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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선장 출신 ‘해상법 전문가’… 김인현 고려대 로스쿨 교수

    “해운산업 규모 비해 우리 법제 인프라 너무 낙후”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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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은 뒤에서 날아온 공과 같아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국내 최고의 해상법 전문가인 김인현(60) 고려대 로스쿨 교수의 삶이 꼭 그렇다. 경북 영덕군 축산면의 선주(船主)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세계 최고의 선사에서 최연소 선장으로 활약하던 '바다 사나이'였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으면서 '마도로스'의 꿈은 접었지만, 그는 법학에서 새로운 인생 항로를 개척하며 해상법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를 밝히는 등대가 됐다. 해상법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한때 "한국에서 해상법 실무 최고의 전문가로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팀장 변호사와 'Captain I.H. Kim(김 교수를 지칭)'"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 평생 바다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온 영원한 캡틴(Captain) 김인현 교수를 지난달 26일 고려대 해상법 센터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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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2월 14일 인광석을 가득 실은 대형상선 '산코 하베스트(Sanko Harvest)호'가 호주 남서부 앞바다에서 좌초했다. 해도(海圖)에 표시되지 않은 암초에 선박이 부딪힌 것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배는 그대로 바다에 가라앉았다. 선장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세계 최대 해운사 중 하나인 일본 산코(三光) 기센에 입사(1982년)해 최연소 선장 타이틀을 거머쥔 32세의 청년 김인현이었다.

     

    "원래 항로설정은 2등 항해사가 담당합니다. 2등 항해사가 오래된 해도를 그대로 쓰다가 새로 생긴 암초를 발견하지 못하고 항로를 설정해 사고가 났습니다. 물론 최종적인 지휘책임은 선장인 제가 져야지요. 이 사고로 평생 가슴에 품었던 바다를 떠나야 했습니다."

     

    해양대학 졸업하고 32살에 일본 해운사 선장으로

    항해 중 암초와 충돌 사고로 ‘마도로스의 꿈’ 접어

     

    화주들은 선사를 상대로 호주 시드니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사고 후 실의에 빠져 칩거하던 그는 사건 발생 경위 등을 증언하기 위해 보름간 호주 법정에 서야 했다. 화주 측 대리인은 "너무 어린 선장이 배를 몰아서 사고가 난 게 아니냐"는 식으로 공격해왔다. 법에 대해 무지했던 그는 소송기간 내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주변에 전문적인 법률 자문을 구하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해상법의 불모지였다. 이때 김 교수는 "선장인 내가 해상법 전문가가 된다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귀국 후 한동안 법학을 공부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집 근처 한남대 도서관에 가서 독학을 했습니다. 법을 어떻게 공부하는지조차 몰랐던 저는 법률용어사전을 무작정 노트에 베껴 쓰기만 했지요. 그러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고려대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당시 고려대는 영어 비중이 50% 정도로 매우 높았는데 영어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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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늦깍이로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법학 공부에 몰두했다. 큰 소송을 직접 겪으며 법률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채이식(70·사법연수원 1기) 고려대 교수의 조교를 자청해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석사를 마칠 무렵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법에 대한 무지’ 가슴에 맺혀

    뒤늦게 대학원 진학

     

    "해상팀에서 해사자문역으로 일해 달라는 제안이었어요. 주로 해상 충돌이나 오염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건 당사자 등을 인터뷰하고 보고서를 쓰는 역할이었습니다. 해양대를 나와 오랫동안 배를 탔고, 사고도 직접 경험해봤으니 수준 높은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호칭 문제로 해프닝이 좀 있었습니다. 법률사무소에서는 '실장'이라는 명칭을 제시했는데, 저는 '변호사님들도 자격증을 갖고 변호사로 불리는데, 나도 선장 자격증이 있으니 선장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금도 김앤장에 가면 저를 선장이라고 부릅니다(웃음)."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교수는 1999년 3월 목포해양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본격적인 법학자의 길을 걷는다. 교수가 된 그는 자정까지 학교에 남아 연구하고, 다시 새벽 5시에 학교에 나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2003년 안식년을 이용해 텍사스 오스틴(Texas Austin)대학에서 LL.M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후부터는 영어논문도 꾸준히 발표해 최상 등급인 SSCI 논문을 11편, 스코프스(SCOPUS) 등급 논문을 5편 썼다. 지금도 매년 7~8편의 논문을 발표하는데,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 KCI) 결과에 따르면 그의 논문은 해마다 법학연구 분야 피인용 횟수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한다. 


    해상법 사건은 특성상 소송문건 거의 영어로 작성

    처음부터 강의는 영어로… 해상법 커리큘럼도 강화

     

    "교수에게 논문쓰기는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입니다. 저는 다작(多作)을 하는 편인데, 특히 해외저널에 많이 기고하는 편입니다. 전 세계 대학순위를 평가할 때 소속 교수가 SSCI 등급이나, SCOPUS 등급 논문을 많이 제출한 경우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법학 교수들이 해외저널 투고에 소극적인데, 한국의 법제도를 국제사회에 홍보할 수 있는 통로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김 교수는 2009년 은사인 채이식 교수의 해상법 강의를 물려받으며 고려대로 적(籍)을 옮겼다. 그는 로스쿨 교육을 통해 제대로 된 해상법 전문 변호사를 배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해상법 강좌를 4개나 개설했다.


