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뉴스

    연구논단

    헌법재판소의 미니멀리즘

    전상현 교수 (서울대 로스쿨)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72793.jpg

    Ⅰ. 위헌심사에서의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일정한 미술 사조(思潮)를 의미하는 용어였으나 오늘날에는 단순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이고 있다. 카스 선스틴(Cass R. Sunstein)은 미국연방대법원의 위헌심사(judicial review)에서 발견되는 일정한 태도 또는 경향을 미니멀리즘으로 규정하면서,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판결이 여러 장점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위헌심사에서의 미니멀리즘(judicial minimalism)이란 가급적이면 판단의 범위를 좁혀 당해사건에 관련된 부분만 판단하고, 당해사건의 해결에 필요한 만큼만 이유를 제시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미니멀리즘 판결은, 일반적인 법리나 근본적인 쟁점의 해결보다는 당해사건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안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가능하면 "좁게(narrow) 그리고 얕게(shallow)" 판단한다. 선스틴은 미니멀리즘 판결이 법원의 심리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재판관들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을 높이며, 잘못된 판결 선고의 가능성 및 잘못된 판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중요한 문제들을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민주적인 토의과정을 통해 결정할 수 있게 하여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헌법재판소의 미니멀리즘', 저스티스 통권 제185호(2021.8.) 5~37면을 참고하길 바란다.


    Ⅱ. 헌법재판소 결정들에 나타난 미니멀리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미니멀리즘 경향은 심판대상의 축소와 헌법불합치주문의 선호로 나타난다.

     

    1. 심판대상의 축소
    (1) "지방선거"의 소음은 특별한가?

    헌법재판소는 선거운동에서 확성기사용으로 발생하는 소음을 국가가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 것이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하면서(헌법불합치), 위헌결정의 범위를 "지방선거에 관한 부분"으로만 제한했다(헌재 2019. 12. 27. 2018헌마730). 당해사건에서 문제된 선거가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결과 위헌결정(헌법불합치결정)의 효력은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는 미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위 결정에서 선례로 지목되어 폐기된 2008년의 합헌결정에서는 당해사건이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관한 것이었지만 심판의 대상을 "지방선거에 관한 부분"으로 제한하지는 않았었다.

    (2) 한 번에 하나씩?

    공직선거의 예비후보자로 등록하였다가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이 무소속 또는 다른 정당소속으로 출마를 포기하고 최종후보자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 당내경선(黨內競選) 탈락자와는 달리 예비후보자등록기탁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하였는데, 예비후보자기탁금반환조항 중 "지역구국회의원선거" 부분에 대해서만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다(헌재 2018. 1. 25. 2016헌마541). 청구인이 지역구국회의원선거의 예비후보였다는 이유에서다. 그 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예비후보로 참여했던 자들이 당해사건의 당사자인 사건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에 관한 부분만을 심판대상으로 하여 다시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다(헌재 2020. 9. 24. 2018헌가15 등).

    (3) 규범통제인가? 당해사건의 재판인가?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100분의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체의 상근 임·직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조항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의 상근직원" 부분만을 위헌으로 결정하였고(헌재 2018. 2. 22. 2015헌바124), 지방공사와 지방공단의 상근 임·직원에 대한 '당내경선에서의 경선운동' 금지에 대해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시설관리공단의 상근직원" 부분만 위헌으로 결정하였다(헌재 2021. 4. 29. 2019헌가11). 모두 당해사건의 피고인이 속한 기업체 또는 지방공단으로만 심판대상을 좁혔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철도공사의 직원"을 제외한 수많은 정부투자기관 직원들, "광주광역시 광산구 시설관리공단의 직원"을 제외한 수많은 지방공사와 지방공단의 직원들은 여전히 선거운동이나 경선운동이 금지되고 있다.

