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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령’으로 정책 밀어 붙이기… 법치주의 멍든다

    시행규칙 등 ‘행정입법’으로 추진… 법적 안정성 약화

    왕성민 기자 wangsm@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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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행정입법'을 통해 중요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례가 늘면서 법조계에서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모법의 위임범위를 넘어서거나 법률유보의 원칙에 따라 법률 개정을 통해 추진해야 할 기본권 제한 관련 사항까지 행정입법을 통해 추진되면서, 정부가 '법치주의'가 아닌 '령(令)치주의'를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때문에 각 로펌에는 개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위헌·위법성 등 문제점을 따지는 기업이나 단체 등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국회 파행에 따른 궁여지책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행정입법 중심의 정책이나 개혁 추진은 법적 안정성을 약화시켜 예측가능성 등 사회적 신뢰를 파괴할 위험성이 크다는 경고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3일 법무법인 화우(대표변호사 정진수)가 건설산업연구원(CERIK)과 함께 개최한 '최근 부동산 규제정책의 동향과 법적 이슈' 세미나에서는 개정 주택법 시행령의 위법성이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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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기형규(46·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정부가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하면서 개정한 주택법 시행령은 모법인 주택법 제58조의 위임범위를 일탈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 주택법 시행령 제61조 1항은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을 '3개월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해당 시·도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한 지역'이라고 규정해 모법의 위임취지를 잘 구현했었다"면서 "그런데 개정 시행령은 이러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단순히 '투기과열지구'라고만 바꿔놨다"고 지적했다. 

     

    로펌에 개정 시행령 등에 대한

    위법성 문의 잇따라


    지난달 1일 법무법인 율촌(대표변호사 윤용섭)이 개최한 '부동산 신탁' 관련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이날 이강민(42·32기) 변호사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신탁방식 정비사업 규제안'이 상위법인 도시정비법 등에 저촉돼 법률우위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최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추진 중인 정책과 관련해 고객들의 자문 요구가 크게 늘었다"면서 "대부분 상위법령의 위임범위를 뛰어넘는 시행령·시행규칙에 어떻게 대응할지 문의하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문제점은 부동산 분야 뿐만 아니라 기업·금융·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8일부터 시행된 개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대표적이다. 개정 시행령은 배임·횡령 등의 혐의가 확정된 기업 임직원이 해당 기업에 재취업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담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 등

    “위임범위 일탈” 무효주장도

     

    정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입법예고에서 사외이사와 기업 경영진의 유착을 막겠다며 사외이사 임기를 회사당 최장 6년으로 제한하고, 계열사를 바꿔도 총 9년으로 임기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임기를 행정입법으로 제한하는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규정은 앞서 개정 특정경제범죄가중법 시행령과 마찬가지로 기업 경영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데도 법률이 아닌 행정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최완진(67) 한국외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기업의 건전한 비판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외이사 제도가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정부 주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러한 사항은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국회에서 합의해 입법으로 해결해야지 시행령으로 바꾸려 하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정권 교체 등이 이뤄진다면 이러한 행정입법은 모두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의 협치(協治)를 포기한 채, 국회 파행만 탓하며 시행령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렵더라도 야당을 끊임없이 설득해 이해를 구하고 법률유보의 원칙 등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무리하게 시행령에 의존해 정책을 추진하다 사법심사 등에서 제동이 걸리면 오히려 개혁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율형사립고와 외고 등 특수목적고 존치를 둘러싼 논란이다. 

     

    “정부·여당, 국회 파행 탓하며

    시행령 정치는 큰 문제”

     

    2017년 11월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후기고 지원 대상 학교'로 변경해 일반고와 동시에 학생을 선발하게 하고, 자사고 등에 지원하면 평준화 지역의 일반고에는 중복지원하지 못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중복지원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2018헌마221). 이에 교육부는 다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 등을 개정해 2025년까지 특목고 79곳을 아예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지만, 백년대계(百年大計)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중요 교육 정책을 시행령으로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파행을 거듭하는 국회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의 20대 국회 법안 가결률은 10.8%에 불과하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해결이 시급한 정책들이 켜켜이 쌓여있는데, 국회 통과는 요원하다"며 "부동산과 기업 정책 등은 정권의 공약 사항으로 차일피일 미룰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시행령을 통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치행정의 원칙을 우회하는 편법이 용인되면 '소탐대실(小貪大失)'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국회 상황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행정명령 등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시행령은 어디까지나 법률의 위임을 받은 범위에서, 구체적이고 예측가능한 수준에서 운영해야지, 이를 뛰어넘는 차원으로 활용한다면 법치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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