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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인 출신 첫 국립대 ‘수장’… 차정인 부산대 총장

    “지역 명문대 발전은 국가적 과제이자 모두의 숙제”

    강한 기자 strong@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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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명문대의 발전은 국가적으로 유익한 과제이자 모두의 숙제입니다. 기형적인 수도권 초집중, 기업과 인재가 지방에서 빠져나가는 심각한 지역 유출 현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지난 5월 12일 부산대 총장에 오른 차정인(59·사법연수원 18기) 교수는 검사로 근무하다 고향인 경남지역에서 변호사로 개업해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섰으며, 또다시 후학 양성의 길을 걷다 모교 총장에 선출된 특별한 이력을 가진 법조인이다. 부산대 법대를 나온 차 총장은 모교 법대와 로스쿨에서 교수로 일하다 대학 구성원 직접투표를 통해 총장에 올랐다. 법조인 출신이 국립대 총장에 선출된 것은 처음이다. 차 총장은 다양한 대내외 활동을 통해 지역 민주주의와 학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년 동안 검사로 일하고, 13년간 경남 지역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다. 최근 15년 동안은 법학자·교육자로서 자신의 실무경험과 지혜를 지역사회와 모교 후학들에게 전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법조인을 포함해 수도권에 거주하는 분들이 실감하지 못해 안타까운 측면이 있는데, 국가균형발전은 평등과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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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마산 출신인 차정인(59·사법연수원 18기·사진) 부산대 총장은 남해 바다를 낀 농촌마을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고 어머니는 행상을 다녔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소꾼대장'을 맡아 동네 소와 아이들을 챙겼다. 차 총장은 "고향을 생각하면 '사랑', '평화'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아버지·21살 터울의 형님 영향으로 

    법조인의 길로

     

    "학교를 마치면 뒷산에서 소 풀 먹이는 일이 그 당시 아이들 일과였습니다. 소꾼대장은 소와 동네아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살피는 소치기, 돌보미, 뒷산대장입니다. 한 번은 정작 우리집 송아지가 도망가버렸어요. 고개를 몇 개 넘다보니 캄캄한 밤이 됐는데, 철없는 소가 야산 나뭇가지에 코뚜레가 걸려 있더군요. 어찌나 반갑던지, 아무리 어두워도 돌아오는 길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마산 산천과 논밭이 언제나 그립습니다."


    연수원 1년차 때 일부 동기들과 

    6월항쟁 몰래 참가

     

    차 총장의 맏형은 고(故) 차정문(고시 16회) 검사다. 그는 스물 한 살 터울의 형과 아버지, 민주화의 영향으로 검사와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큰 형은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던 1975년 유신정권의 비호를 받는 사건을 수사하다 반골 검사로 찍혀 고초를 겪었다. 4·19 혁명 이후 본격적인 민중항쟁의 지평을 열고, 긴급조치로 유지되던 유신독재체제의 종말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 1979년 부마민중항쟁 당시 차 총장은 부산대 법대 1학년이었다. 그 해 10월 중순 부산대에서 시작된 시위가 마산까지 확산되자 유신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특수부대와 해병대를 투입했다. 경찰은 집회에서 비판 연설을 했다며 차 총장을 하숙집에서 연행했다. 이후 10·26 사태, 12·12 군사반란, 광주 민주화운동 등을 지나 그가 26세 때 한국에도 민주화가 찾아왔다. 사법연수원 1년차였던 그는 일부 18기 동기들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에 몰래 참가했다.

     

    "큰 형이 하는 일이 멋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더 놀라웠습니다. 형에게 왜 그랬냐고 되묻는 대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 검사'라며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전두환 5공 정부에서 사법연수원생이 시위에 나가 잡혔다간 잃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20여명의 사법연수원생들이 두 명씩 조를 짜서 거리로 나섰습니다."

