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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인으로, 언론인으로’ 강해룡 법률신문 편집인

    법이란 교통신호등… 안 지키고 잘못 해석하면 ‘사고’

    강한 기자 strong@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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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은 교통신호등입니다. 법을 모르고, 잘못 만들고, 안 지키고, 해석을 잘못하면 모두가 사고 위험을 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법조와 언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강해룡(姜海龍·88·고시 8회·사진) 변호사는 24년간 법률신문 편집인으로 일하며 법조와 국민을 잇는 '법조 언론인'으로 살아왔다. 이북 출신으로 17살에 38선을 넘은 그는 50~60년대 전후(戰後) 혼란기에는 국가와 대법원의 기본권 침해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남긴 강단 있는 판사로, 70~90년대 산업 발전기엔 승소보다는 조정을 권하는 사려 깊은 변호사로 활동했다. 구순을 앞두고 있는 강 변호사는 자신이 걸어온 길과 한국의 변화상을 돌아보며 '법치주의'와 '법률상식 보급'을 거듭 강조하면서, 법조계와 언론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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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해룡(88·고시 8회·사진) 변호사는 일제시대인 1932년 황해도 송화군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우리나라 4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구월산(九月山) 줄기와 황해도 앞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다. 북한 정부는 1996년 그가 태어난 마을 앞바다에서 대규모 유전(油田)이 발견됐다는 발표를 했다. 사과가 유명했던 송화군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지금은 '과일군'으로 불린다.

     

    강 변호사는 어릴 적 어머니와 두 형의 말을 잘 듣는 얌전한 소년이었다. 그는 교사를 양성하는 해주사범학교(중학교)에 다니던 2학년때 8·15 해방을 맞았다. 일제 치하에서 강 변호사의 아버지는 구장(마을 이장)을 맡고 있었다. 일본인 지소장(파출소장)이 마을에 들릴 때면 닭을 잡고 술을 냈지만, 뒤로는 은밀한 이중생활을 했다. 우리나라 각지에서 중국과 만주로 독립자금을 보내는 전달책을 맡았던 것이다. 

     

    황해도 송화군 출생

     17살이던 1948년 홀로 서울로


    해방 직후 혼란이 극심하던 시절, 그가 다니던 일본식 학교가 공산당 간부와 교사를 양성하는 곳으로 바뀌자 그는 학교를 옮겼다. 그러다 1948년 징집을 앞두고 월남했다.


    "일제시대 일반 시민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낮에는 순사들과 닭을 잡아 먹고, 뒤로는 독립운동자금을 릴레이식으로 날랐습니다. 해방 후에는 인민군에 끌려가게 생겨, 두 형이 있는 서울을 향해 무작정 38선을 넘었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인민군복을 입었습니다. 전쟁 직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친구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죽지 않고 살아 만난 것이 반가울 뿐이었습니다."

     

    6·25 전쟁 중 서울대 입학

     법대 4년 때 고시 합격

     

    6·25가 터지자 피난에 나섰지만 부산까지는 못갔다. 그는 거문도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반전된 이후 전라도 강진으로 옮겨 광주서중학교와 광주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서울대는 부산에 있었다. 전쟁통에 하꼬방에서 치른 시험에 합격했고, 법대 4학년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병역은 공군법무관으로 마쳤다. 육군을 희망했지만 대학 동기이자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이회창(85·고시 8회) 전 총리의 권유에 따라서다. 


    "법을 알고, 법을 해석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은 법학통론이라는 책에 '물론해석'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마차통행 금지라는 표시를 종로통에 세우면 말이 끄는 마차 뿐만 아니라 소가 끄는 우차의 통행도 금지하는 것입니다. 금지하는 법을 만든 이유가 원활한 자동차 통행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표시를 뚝방에 세우면 마차와 우차 뿐만 아니라 자동차 통행도 금지하는 것이 됩니다. 뚝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우마차와 자동차가 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법이 도로 위에 있는지 뚝방 위에 있는지를 고려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61년 판사 임관

     ‘징발 토지’ 관련 판결은 ‘화제’로


    1961년 판사로 임관해 대구지법, 서울민사지법, 서울고법에서 근무했다. 법과 원칙에 어긋난 사안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서울민사지법 13부 재판장을 맡을 때 대법원 판례를 거역하는 판결을 한 적이 있습니다. 6·25 전쟁 때 유사시라는 이유로 한국군이 농토와 임야를 징발했습니다. 국가 유사시이므로 당시에는 합법적인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가가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소송이 많았습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돼 대법원까지 수도 없이 올라갔고, 대법원도 대부분 인정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돈을 안 주니까 판결문을 근거로 서울역이나 우체국처럼 돈이 도는 국가기관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하는 농민과 땅주인이 많았습니다. 제가 내린 1심 판결은 이렇습니다. '국가 유사 시 징발은 합법인데 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느냐.' 기각 판결을 내리자 대법원에서는 저보고 판례를 어겼다고 했죠. 하지만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잘했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대법원에서 관련 사건의 선고를 멈췄습니다."


