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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 전 성폭행 피해 배상 판결… ‘소멸시효 기산일’ 논란

    “특별한 소멸시효 규정 따로 마련 등 입법개선 필요”

    남가언 기자 ganiii@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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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년 전 초등학생 때 운동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년이 된 뒤 코치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승소했다.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가 2012년 폐지된 점을 이용, 먼저 형사고소를 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뒤 이를 근거로 민사소송을 낸 것이다. 법원은 유죄 판결 선고된 때와 성폭행에 따른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PTSD)을 받은 시점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기산점으로 해석해 가해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면 '미투(Me too)' 피해자 보호와 손해배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9월 초중고교 선수 6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212명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이 가운데는 초등학생이 438명이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소멸시효를 지나치게 확장하면 법적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학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의정부지법 민사1부(재판장 조규설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스포츠계 첫 미투'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A씨가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코치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8나214488)에서 최근 "피고는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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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는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B씨로부터 테니스 지도를 받으면서 학교와 합숙소 등에서 4회에 걸쳐 성폭행을 당해 정신적 장애에 시달렸다. 성인이 된 A씨는 2016년 테니스 대회에서 우연히 B씨와 마주쳤고, 성폭력 피해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악몽과 위장장애, 두통, 수면장애 등 이상증세를 겪었다. 그러다 그해 6월 A씨는 PTSD 진단을 받았고 그 다음달 B씨를 고소했다. B씨는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초등생 때 성폭행 한 테니스 코치

    14년 만에 마주쳐

     

    B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 선고 직후인 지난해 6월 A씨는 민사소송을 냈다. B씨가 강간치상죄로 복역중이어서 1심에서 무변론으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후 B씨가 항소하자 A씨는 "아동성폭행 사건에서 소멸시효 항변이 배척된 최초의 판결문을 받겠다"며 맞섰다.

     

    항소심에서는 소멸시효의 기산일을 언제로 볼지가 쟁점이 됐다. 


    그때 악몽으로 두통·수면장애

     PTSD 진단 받고 고소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A씨가 성폭행을 당한 날로부터 17년이나 지난 2018년 6월에야 손해배상소송을 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볼 수도 있다. B씨는 예상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고 나왔다.

     

    A씨 측은 "아동성폭력은 성장하면서 그 정신적 피해가 더욱 커지는 특징이 있고, 아동시절에는 이같은 피해를 예견하기 어렵다"면서 "아동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소멸시효 기산일을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 성폭행과 PTSD 인과관계 인정

    징역10년 확정

     

    재판부는 고심 끝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민법 제766조 1항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했을 때를 의미하고, 2항의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돼 있다고 할 수 있는 때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B씨에 대한 유죄 판결이 선고된 때에야 비로소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돼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 "A씨가 겪고 있던 PTSD도 최초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에 관념적이고 부동적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던 손해가 현실화됐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형사재판의 1심 판결 선고일인 2017년 10월 13일이고, '불법행위를 한 날'은 PTSD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A씨는 3년, 10년의 소멸시효가 각 도과하기 전인 지난해 6월 소를 제기했으므로 B씨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적년 6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

     

    A씨를 대리한 김재희(38·변호사시험 2회) 변호사는 "법원은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행위와 PTSD 진단 사이에 10년 이상의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경우 '성폭력 피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는 피해자가 범죄 피해 즉시 통상 예견할 수 있는 손해의 범위에 포함되므로 성폭력 범죄 당시부터 시효가 진행된다'고 판단해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번 판결은 아동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의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을 가해행위 당시가 아닌, PTSD를 최초로 진단받은 시점 등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이번 판결이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새로운 법리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입법을 통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내놓고 있다.


    조현욱(53·사법연수원 19기)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성폭행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과 피해는 성장하면서 점차 확대돼 소멸시효가 지난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 손해가 현재도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소멸시효를 기존 성폭행 사건과 달리 판단한 이번 판결은 환영할 만하다"고 했다.

     

    항소심서 소멸시효의 항변 배척하고

    원고승소 판결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일명 '도가니' 사건 등 그동안 법원이 아동성폭행 사건 소멸시효를 지나치게 경직되게 판단해왔는데, 이번엔 아동성폭행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보다 중요하게 본 것 같다"면서 "비슷한 피해를 겪은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소멸시효의 일반법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법적인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폭행 사건에 특유한 소멸시효 규정을 따로 마련하는 등 입법적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시효 제도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 만큼 그 기산일은 객관적 시점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A씨가 성인이 된 후로도 3년이 지난 상태에서, 기산일을 판시 시점과 같이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로스쿨 교수는 "피해자마다 진단을 받은 날이 10년이 될 수도, 20년이 될 수도 있는데 최초 진단을 받은 날을 소멸시효 기산일로 잡기에는 다소 불명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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