     

    ‘일벌백계’ 검사 생활 편치 않아 

    4년 만에 옷 벗어

     

    당시 그의 짝은 동갑내기인 문무일(59·18기) 전 검찰총장이었다. 차 총장은 마산·상주·서울남부에서 형사부와 특수부 검사로 일하다 4년 만에 옷을 벗고 1993년 창원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는 "검사로서 사명감과 정의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면서도 "성숙한 업무처리를 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관대한 처분을 해도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사람에게 융통성 없이 굳이 엄하게 처분한 일들이 오래 맘에 걸렸다. 법관 뿐만 아니라 검사로 일할 사람에게는 좀 더 연륜이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맞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훌륭한 검사라면 진실을 밝혀 일벌백계, 권선징악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 정의는 추상적이고, 눈 앞에는 구체적인 개인이 있습니다.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 일상업무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변호사의 눈 앞에는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앉아 있고, 그를 도와주면 되니 보람이 있고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검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값진 일이고 검사가 제대로 일해야 국민이 평안합니다. 검사가 맡은 바를 수행하기 위해 범죄 척결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사이기 이전에 법률가라는 점을 놓치면 권한이 오남용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특히 검사로 임용되는 제자들에게는 법률가의 눈으로 세상을 봐달라고 꼭 당부합니다."

     

    창원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

     시국사건 많이 맡아

     

    그는 창원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저소득층 이웃들을 무료로 변호했고, 시국사건 변호도 많이 맡았다. 그러다 YMCA·여성의 전화 등 시민단체와 함께 지역 변호사들이 빈시간을 이용해 당번을 맡는 무료 법률상담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1994년 진주 경상대 교수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는 당시 문재인(67·12기)·강재현(60·16기) 변호사와 함께 공동 변론했다. 이 사건에서 당시 최인석(63·16기) 창원지법 판사는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법원은 1~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인권 변호사는 인권을 위해 평생 헌신한 분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제게는 과분한 호칭입니다. 사양하고 싶습니다. (다만) 검찰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변호인 신문 참여권을 행사한 일은 기억에 남습니다. 관련 법률 조항이 없고 헌재 결정도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1심 법정에서 공안검사가 물었습니다. '피고인은 다음과 같은 서술로 북한을 찬양하였지요?' 피고인 중 한 명인 정진상 교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학자는 분석하고 평가할 뿐 찬양하지 않습니다' 이 명쾌한 답변이 국가권력과 학문세계의 관계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초 전국 최초

     ‘작은 도서관 갖기 운동’ 시작

     

    서울이 아닌 지역에 뿌리를 내린 변호사로서 그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1990년대 초반 창원에서는 전국 최초로 지역도서관 설립운동인 '작은 도서관 갖기 운동'이 시작됐다. 지역 비정부기구·단체(NGO)와 함께 이 사업을 이끌었던 그는 시민모금운동을 진행하면서 1억원이 넘는 사비도 털어넣었다. 창원에는 3000여권의 책을 소장한 마을도서관 13개가 들어섰다. 경기도 부천시, 경남 김해시 등 다른 지자체들이 이어받으면서 전국으로 퍼졌다. 그가 1997년 변호사로서는 이례적으로 '독서문화상 대통령상'을 받게 된 배경이다. 지금은 창원에만 100여곳의 작은도서관과 평생학습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학창시절에 읽은 책은 평생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행정기관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가 품은 큰 꿈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부모가 읽은 책을 계기로 집안이 평안해져도 보고서에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성과가 없는 것일까요. 지역의 변화는 작은 씨앗에서 출발합니다."

     

    학부 졸업 23년 만에 

    로스쿨 교수로 母校 강단에

     

    그는 부산대 법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쳤다. 로스쿨 도입을 앞둔 2006년 실무경험이 풍부한 지역 법조인을 찾던 부산대는 그를 법조실무가 교수로 초빙했다. 학부 졸업 23년 만에 모교 교수가 된 그는 "교수님보다는 선생님이라 불릴 때 더 기쁘다"고 했다. 교수는 '직책'이지만, 선생님은 '관계'라는 설명이다. 법대에서는 궂은 일로 여겨지는 사법고시반 지도교수를 6년 동안이나 맡았다. 법대와 로스쿨 학생들은 그를 엄격하면서도 스스럼 없는 스승으로 여긴다. 그래서 제자들이 애정을 담아 붙인 그의 별명은 '차담탱(고3담임 같다는 의미)'이다. 법학자로서는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공판중심주의 실현 방안과 사실인정론에 관심을 가졌다.