    60년대 법정풍경 카메라에

     국내외 공모전에 수상도 


    변호사로 개업한 뒤에는 1981년부터 2006년까지 26년간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1989년부터 2007년까지 18년간 서울시 선거관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법률신문에 편집인으로 합류해 언론인의 길을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친구인 임규운(87·고시 11회) 변호사가 이택규(조선변호사시험 2회) 변호사에 이어 법률신문 사장이 되면서, 대법원 판결의 요지를 뽑는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법률신문이 전문지다울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서 나왔더니 편집인이었습니다. 편집인은 신문에 게재된 내용에 책임을 지는 최고 책임자입니다. 명예훼손 등 문제가 생겼을 때 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1969년 변호사의 길로

     97년 법률신문 편집인 취임


    그는 "법이란 교통 신호등"이라며 "법치주의를 위해 갈 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조문과 판례에서 사용되는 법률용어 중 의미와 내용이 같은데도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 결정 중에 법의 해석을 잘못한 경우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해방 이후 강산이 일곱 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법치주의는 멀었습니다. 법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년간 법률신문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새로운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을 많이 접했습니다. 새로운 판례 뿐만 아니라 오래된 판례에서도 타당성에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어 연구했습니다."

     

    법해석 잘못한 사례 모아 

    평론집 ‘아니올시다’ 발간


    그는 다년간에 걸쳐 대법원의 법 해석이 잘못 됐다고 판단한 사례에 대한 평론을 작성해 법률신문에 게재했다. 대표적인 예가 1991년 4월에 선고된 대법원 판례(90도1287)에 대한 평론이다. 

     

    "1989년 시행된 주택건설촉진법은 국민주택사업주체가 건설·공급한 국민주택은 주택을 최초로 공급한 날로부터 5년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이 경과하지 않으면 이를 타인에게 전매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시행령으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은 6월로 한다'고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전매금지 기간은 주택을 최초 공급한 날로부터 입주개시일 이후 6개월까지 입니다. 그런데 시행규칙 제24조의2는 '최초로 공급한 날이란, 국민주택사업주체가 입주예정자에게 통보한 주택의 입주개시일을 말한다'고 정했습니다. 그러면 법의 해석에 따라 전매금지기간이 다르게 됩니다. 국민주택을 건설해 공급하는 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건축이 완공되기 이전에 입주예정자가 당첨으로 결정되고, 건축이 완공되면 국민주택사업주체가 입주예정자에게 입주개시일을 통보합니다. 입주개시일이 통보되기 이전에도 매매·증여·임대 등 전매행위가 이루어지므로, 적어도 입주개시일 이후 6개월까지는 전매행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같은 금지행위를 정한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법치주의에 가장 절실한 과제는 

    법률상식의 보급

     

    그의 평론 일부는 2014년 '아니올시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강 변호사는 지금도 입법을 제대로 못하고 법의 해석도 제대로 못한 사례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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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용어를 잘못 사용한 사례를 볼까요. 형의 집행유예기간이 만료되면 그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선고된 형의 효력인 집행력을 잃는다는 의미이지, 이로써 전과도 말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전과말소에 관한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형의 실효에 대해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라고 표기했었습니다. 때문에 하부규정에서는 형의 집행유예기간이 경과한 때에도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었으니 전과도 말소된다는 규정을 뒀습니다. 법률조항의 제목을 잘못 표기한 사례를 볼까요. 헌법재판소법 제22조는 헌법재판소 '심판'은 재판관 전원으로 구성되는 재판부에서 관장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법 제23조는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정하면서 제목을 '심판정족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제목 표시를 잘못한 것입니다. 심판은 결론까지 내는 것을 의미하며, 심리는 결론을 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7명 이상으로는 심리는 가능하지만 심판은 할 수 없는 것인데 제목이 잘못된 것입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8인 체제로 최종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심리하여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찰총장은 탄핵으로

     징계로 내쫓을 수 없게 해야


    강 변호사는 "법률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가인 김병로 전 대법원장이 남긴 휘호를 보니, 위대하고 대단한 인물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는다"며 "70년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법치주의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법률상식의 보급"이라고 강조했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됐고,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법률상식의 보급이 필요합니다. 높은 사람과 기관일수록 법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선거무효나 당선무효에 해당할 수 있는 선거소송은 다른 사건 제쳐놓고 6개월 내에 종결하라고 법이 정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4·15 총선에서 제기된 선거소송 중 결론 난 것이 없습니다."


    강 변호사는"법률상식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발생하는 일"이라며 최근 '검찰파동'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탄핵 절차로 파면할 수 있으니 징계로 내보낼 수는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보수집’을 ‘사찰’로 매도하는 

    현 상황 안타까워


    "대통령도 장관도 판사도 국민도 법률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판사를 '사찰'했다며 검찰총장을 징계위원회에 넘겼는데,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법조인대관 등을 통해 이력과 가족관계를 모은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찰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한 것입니다. 사찰의 법적성격은 '동태(움직이는 것)' 파악입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을 순사가 미행하고 뒤따라 가는 것이 사찰입니다. 더구나 검찰청법은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임기까지는 해임시키지 못한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선출직 외에 법으로 임기가 정해진 국가 공무원이 있나요? 그런데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내용의 징계를 하겠다고 합니다. 임기가 보장된 공무원에 대해서는 징계가 아닌 탄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탄핵의 법적 의미는 국민이 하는 징계처분입니다. 현행법과 인식은 국회가 탄핵 소추를 하고, 헌재가 이를 심판하는 것처럼 규정되어 있지만, 민주주의 원칙과 임기제의 의미를 고려하면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탄핵하면 헌재는 정당성 등을 사후심사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의 취미는 사진이다. 2014년 발간한 '그때 그 시절의 영상' 사진집에는 1960년대 풍경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레에 연탄을 옮기는 모습,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는 노인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모습과 풍경 100점이다. 그는 국내외 다수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사진이 동아일보 등 일간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특히 작품 '항변'과 '아니올시다' 등은 평판사 시절 그는 법전 케이스에 숨긴 캐논 소형 카메라로 생생한 법정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변호사 개업 이후에도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진동호회 회장을 역임 하는 등 작품 활동을 활발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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