    (4) "조산사"에 의한 낙태와 "의사"에 의한 낙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 2012년 결정에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가(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2019년에 결정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결정(헌법불합치)하였다(헌재 2019. 4. 11. 2017헌바127). 업무상낙태죄조항에 관하여는, 2012년 결정에서는 "조산사" 부분으로 심판대상을 제한했었고, 2019년 결정에서는 "의사" 부분에 대해서만 위헌결정하였다. 자기낙태죄조항이 임신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약종상에 의한 업무상낙태는 위헌결정에서 제외되어 여전히 처벌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2. 헌법불합치 주문의 선호

    헌법불합치결정은 위헌으로 선언된 법률조항의 효력을 유지하여 위헌결정이 법질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위헌법률의 제거를 헌법재판소 스스로 하지 않고 국회의 입법에 미룬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주문을 선택하는 빈도는 최근 들어 매우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최근 3년 동안을 놓고 보면, 단순위헌결정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의 비율이 무려 90%에 육박한다. 헌법불합치결정 중에서도 "계속적용"의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은데, 계속적용 헌법불합치는 위헌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법질서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미니멀리즘 성격이 뚜렷하다.


    Ⅲ. 헌법재판소의 미니멀리즘에 나타난 문제점
    1. 위헌심사기능의 축소

    미국연방대법원의 위헌심사권은 헌법에 명시적인 근거가 없어 그 정당성 또는 범위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반면,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는 헌법이 명시적인 규정을 통해 직접 헌법재판소에 부여한 권한이다. 또한 미국의 법원에서 재판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당해사건의 해결이고 위헌심사는 당해사건 해결을 위한 부수적 판단이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는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를 직접 심판대상으로 하는 독자적인 심판절차로서, 단순히 당해사건의 해결 차원을 넘어 법률의 일반적인 효력을 판단하는 작용이다. 헌법이 법원(제5장)과 별도의 장(제6장)에서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법원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헌법재판소를 구성하여 별개의 심판절차에서 고유한 심판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한 이유이다. 심판대상의 축소가 당해사건의 해결에만 기능할 정도까지 진행된다면, 이제 법률의 위헌심사는 규범통제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사건의 부수적인 중간재판 수준으로 전락한다.

    2. 헌법질서의 통일성 저해와 헌법의 규범력 약화

    심판대상의 무분별한 축소는 법질서에서 한꺼번에 제거되었어야 할 위헌법률이 당해사건의 사실관계라는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그 중 일부는 위헌결정으로 무효가 되고, 다른 일부는 위헌성의 확인에도 불구하고 유효하게 존속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헌법질서의 통일적 실현을 저해하고, 헌법의 규범력이 그만큼 관철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또한 단순위헌결정을 통한 위헌성의 제거가 얼마든지 가능한 법률조항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위헌성을 제거하지 않고 입법자의 개선입법을 통해서만 위헌성이 제거되도록 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은 위헌성이 확인된 법률의 효력을 장기간 불확정한 상태에 둘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헌법의 규범력을 약화시킨다.

    3. 무엇을 위한 미니멀리즘인가?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은 축소하면서도 정작 위헌 여부의 판단에서는 법률조항 전반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쟁점들을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심리부담의 경감이나 오류의 방지와 같은 미니멀리즘 결정의 장점을 기대하기 어렵고, 심판대상을 축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한다.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에 의한 처벌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형벌조항의 계속적용을 명하는 것은 그 법률조항이 소급해서 효력을 상실할 경우 발생할 법질서에 대한 충격을 우려해서지만, 정작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이런 우려가 무색하게도 아무런 입법조치 없이 입법기한을 도과함으로써 그 형벌조항들을 소급해서 무효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또한 법원은 계속적용과 적용중지를 막론하고 형벌조항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결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위헌결정으로 취급한다. 형벌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은 법원의 재판을 통한 집행단계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결정이 되고 만 것이다.


    Ⅳ. 결론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의 축소와 헌법불합치결정을 통해 헌법이 자신에게 부여한 위헌심사의 권한을 스스로 축소하고 있다. 위헌심사를 통해 헌법의 규범력을 실현하고 헌법질서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인 동시에 책무이다.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의 축소와 헌법불합치결정의 선호라는, 최근의 미니멀리즘 경향이 과연 헌법이 부여한 위헌심사권한의 적정한 행사에 부합하는 태도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상현 교수 (서울대 로스쿨)

     


    마세라티

    리걸북스

    더보기

    리걸에듀

    더보기

    리걸인사이트 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