    로스쿨제도 성공적 정착

     다양성 속에서 시야 넓혀

     

    "책 읽고 공부하는 일,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이 체질에 맞았습니다. 잘 준비된 강의자료를 들고 강의실로 향하는 순간 엔돌핀이 솟습니다. 실무경험과 고민들이 연구주제를 잡거나 강의를 진행할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중간·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면 강의실에서 전체 강평을 한 뒤 한 명씩 연구실로 불러 개별 강평을 했습니다. 학생들은 모르는 자신의 논리구성 허점이 선생의 눈에는 답지를 통해 보이기 때문에 개별 강평은 굉장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사실인정론은 '어떤 증거에 의하여 어떤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론입니다. 학교에서는 자백배제법칙 등 증거능력을 충실하게 가르치는데, 실무에서는 사건기록을 펼쳐들면 증거능력은 문제가 없는데 증명력 판단이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형사사건 핵심쟁점에 대한 기본적 사고틀을 배워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2012년 원장을 맡아 로스쿨을 이끈 차 총장은 "로스쿨 제도는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면서 "다만 우수한 수업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임을 명심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시켜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선 잘못된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발표에서 지역 로스쿨의 성과가 왜곡되고 있다"며 "학교별 응시자 수가 아닌 입학정원을 모수로 삼아 합격자 비율을 산출해야 학교 역량과 실적을 정확히 나타내는 자료가 된다"고 지적했다. 

     

    총장소임 다한 뒤 

    로스쿨 돌아가 후진 양성에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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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전공자들이 함께 공부하면서, 다양성 속에서 시야를 넓히고, 지식의 한계를 느끼며, 겸손을 배우는 것이 로스쿨의 강점입니다. 대신 좋은 수업과 좋은 커리큘럼이 꾸준히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미 재학생 중 법학 전공자가 20% 미만입니다. 법과대학 시절과는 교육과 평가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세법·국제법·지식재산권법 등 현재 선택과목인 전문법률과목을 의무이수로 바꿔 학생들이 많이 배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시험 점수 따기 좋은 과목을 고르는 풍토에서는 교육 정상화가 어렵습니다. 일부 로스쿨에서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졸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비교육적인 방식입니다. 엘리트 경쟁 체제를 답습하며 신입생을 연소자 위주로 뽑는 곳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에이지즘(연령차별)은 레이시즘(인종차별) 만큼이나 나쁘게 봅니다. 로스쿨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사회경험과 연륜이 있을수록 좋다고 봅니다."

     

    총장으로서 그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할당제 확충, 대학정책연구원 신설 등 강도 높은 대내외 정책을 추진하며, 지방 거점 국립대를 지방자치 및 국가균형발전의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법규정이나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높은 법조인 출신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각종 대내외 분쟁을 슬기롭게 풀어갈 것이라는 기대도 받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요람이자 산실인 대학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민주적 절차와 소통을 강화할 방침이다. 


    법조인은 후세에 평가 받는 

    직업임을 꼭 기억해야 

     

    차 총장은 현 정부와 검찰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다만 "청렴은 차라리 쉬운 길일 수 있다"며 "공직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동료와 주변의 기대를 의식한 경쟁심"이라고 했다.

     

    "권력은 영리합니다. 승진과 인사를 통해 공무원과 엘리트를 조종해왔습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송백이 시들지 않는 나무인 줄 안다'는 이 말을 수업시간에 자주 강조합니다. 사람의 진면목은 이해관계가 걸린 결정적 순간에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특히 업무내용이 낱낱이 기록으로 남는 법조인은 후세의 평가를 받는 직업이라는 점, 이승만정권과 군부정권 치하에서 법조인의 진면목이 알곡과 쭉정이처럼 드러났던 일을 제자들이 기억하기 바랍니다. 4년간 총장의 소임을 다한 뒤에는 로스쿨로 돌아가 정년까지 남은 2년간 최선을 다해 수업하고 싶습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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