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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한국인 첫 세계변호사협회 이사’ 최정환 IBA서울총회 조직위원장

    “법률시장 포화상태… 변호사들 해외로 진출해야”

    강한 기자 strong@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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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변호사의 우수성과 법치주의가 확립된 대한민국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변호사협회(The International Bar Association·IBA) 이사를 지내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IBA 서울 총회 준비 총 책임자를 맡아 대회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최정환(58·사법연수원 18기) 조직위원장의 말이다. 엔터테인먼트 1세대 변호사이자, 법조계에서 손꼽히는 국제 마당발인 그는 수십년간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법조인들과 세계 법조인들을 잇는 허브로 활동해왔다.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초대 회장과 대한변협 국제이사를 역임해 국내법과 변호사단체 회무에도 밝다. 그는 한국 법조계에는 세계로 진출할 탄탄한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한국 문화가 한류가 됐듯, 법조계 한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법률 전문가의 활약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20여년간 국제회의를 다수 조직해온 노하우를 전부 쏟아붓겠다. 소명의식을 갖고 이번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겠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는 "인연과 타이밍을 소중하게 여길 때 뜻밖의 기회가 열린다"며 "남들의 시선과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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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영화시장 점유율이 5%를 밑돌고, 한국 영화를 외국에서 알아주지도 않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난 30년간 급격히 성장한 한국 영화는 이제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전 세계를 감탄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법조계도 글로벌 무대에서 넘버원으로 거듭날 충분한 자질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기반과 토대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로펌과 법조단체의 초점을 국내 중심에서 국제무대로 옮기고, 청년·중견 변호사를 양성·지원하는 법학교육과 법조계의 노력이 늘어야 할 시점입니다."

     

    한·미 의사 자격증 딴 부친

    강원도 산골서 병원 개업

     

    오는 22~27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세계변호사협회(IBA) 연차총회가 열린다. 최정환(58·사법연수원 18기·사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이번 총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지난해부터 대회 준비에 매진해왔다. 세계변호사협회는 회원수가 8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변호사단체로, 1년에 한 번씩 각국에서 개최되는 총회에는 전 세계에서 7000명의 변호사가 몰려 '변호사 올림픽'으로 불린다. 그는 "포화 상태를 맞이해 성장이 둔화된 법조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변호사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한국은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임에도 국내 법률 서비스의 역량과 위상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변호사 자격증 갖고 해외에 나간 변호사가 20명이 안 됩니다. 외국 자격증을 갖고 한국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는 2500명이 넘습니다. 심각한 비대칭이자 굉장한 역조를 우리는 오랜시간 방관해왔습니다. 해외 로펌에 취직하거나 외국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 변호사들이 늘어야 합니다. 청년 변호사에게 계기와 기회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일찍 돌아가신 부친 대신

    어머니가 늘 삶의 힘으로

    의사 되겠다는 내게

    “너에게 맞는 길 걸어라” 조언

     

    강원도 원주 출신인 최 변호사는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내과의사였던 아버지는 그가 13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홀로 세 남매를 길렀다. 학교에서는 반장과 1등을 도맡는 모범생이었지만, 고무신을 신고 동네친구들과 올챙이를 잡으러 다니는 개구쟁이였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무르팍이 까지기 일쑤였고, 동강에서 멱을 감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중학교 때 서울에 처음 온 그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것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서울총회 준비 중 뜻밖의 위기

     ‘개최지 변경’ 돌출

     

    "부친에게 이타심을, 모친에게 결단력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미국 의사 자격증까지 따고서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강원도 시골마을에 병원을 열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아버지의 인간적 고민과 남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삶의 전환점과 고비에서 올바른 결정을 이끌며 힘을 실어 주신 분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어 남을 돕는 삶을 살겠다던 제게 어머니는 '의사는 활동범위가 좁다. 너에게 맞는 길을 걸어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여기저기 호기심이 많았던 제가 3번째 사법시험에 떨어졌을 때,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가 절에 가서 공부하라고 제 등을 떠밀어 놀랐습니다. 속세를 떠나 아침에 숲을 산책하고 책에 파묻히면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고, 공부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외국 영화와 음반이 밀려들어오던 대중문화 개방기, 1989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 변호사는 1년차부터 관련 사건을 많이 맡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 1세대 변호사로 꼽히는 그는 "지금은 수백명의 전문가가 있는 영역이지만 당시에는 법조계에 생소한 분야여서 일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변호사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한국 영화계가 삭발·단식투쟁을 하는 등 외국 문화에 대한 반발심이 고조되던 격변기였다. 그는 드라마 대장금의 해외수출계약 등을 담당하며 초기 한류문화 확산에 기여했고, 디즈니 등 해외고객의 사건을 많이 맡아 마이클 잭슨의 저택 '네버랜드'에 두차례 초대받기도 했다. 그를 기점으로 음반·미술품·스포츠·게임·프랜차이즈 등으로도 국내 엔터법의 영역이 대폭 확대됐다. 

     

    네토 현 회장

    “북한에 맞서는 한국 지원” 연설로 설득

     

    "변호사 도움이 필요한 외국 영화사 고객이 많았지만, 당시 영어가 가능한 영화 전문 변호사가 없었습니다. 국제 금융·통상 분야는 주목 받았지만, 문화산업은 '딴따라'라며 천대받던 시기였어요. 영화 관련 일이 제게 올 때 'Yes'라고 말한 것을 지금도 다행으로 여깁니다. 해외 영화사를 대리해 불법복제 행위를 단속하는데, 상대편인 국내 영화계 사람들이 오히려 저를 반겼습니다. 법적 쟁점들에 대해 물어볼 전문가가 없어 답답해하던 차였다고 했습니다. 덕분에 강우석·강제규 등 당시 무명이던 감독·배우들과 친분을 쌓았고, 업무영역을 문화산업 전반으로 넓혔습니다. 영화감독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고 '저는 1년차라 12시까지는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난색을 표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우리는 보통 새벽 5시까지는 (술을) 먹습니다'."


