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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자폐인 권익보호의 代父… 김용직 케이씨엘 변호사

    ‘자폐성 장애’ 아들을 돌보다가 평생의 소명으로…

    남가언 기자 ganiii@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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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法)은 한자로 '삼수 변'에 '갈 거'자를 하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물처럼 흘러가는 것, 즉 '상식'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률가의 본분은 소수자를 보듬어 그 상식에 부합하는 법의 모습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폐인 권익 보호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김용직(66·사법연수원 12기·사진)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의 말이다. 1985년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 그는 소수자인 자폐인을 보듬으며 법률가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왔다. 2001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2006년부터 자폐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면서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최초의 단체인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설립해 회장직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2014년에는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해 특정장애 영역을 위한 최초의 입법을 이뤄내면서 또 한번 '최초'의 타이틀을 얻었다. 이 밖에도 35년 이상 사회복지법인 아가페 이사를, 10년 이상 소화장학재단 상임이사를 맡으며 인생 절반을 봉사에 헌신한 그를 지난달 18일 법무법인 케이씨엘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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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직(66·사법연수원 12기·사진)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는 어려운 형편에도 남달리 의협심이 강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셨던 어머니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머니는 초등학생이던 김 변호사에게 위인전 12권을 사줬는데, 그 중 링컨에 매료된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법조인을 꿈 꿨다.


    2차례 사시 실패 후 행시 합격

     그래도 미련은 남아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루어 나가는 링컨의 모습에 매료됐어요. 그런 그가 변호사였던 터라 어린 마음에 그냥 법조인이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였나 봅니다. 또 당숙께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계셔서 집안에서 법조인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가 소송까지 간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미술 문제에서 소위 '창칼파동'이라고 해서 학교 측에서 복수 정답을 인정해주는 바람에 동경하던 경기중학교에 불합격하고 말았어요. 학부모 500여명이 소송을 제기했는데 저희 역시 소송에 함께 했지요.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지만 이미 이 시절 소송에 당사자로 참여함으로써 법조계에 너무 일찍 데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22회 시험 합격으로 

    법조계 들어와 어릴 때 꿈 이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면서 그는 법조인의 꿈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하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대학 3학년 말에 제19회 사법시험을 치게 됐어요. 당시 80명 선발이었는데, 총점 0.33점 차이로 아쉽게 떨어졌습니다. 소위 수석낙방인 셈인데 다음 해 대학을 졸업하면서 보게 된 제20회 사법시험에서는 20명이 증원된 100명을 뽑았어요. 그래서 당연히 쉽게 합격하리라 믿었는데 다시 낙방의 고배를 맛보게 됐지요. 심적 타격이 너무 컸던지라 법서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도저히 아니었고 잠시 마음을 추스르면서 경제학, 회계학 등 법서 이외의 책을 보게 되었는데, 이왕 공부를 한 김에 행정고시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했다가 운 좋게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행정부처에서 사무관 생활을 하다보니 사법시험 준비에 느슨해져 결국 제21회 시험에도 불합격하고 이듬해 제22회 시험에 비로소 합격해 법조계에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동력자원부 등에서 사무관 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행정고시 동기들과 교류하고 또 세상을 폭넓게 보는 안목이 생겼는데, 이때의 경험은 훗날 장애 입법활동을 할 때 큰 힘이 됐습니다."

     

    법관생활 시작 즈음 

    아들의 ‘자폐성 장애’ 사실 알아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공군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당시 서초·강남을 관할하는 가장 큰 법원이던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법원에 발을 디딜 무렵, 그에게 인생 전체를 바꿀 만한 사건이 생겼다. 큰 아들이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옹알이를 잘 하지 않고 모빌에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당시 자폐증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때였어요. 우리 부부는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어려운 사실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도 컸어요. 기적을 바라며 매달 음성 꽃동네에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오웅진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오 신부님께서 저희에게 '다른 분들보다 여건이 좋으니 자폐성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앞장서 해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평생의 업이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자폐아 부모회’ 만들어 활동

     최초 복지법인도 창립

     

    이후 그는 자폐아 부모들과 힘을 합쳐 조기교실을 운영했다. '자폐아 부모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발달장애 관련 최초의 사회복지법인인 '계명복지회'의 창립멤버가 됐다. 하지만 법관 신분으로는 장애 관련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현직 판사가 다른 단체 일을 한다는 것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없었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결국 2001년 서울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6년 동안 입었던 법복을 벗고, 법무법인 케이씨엘에서 변호사 배지를 달게 됐다. 개업 후 그는 자폐성 장애와 그 가족들을 대변하는 사단법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폐성 장애인은 장애의 특성상 자기 의사를 스스로 표현하기 매우 어려워 이들을 대변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법관 신분으로 