    ‘전문인증제’ 도입

    졸업 후 바로 실무투입 가능하게

     

    "해상법 사건은 특성상 의견서나 소송문건을 대부분 영어로 작성해야 합니다. 로스쿨생들이 한국어 수업만 듣고 졸업하면 현장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해상법과 운송계약법 강의를 영어로 진행했습니다. 2년 뒤에는 선박충돌법과 해상보험법 강좌를 추가로 개설하는 등 계속해서 해상법 커리큘럼을 강화했습니다. 전국 로스쿨에 개설된 해상법 강좌로는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김 교수의 노력이 처음부터 결실을 맺은 건 아니었다. 강의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로스쿨 1~3기 제자들은 해상법 전문이 아닌 그냥 평범한 변호사로 취직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로펌들은 '교육을 통한 인재 배출'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절치부심하며 제자들이 싱가폴 최대 로펌인 라자앤탄(Raja&Tann)이나 알렌그레드힐(Allen&Gredhill) 등에서 인턴십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여름 방학 동안에는 선박 승선 실습도 시키는 등 해상법 양성 코스를 더욱 정예화했다. 그 결과 고려대 로스쿨 4회 졸업생인 채정수(37·변호사시험 4회) 변호사가 김앤장 해상팀에 입사한 것을 시작으로 10여명의 제자들이 김앤장은 물론 법무법인 화우, 지평, 선율 등의 로펌에서 해상전문 변호사로 맹활약 중이다. 

     

    해사법원 설치보다

    전담재판부 내실있게 운영을

     

    "학교에서 해상법 분야 전문인증제도를 도입했는데, 전문인증을 받은 학생이 졸업 후 로펌에 갔을 때 실무에 즉시 투입 가능한 수준으로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로스쿨 제도 아래서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학생은 물론이고, 교수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궁구(窮究)해야 합니다. 고려대 로스쿨은 이러한 특성화 목표에 맞는 수업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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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지난해 7월부터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장을 맡아 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한참 이슈가 됐던 해사법원 설치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서울과 인천, 부산이 서로 해사법원을 유치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 도시들은 자신들의 지역에만 해사법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해법학회는 일종의 중도안으로서 서울과 부산 두 곳에 해사법원을 두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해사법원 설치가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국내 해사(海事)사건이 연간 500건 미만을 하회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해사법원 보다는 2016년 설치된 해사 전담재판부를 내실있게 운영함으로서 인적·물적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법원 해사규칙을 제정해 전담 판사를 확보하고 해사재판부의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말 법정도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외 선주들이 우리나라 법원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말에 법원이 쉰다는 점입니다. 싱가폴·홍콩 등은 요건만 맞다면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법원에서 선박 압류·가압류를 풀어주는데, 우리나라는 금요일에 신청을 해도 주말을 지나 월요일에나 선박 압류가 풀립니다. 대형 선박은 하루만 운용하지 않아도 영업손실이 어마어마한데 이래서는 외국법원과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한진해운’ 같은 국제분쟁 발생 땐

    해외로펌 찾아

     

    국토의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수출을 통한 '무역입국'을 기치로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전체 수출량의 99.8%가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은 세계 정상급의 선박건조 기술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산업규모에 비해 관련 법제 인프라는 뒤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해상분야 국제 경쟁력도 제자리걸음 상태다. 최근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200명이 넘는 해상법 전문가를 양성하고 계속해서 법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역사적인 차원에서 해운·해상법이 영국 중심으로 편성돼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해상분쟁이 발생한 경우, 어느 나라 법률을 기준으로 분쟁을 해결할지 판단하는 준거법(proper law) 결정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해상법과 법원은 국제적으로 홍보도 돼 있지 않을뿐더러 인프라도 낙후돼 있습니다. 그동안 '선박을 몇 척 수주했다', '해운계약을 몇 건 체결했다'는 식의 실적에 연연한 점이 한계였지요. 그러다 2016년 한진해운 사태 같은 국제분쟁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용선료 인하 협상에 기업들이 비싼 해외로펌을 고용하고, 해사관련 분쟁을 다른 나라 법정에서 판단받는 기형적인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더 많은 교수들, 법조인들이 우리나라 해상법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선박금융·도산 등 분야에도

    국제경쟁력 확보 절실

     

    김 교수는 최근 선박건조·선박금융·해사도산 등 해상법의 특수분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직접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를 설립하고, 해상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법 영역을 아우르는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해운산업을 진흥하고, 도와주는 창조적인 형태의 법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규제 때문에 특수한 설비를 배에 설치해야 한다면, 비용을 선주들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주들에게도 적당한 분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 경쟁법 체계 안에서 새로운 법리를 개발하고 입법 등을 통해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해상법의 연구범위를 넓혀 선박건조·선박금융·해사도산법 등의 분야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선박건조·해운업 분야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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