    청년변호사들 IBA총회 계기

    국제인재로 도약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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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주먹구구식 운영이 일반적이던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처음으로 정식 전속계약서 형식을 도입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짠 계약서 포맷과 문구는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표준 전속계약서의 모태가 됐다. 

     

    "초창기 제대로 된 계약서가 없다는 점이 충격이었고 바닥에서부터 시스템을 쌓아올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계약은 '비디오 배급을 허락함'이라는 문구 아래에 서로 도장 찍는 방식이었습니다. 법에 기반한 권리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나 가수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나 초상권 침해에 대한 대처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사용되는 계약서들을 모아 한국의 실정에 맞는 형식과 문구로 바꿨어요. 오늘날 한류가 시장에서 주류 문화로 자리잡는 것을 보며 나름의 기여를 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최 변호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연과 타이밍"이라며 "매번 찾아오는 두갈래 선택의 길에서 주저하는 것보다는 하기로 '선택'할 때 항상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미국·일본·네덜란드·벨기에 등 4개국 유명 로펌에서 파견근무(Visiting Lawyer)를 했는데, 이때 사귄 국제 전문가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로펌 모리슨앤포스터에서 근무하면서 알게된 재미교포 3세 변호사의 소개로 한국계 변호사 친목모임이었던 세계한인법률가회(IAKL)에 참여했는데, 이후 14년간 사무총장을 맡으며 단체를 크게 키워 세계 한인 변호사 '대부'로 불린다. 1999년 100여명이던 회원수는 20여년이 지난 지금 23개국 3500여명이다. 전 세계 한국계 법조인은 4만명으로 추정된다. 

     

    최 변호사는 지난 2014년 경쟁자였던 일본인 변호사 등을 꺾고 한국 변호사로는 처음으로 IBA 이사에 선임됐다. 지금은 IAKL 회장을 맡고 아시아·태평양변호사협회(LAWASIA) 협회장에 11월 취임한다. 로아시아는 아·태지역 31개국 변협이 회원으로 참가하는 단체다. 

     

    89년 사회출발

     엔터테인먼트 분야 1세대 변호사

     

    "한국인 변호사들은 카자흐스탄,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나마,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등 전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도시마다 한국 변호사 조직이 있고 일본과 독일에도 변호사가 각각 200명이 넘습니다. 식민지배와 디아스포라(자의적·타의적 이산)를 겪은 한민족의 아픈 역사이자, 맨손으로 이국에서 터전을 일군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독일 파견 광부·간호사의 후예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외국인들이 일본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경우가 손에 꼽히지만 강제징용된 재일교포의 후예들은 일본 변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좁은 땅과 서초동에만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IBA 서울 연차총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 준비에 매진해왔다. 준비과정에서 뜻밖의 위기도 닥쳤다. 지난해 2월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된 IBA 이사회에서는 '서울 총회 취소 및 개최지 변경'이 안건으로 올랐다. 앞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가속화하면서 북핵 리스크가 대두되고 이사회에서 서울이 위험지역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는 "전 세계 법조계의 인식에서 한국이 어떤 좌표에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美·日·네덜란드 등

    4개국 유명로펌에 파견근무도

     

    "북핵 문제가 한국 내부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고, 북한과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당시 차기 회장에 내정됐던 브라질 출신 호라시오 베르나르데스 네토 현 회장은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세계 변호사들이 약속을 깨서는 안 되고, 서울총회는 북한 독재와 맞서는 한국 국민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라는 명연설로 다른 이사들의 마음을 돌렸습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분쟁의 최전선에서 법적 정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세계 법률가들이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공익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위험한 한국을 다같이 방문하자는 IBA의 결정은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총회에서도 참가자 7000여명 중 70%는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을 아시아 변방국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의 긍정적 매력을 알리고 탄탄한 법치주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 변호사는 "IBA 컨퍼런스는 전세계 대부분의 로펌과 국제업무가 이루어지는 핵심 플랫폼인데, 그 중요성이 국내 법조계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인재들은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법률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며 이번 총회를 통해 "특히 젊은 변호사들이 국제 인재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화상태인 국내 법조계의 활로개척을 위해서라도 국내에만 집중하는 법조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한인법률가회와 인연

     14년간 사무총장 지내

     

    청년 변호사들을 향해서는 특유의 '콩소금론(論)'을 펼쳤다. 자신에게 오는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남들이 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라는 권유다. 

     

    "저는 누구나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귀중한 존재라고 믿습니다. 누구나 고소한 깨와 만나 맛있는 깨소금이 되고 싶어하지만 것이, 깨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것이 깨가 아닌 콩이나 팥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90년대에 금융과 M&A 분야가 누구나 원하는 '깨'라면,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딴따라'로 여겨 천대하는 문화가 남아있었습니다. 호기심과 패기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은 결과, 작게나마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금의 역량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남의 시선과 시류에 휩쓸리기 보다는 웅대한 계획을 세우고 순간 순간에 충실하며 유일무이한 '콩소금'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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