    장애인 관련 활동에는 제약도 많아

     
    "우선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협회를 만드는 데 열의가 있는 부모님들을 주축으로 해 모든 전문가 집단을 모았어요. 단체 운영을 위해서는 자금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업인과 독지가를 만났습니다.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기업인이나 독지가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권유했습니다. 1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2006년 1월 12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밀알학교에서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창립대회를 열게 됐습니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자폐성 장애를 대표하는 단체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장애인단체에 '사랑'이란 명칭이 들어간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만, 자폐성 장애는 너무 어려워 사랑 외에는 이를 극복할 만한 것이 없어서였기 때문입니다."

     

    16년 동안 입었던 법복 벗고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

     

    김 변호사는 자폐인사랑협회 초대 회장을 맡은 이후 15년간 계속 회장직을 맡으며 매년 전국의 자폐인 가족 1000여명을 모아 '자폐인 사랑 캠프'를 개최하는 등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사업들을 펼쳤다. 특히 그는 협회 회장이자 법조인으로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협회를 만들 무렵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발달장애인법에 관심있는 분들을 모시고 법 제정을 위한 연구와 토론을 계속하고, 법제정추진연대 공동대표가 되어 시위와 삭발 투쟁에도 힘을 보탰지만 입법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이 터졌어요. 이에 '염전노예 사건은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사안이고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몇 년간 잠자고 있는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취지의 칼럼을 썼습니다. 이후 정부와 언론, 정치권의 관심 속에서 2014년 5월 20일, 힘을 합친 지 약 10년 만에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습니다."

     

    ‘자폐인사랑협회’ 창립

     발달장애인법 제정 이끌어

     

    김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뚜렷이 하며 법조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공개변론이 전국에 생중계된 '이주여성 아동 약취유인 사건'의 국선변호와 민사사건 중 첫 공개변론 사건인 키코(KIKO) 사건을 대리했다.

     

    "2013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외이송약취 형사사건 변론을 열고 사법부 사상 최초로 재판을 방송으로 생중계 했어요. 피고인은 베트남 국적 여성으로, 한국인 남편에게 학대 받다가 참지 못하고 당시 13개월이던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가버린 사건이었지요. 저는 당시 '미성년자약취죄는 미성년자 본인의 이익이 침해됐을 때 인정되는 것으로, 아이는 어머니와 외가의 보호를 계속 받고 있으므로 약취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다행히 무죄를 받아냈지요. 같은 해 7월에는 키코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맡아 중소기업 측을 대리했습니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재앙적 손실을 봤지만 은행은 거액의 이익을 챙겼다. 은행은 불완전판매를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불공정 거래행위가 아니라고 확정 판결을 내렸는데,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형사와 민사 모두에서 1호 생중계사건에 직접 관여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 맞춤형 보호장치로

     ‘신탁제도’에 주목

     

    법조계에서 꾸준히 무료 법률상담과 국선변호 등을 계속해 온 그는 2015년 헌법재판소 모범 국선대리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대한변협 부협회장, 대법원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한법재판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다방면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2017년부터 1년간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현재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검찰개혁에 대해 "과연 기본에 충실하였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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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개혁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검찰이 잘못했다고 해서 그 기능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역사적으로 인권옹호의 측면에서 경찰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 온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원칙적으로 수사권을 경찰에 주되 이를 적절히 견제하고 통제할 장치가 있어야 마땅하고, 그것이 (검찰의) 수사지휘라고 생각합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살아있는 권력에 보다 엄격하게 운영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고, 특히 개혁을 함에 있어서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재산 등으로 

    삶의 질 높일 수 있는 방안 고심

     

    최근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 직함을 내려놓고 소속 변호사로 돌아간 김 변호사는 변호사로서도, 자폐인사랑협회장이나 장애인단체총연맹의 공동대표로서도, 보다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5~6년 전부터 발달장애인들의 맞춤형 보호 장치로 신탁제도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 제도를 활용해 '장애인 특별수요신탁'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했다.


    "현재 성년후견제도는 보호를 받는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의사는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발달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의 경우 부모 등의 재산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특히 내용을 잘 아는 재산 공여자인 부모 등의 의사가 구체적인 계약을 통해 소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자폐인사랑협회에서 이러한 장애인 특별수요신탁 시범 사업을 3년여 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시범 사업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제도 도입을 이뤄낼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다른 법률과의 관계 조율을 위한 연구와 검토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발달장애인법 제정 때와 마찬가지로 이 길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 되겠지만, 차근차근 이뤄나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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