 재판기록, 언론을 찾아 뒤지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를 해서 5년 작업 끝에 책을 썼습니다. 가능한 1차사료를 이용해 그 시대 그 현장으로 들어가 같이 느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해에는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에 대한 책을 냈다. 장장 934페이지의 대기록이다. "연구를 하다보니 대한민국의 법과 사법의 형성에 엄청나게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이 가인 선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리하는데 1~2년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업적이 많았습니다. 가인은 대한민국 법제·사법·입법·윤리의 초석을 마련한 분입니다. 이러한 점을 모두 종합적으로 정리하다보니, 10년 가까운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과거 가인 선생에 대한 다른 책들은 언론인이나 정치학자가 썼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 법전문가로서 세밀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모든 법률가들이 읽고 음미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2019년은 그 어느 해보다 특별하다. 3·1운동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한 원장은 올 초 청와대 직원들의 공부모임인 상춘포럼에 새해 첫 강연자로 초청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주제로 강연했다. 

     

    "법률가들은 역사학을 잘 다루지 않습니다. 앞서 책을 쓰며 구한말, 식민지 시대, 해방 이후 나라는 무엇이고, 법은 무엇이고, 법률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성찰했습니다. 그 결실 중에 하나가 3·1운동 대한민국의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법무·검찰개혁 참여… 脫검찰화·공수처 신설 등 제시

    오지 않을 미래 걱정하며 개혁을 좌초시키면 안 돼


    3·1운동은 대한민국 탄생의 기원이었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습니다. 4·19, 5·16은 부침이 있었지만 제헌헌법때부터 3·1운동이라는 말이 빠진 적이 없습니다. 3·1운동으로 5000년 군주정치의 낡은 껍질이 벗겨졌습니다. 군주정치의 낡은 정치를 타파하면서 껍데기를 없앤 것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점을 확고히 한 것이죠. 그래서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3·1운동의 법적 의미도 크다. "3·1운동은 대한민국 탄생에 원동력이 된 사건입니다. 나라는 헌법으로 표상하기 때문에,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된 사건을 지울 수 없습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이 계속 내려오는거죠. 3·1운동은 법적으로 볼 때 우리 민주체제의 출발이자,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주인이 된 출발점입니다. 말하자면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으로 세 개의 100주년인 셈이죠."

     

    한 원장은 곧 또다른 책을 낼 예정이다. 3·1운동을 근간으로 한 '100년의 헌법'을 다뤘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우리 헌정사에 얽힌 정치·민중사를 써나갔다. 가장 쉽게 쓰고, 가장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역사 쓰기'는 과거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 원장은 '개혁'의 역사를 쓰는 데에도 앞장서왔다. 지난해에는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법무부 탈검찰화, 공수처 설치 법안 등 검찰개혁의 선봉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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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회 활동을 시작할 때 국민의 뜻을 받들어 법과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적폐청산, 인권보장, 국민참여와 신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보통 정부 위원회라는 게 내부위원이 포함돼 해당 기관에서 정리한 A안, B안을 가져오면 위원들이 한쪽을 고르되 수정을 하는 방식인데, 우리 위원회는 외부위원들로만 구성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법률 초안도 만들었습니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내부기관의 시각이 아니라 국민의 관점에서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원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경찰권 비대화 우려에 대해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해 개혁을 좌초시키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며 "무엇이 무엇의 발목을 잡는 방식으로 구성돼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자치경찰도 시대적 과제이고 공수처도 마찬가지"라며 "온국민 열망하는 넘버원의 개혁과제들이 20년 이상 계속 주장돼 왔고 이제서야 법률을 통해서 구체화하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법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원장은 지난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법부는 인권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자그마한 권한 남용은 국민에게 아주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과거의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법부의 신뢰를 스스로 너무나 실추시켰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것은 사법부 조직 보전이 아니라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환경을 저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받고 시정돼야 할 것입니다."

