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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M&A분야 슈퍼스타 ‘광장’ 김상곤 변호사

    “기업의 역사 함께하며 경제성장에 기여할 때 보람”

    홍수정 기자 soojung@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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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곤(52·사법연수원 23기·사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법조계와 재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수합병(M&A)계의 귀재(鬼才)다. 본보가 지난 4월 제57회 법의 날을 맞아 실시한 '사내변호사 대상 2020년 대한민국 로펌 평가'에서 '상사·기업법 분야'에서 최고의 변호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9년 있었던 '제일은행 매각 건', 201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한화그룹의 빅딜' 등 한국 경제사의 한 획을 그은 인수합병 건에는 늘 그가 있었다. 김 변호사는 '완벽주의자'로 불릴 만큼 일에서 철두철미하지만, 일상에서는 유머러스한 달변으로 주위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드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다. 또 법조계에서 손꼽히는 주당(酒黨)으로 유명하며, 취미로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풍류가이기도 하다. 철두철미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한국 M&A 업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그를 지난달 15일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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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52·사법연수원 23기·사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휴전선 접경 지역인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인제에서 자랐다. 지금은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이면 닿는 곳이지만, 그가 유년기를 보낸 1970년대에는 8시간을 넘게 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깡촌이었다. 김 변호사는 어릴 때 '조용하고 튀지 않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근처 개울에서 낚시도 즐겨했다. 삼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본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크게 편찮으셔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간호를 위해 서울로 가셨죠. 그 바람에 부모님도 안 계신 시골 집에서 한동안 홀로 동생 둘을 돌보며 소년가장 비슷한 생활을 1년 정도 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립니다."

     

    양구에서 태어나 인제에서 자라 

    학창시절 서울로

     

    최근 언론사 칼럼 필진으로 문장력을 뽐내기도 한 그는 학창 시절 국어를 무척 좋아했다. 중학교 때 문예반 활동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고전과 고문법을 좋아해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로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꼽았다. 


    "서울로 이사를 온 후 부모님이 많이 고생하시고 생활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빨리 경제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죠.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저를 앉힌 다음 진지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죠. 공부의 즐거움도 말씀하시고, 제가 공부를 계속 했으면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선생님도 저와 상담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교단을 떠나 유학을 가려고 하셨는데, 그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인생에 대한 진지한 조언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대학 2학년 마치고 군대 갔다

     91년 사법시험 합격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인문계 고교로 진학한 그는 1986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선배이자 지금은 주체사상학파로 알려진 하영옥씨를 따라 대학 동아리에 가보기도 하고, 당시 법대에서 부르주아 모임으로 알려진 국제법학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생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그는 전환기를 갖고자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그는 시험공부에 매진해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그는 곧바로 법무법인 광장의 전신인 한미합동법률사무소에 입사했다. 당시 한미합동법률사무소는 물론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다른 주요 로펌들도 소속 변호사가 30명 안팎일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김 변호사는 당시 로펌의 문화와 성격은 지금과 다소 달랐다고 전했다.

     

    연수원 수료 후 

    바로 ‘광장’ 전신 법률사무소 입사

     

    "1990년대에는 로펌들의 규모가 모두 작다보니 변호사 개인이 모여있는 형태와 유사해서 소속 변호사들의 독립성이 비교적 두드러졌어요.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소속 변호사 수가 급격히 늘어 로펌들의 몸집이 불어나기 시작했죠. 지금의 로펌은 말 그대로 '법률회사'로서의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 그때와 다릅니다. 또 당시에는 변호사에 대한 예우가 상대적으로 좋았죠. 호시절에 변호사를 시작해 어려움 없이 업무를 해나갔습니다. 지금 후배들을 보면 훨씬 치열한 시장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 같아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는 'M&A' 분야에서 최고 반열에 올랐지만, 처음부터 이 영역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입사 초기 금융, M&A, 해상보험 등 몇 개의 영역을 두고 고민하다 기업 자문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투자분야'에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들이 많아 관련 자문업무를 꾸준히 수행했다. 그러다 한국 기업들이 성장하며 합작법인 설립이 증가했고, 1997년 IMF 사태가 터지며 M&A 관련 딜이 봇물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활하며 변호사로서 압축성장을 한 것이 지금의 김 변호사를 만든 토대가 됐다.

     

    금융·해상보험 등

     영역 고민하다 ‘투자분야’ 선택

     

    "1997년 IMF 사태 당시 저는 4년차 변호사여서 '이제 업무를 조금 알 것 같다'고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물 밀 듯이 들어온 일감들에 정말 바빴죠. 집에 갈 시간도 없어 회사 근처에 호텔을 잡아두고 숙식을 하며 일을 하기도 했어요. 이때부터 2000년 유학을 가기 전까지, 4년간은 정말 정신없이 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운이 좋았죠. 저년차 변호사로서 수많은 M&A 딜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고 많은 고객도 알게 됐으니까요."
    김 변호사는 굵직한 M&A 딜들을 성사시키며 인수합병 분야의 간판스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을 물었더니, 1999년 '제일은행 매각건'을 꼽았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1999년 말까지 해외에 제일은행을 매각하겠다고 IMF(국제통화기금) 측과 약속을 했습니다. 인수인이었던 뉴브리지캐피탈은 우리 정부가 시한에 쫓기고 있다는 점을 잘 이용했죠. 12월까지 매각을 마쳐야 된다는 점을 이용해 합의를 안 해주며 버티는 것입니다. 시한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힘든 협상을 지속하며 우여곡절 끝에 합의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IMF사태로 M&A관련 딜 

