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두발자전거를 타기 위해 미리 세발자전거로 안전하게 연습을 합니다. '세발자전거'라는 단체 이름에는 아동보호시설에서 퇴소하는 청소년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온전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로스쿨 재학시절 보호종료(자립준비) 아동·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봉사단체 '세발자전거'를 만들고 8년째 꾸준히 프로보노 활동을 이어온 청년변호사가 있다. 정성환(38·변호사시험 5회·사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로스쿨 2학년 때 보호종료 아동들의 사례를 접하게 됐습니다. 보호조치가 끝나 시설을 나온 이들이 정부의 지원 정책과 복지 제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복잡한 신청방법으로 인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로스쿨 동기인 심대철(34·5회)·고주은(35·5회)·함석헌(37·5회) 변호사와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학생 신분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정부 지원 정책 내용과 신청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때마침 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인권 활동 프로그램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동기들과 팀을 꾸려 2014년 공모전에 참여한 것이 세발자전거의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아동보호시설 찾아가 ‘보호종료’ 후
생활방법 등 교육
그렇게 시작된 세발자전거는 전국 각지의 아동보호시설을 찾아 부지런히 달렸다. '보호종료 청소년들의 주거·경제·학업 및 노동의 자립'을 목표로 임대차 계약 방법, 자립정착금 수급 및 관리 방법, 대학 진학 및 장학금 지원 신청 방법, 표준 근로계약서 작성법 등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보호종료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을 교육해나갔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교육이 끝난 후에도 이들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멘토 역할을 했다.
그 결과 값진 성과를 잇따라 거뒀다. 이듬해 동천 공모전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6년 세발자전거 프로그램이 한양대 로스쿨 교과과정으로 채택된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공익활동을 만들고 싶다는 정 변호사와 동기들의 바램이 이뤄진 셈이다. 현재 세발자전거는 매 학기 리걸클리닉 수업을 듣는 학생 3명이 강사가 돼 자립준비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하는 형태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정 변호사는 2016년 로스쿨 졸업과 함께 세종에 입사한 뒤에도 세발자전거 활동을 이어갔다. 리걸클리닉 수업을 신청한 후배 로스쿨생들에게 강의안 개발 등을 지원하고, 교육이 필요한 아동복지시설과 학생들을 연결해줬다. 과거 세발자전거 교육을 받았거나 교육을 신청하며 연이 닿게 된 아동복지시설이 법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세발자전거는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1월 세종이 설립한 공익사단법인 나눔과이음이 한양대 로스쿨 리걸클리닉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함께 보호종료 청소년들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정 변호사가 두 기관 사이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사회적응 돕기 위해
법조인과의 멘토링도 적극 주선
"코로나19로 아동복지시설에 방문하는 것이 2년가량 중단됐습니다. 세발자전거 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다행히 두 기관이 협력하기로 하면서 예산과 전문인력이 보충됐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비대면 교육을 늘릴 수 있게 됐습니다. 보호종료 아동의 사회적응을 돕기 위한 법조인과의 멘토링, 보호종료 아동의 인권 보호를 위한 연구·입법 활동 등의 새로운 활동 영역도 개척하려 합니다."
현행 아동복지법 제16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보호조치 중인 보호대상아동이 만 18세가 됐거나 보호 목적이 달성됐다고 인정되면 보호조치를 종료하거나 아동을 복지시설에서 내보내 독립시켜야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보호시설을 떠나 자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사례가 속속 드러나며 보호종료 연령을 높여 청소년들의 자립 준비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지난해 법이 개정돼 오는 6월부터 청소년이 원하는 경우 만 25세까지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보호종료 청소년들이 보호시설 퇴소 이후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세발자전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배포해온 자립카드.
정 변호사는 "세발자전거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1981년부터 유지된 퇴소연령(만 18세)이 큰 문제라 생각했는데, 늦게나마 법이 개정돼 기쁘다"면서 "이제는 보호종료 아동이 신청을 해야만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식 복지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수도권의 사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지방에 있는 열악한 아동복지시설이나 그룹홈, 위탁가정에 있는 아동들은 여전히 정부나 지자체의 자립지원 제도를 모른 채 힘들게 자립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택권이란 기본적으로 신청권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됐다는 전제 하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는 신청주의에 입각한 복지제도 제공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발자전거도 아동복지시설에 국한했던 교육 대상을 그룹홈과 위탁가정으로 확대하려 합니다."
그는 후배 변호사들이 공익전담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프로보노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몇 년 전까지 프로보노 활동 사실을 회사에 숨기고 개인 연차를 사용해 지방에 내려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회사에 프로보노 활동을 한다는 점을 공개한 이후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셔서 '내가 잘못 생각했었구나'하고 반성했습니다. 저마다 관심이 있는 공익 분야는 다르겠지만, 본인이 관심이 있는 공익 분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변호사 경력이 쌓이는 시간만큼 프로보노 활동을 통한 사회적 기여분도 차곡차곡 쌓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에 세발자전거 활동이 8년 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묵묵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