     

    사법부가

    법원행정처와 대법원 중심은

    바람직 않아 

     

    최근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판결에 대한 도를 넘는 비난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결국 법원은 좋은 판결, 설득력 있는 절차를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만 법관 개인의 재판과 관계없는 사안을 끌여들여 공격하는 것은 정도에 어긋난 비열한 술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것들을 구분할 줄 아는 식견들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 원장은 우리나라 법조인 양성 체제를 개혁한 한국형 '로스쿨' 제도의 입안자이기도 하다. 올해로 시행 11년째를 맞은 로스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로스쿨 문제는 결국 다양성의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스쿨은 다양한 전공의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자율적이고, 서로 창의적인 실험들을 해나가고, 졸업한 뒤에 여러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그림이었습니다. 실제로 초기 1~3기는 다양한 분야 진출도 있고 로스쿨 입학생의 전공, 연령, 관심이 다채로운 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아지니 모두가 변호사시험에 얽매이게 되더군요. 불합격에 대한 불안감들이 결국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실험을 하는 것을 저해했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쿨이 정상화되려면 전국 25개 로스쿨이 25개의 다른 모델의 실험을 각자 해나가야 합니다. A로스쿨, B로스쿨이 비슷하기 때문에 줄세우기가 되는데, 이는 각자 다른 모델을 추구해나가면서 극복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에 가까이 가야겠지만, 현재 49%의 합격률은 정상적인 로스쿨의 자율적이고 다양한 실험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셋 중에 둘 정도는 합격하는 정도가 시험과 교육 두루 조화될 수 있는 선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모든 대학들은 합격률에만 얽매이지 말고, '우리 학교가 제시하는 인재상은 이런 것이다'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현재의 관료적 일률주의의 틀을 다양성 관점에서 해결하길 바랍니다."

     

    로스쿨은 각자 다른 모델 추구하며 문제 극복해야

    우리는 줄 세우기에 익숙… 남보다 우월성만 강조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과 다른 지점서 고민해야

     

    한 원장은 지난해 6월 제15대 형사정책연구원장에 취임했다. 특히 올해는 연구원이 설립 3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다.

     

    "연구원은 학회와 따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학회라는 '바다위에 떠있는 배'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원은 모든 학자공동체와 함께하는 연구원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원은 법학과 사회과학이 반반씩으로 융합돼 있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고, 형사정책 분야에서는 가장 큰 규모입니다. 현재까지 1200편의 연구보고서가 나왔는데, 이 보고서들이 영어로 번역돼 나왔으면 전세계를 평정했을 것입니다. 규모나 콘텐츠가 세계적인데 여기서 쌓인 성과는 구체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기관이 되기 위해 개척해야 될 영역입니다."


    한 원장은 'Think Differently'를 강조했다. "학자가 되고 나서 교과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책은 프레임이 짜져있죠. 짜여진 틀안에 들어가는 걸 싫어합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좋아합니다. '남이 읽는 책을 읽지 말고, 남이 안 읽는 책을 읽어라. 그래야 서로가 화이부동, 같지 않으면서 조화가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일렬로 줄세우기가 익숙한데, 남보다 우월하라고 말하지 않고, 남과 다르게 사고하라, 남과 다른 지점에서 고민하라고 강조합니다. 외국 여행을 갈 때도 일정이 정해진 관광을 견디지 못합니다. 지점 하나를 느슨하게 찍어놓고, '조용히 헤매면서 걷기'를 좋아합니다."

     

    한 원장은 앞으로는 융합적 개혁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까지 몇십년 동안 해왔던 작업 중에 '개혁'이 무척 많았습니다. 검찰, 사법부, 정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때도 개혁을 했는데, 과거에는 목소리를 세게 주장했습니다. 사실 저는 주장이 세서 제1기 개혁을 할 때에는 많이 부르고 제2기 때에는 잘 안 부르더군요(웃음). 지금은 나이도 좀 됐고, 여러 주장을 융합해서 실현가능한 주장들의 공통분모를 모아 현실성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개혁 정책을 공감대 속에서 추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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