    봇물 터져 정신없이 보내

     

    2003년 'LG화학의 현대석유화학 인수 건'에서는 LG 측에 자문을 제공했다. 그는 이 딜을 통해 "LG화학이 기업으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맞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2010년에는 CJ 그룹 6개사가 합병해 CJ E&M을 설립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상장, 비상장사 6개가 합병하는 초대형 딜이었다. 사안도 어려워 준비기간에만 무려 1년이 걸렸다. 그는 "합병이 성사된 이후 CJ E&M이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돼 기뻤다"는 소회를 밝혔다.

     

    굵직한 M&A 딜 성사 시키며

     인수합병분야로 스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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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변호사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창의적인 방안으로 딜을 성사시키는 '프론티어(frontier)'로도 정평이 났다. 특히 기업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 지주사 설립 등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관련 M&A 사건들을 내리 성공시키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갔다. 그는 가장 좋은 선례로 2014년 '삼성·한화그룹 빅딜'을 꼽았다. 삼성그룹의 석유화학부문과 방산부문을 한화그룹이 인수하는 초대형 양수도 계약이었다. 계약 규모만 무려 1조9000억원대에 달했다.

     

    "삼성·한화 사이의 인수합병은 당시 우리나라를 떠들석하게 만들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이 건은 이후 기업이 자발적으로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중요한 선례가 됐죠. 이제는 기업들이 덜 유망한 분야에 대한 매각을 일상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습니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M&A에도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 딜에 참여하며 한국 경제의 성장 한가운데서 함께 숨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참 좋았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모 대기업을 유럽 기업에 매각하는 자문을 했는데, 약 1년 반에 걸친 협상이 서명 직전 무산된 것이다. 모든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했지만 계약 조항이 아닌 전문의 문언에 다툼이 생겼고 결국 딜이 깨지고 말았다. 그는 "당시에는 허망했지만, 다행히 그 기업이 좋은 평판과 이미지를 유지하며 성장하는 것을 보면 꼭 아쉽지만은 않다"고 말하며 웃었다.

     

    1999년 ‘제일은행 해외 매각 건’ 

    가장 기억속 남아

     

    그는 M&A 전문 변호사로서 기업의 성장을 지켜보며 기업사를 함께 하고 경제성장에 기여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법조인으로서 기업과 국가경제의 역사적 현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업무 특성상 갑자기 호출을 받고 밤샘 협상을 진행한다거나, 엄청난 분량의 계약서를 저녁에 받아 다음날 아침까지 검토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스케줄 관리가 어려운 점은 큰 고충으로 다가온다. 거래규모가 수천억~수조 원대에 이르는 딜이 대다수라 촉박한 시간과 고객의 예민함을 잘 고려해 자문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가 M&A 분야 최고 변호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신뢰'였다.


    한 분야 최고 변호사로 

    성장비결은 ‘고객과의 신뢰’

     

    "고객과의 신뢰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점이 결국 통한 것 같습니다.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력, 인간관계 등 모든 방면에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죠. 또 M&A 분야는 플레이어의 수가 적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좋은 평판를 유지하고 쌓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로펌업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로 평가받고 있는 김 변호사는 2018년부터 광장의 운영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소속 변호사 600여명에 스테프까지 총 1300여명에 달하는 대형로펌 경영에도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른 회사와 달리 법률전문가들의 집단인 로펌의 운영위원 역할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로펌 내부 살림살이를 챙기고 각 전문분야 팀과 변호사들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유망 인재 유치 등 로펌의 발전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로펌의 다음 과제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팀마다 균질화된 서비스'라고 답했다.


    로펌은

     ‘팀마다 균질화된 서비스 제공’

     고심해야

     

    "2000년대 초반 로펌에게 주어진 과제는 대형화·전문화였습니다. 일단 몸집을 키워 대형화를 거친 후 전문화에 집중한 것이죠. 제가 운영위원이 된 2018년은 광장을 비롯해 우리나라 주요 로펌들이 이 두 가지 과제는 모두 마친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로펌들은 '(전문분야 등에 따라 운영하고 있는) 모든 팀들이 균질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를 고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찾아 메꾸며 전(全)분야에서 해당 로펌의 명성에 어울리는 퀄리티를 갖춰야 하는 것이죠."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이제 50세를 막 넘은 나이라 아직 은퇴를 생각할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M&A 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에서 조금씩 발을 빼며, 후배 변호사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할 시간도 다가오고 있지요. 그래서 일단은 우리나라 로펌에 잘 정착이 되지 않은 후배 변호사들에 대한 '승계 작업(succession plan)'을 잘 수행해 보고 싶습니다. 변호사로서 그 다음 플랜은 다가올 미래를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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