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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2)

    1부 소묘 (素描) ① 잔뼈가 굵어지는 시절 Ⅱ

    박솔잎 기자 soliping@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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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어린 닭 두 마리…악취 나는 거액 수표
     

     

    초임 검사 시절, 대구지검에서 겪은 뇌물 관련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본다.

    첫 번째는 뇌물을 받은 사례다.

    어느 날 중년의 아낙네가 등에 한 아이를 업고, 한 손에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다른 손에는 닭 두 마리가 묶인 채 들려있었다. 알고 보니, 이 여인은 내가 교통사고 피의자로 구속기소한 운전사의 부인이었다. 남편 구속 후 수소문해보니 신속한 재판을 위해 검사의 빠른 기소를 부탁해야하는데, 부탁도 전에 이미 법원에 사건을 넘겨줬으니 참 고마운 일이라 찾아왔다고 했다.

    피의자가 나와 같은 파월 근무 경력이 있는 육군 장교였던지라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남편을 석방해 준 것도 아닌데, 고마운 사람으로 여겨 찾아왔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신속히 사건에 맞는 결론을 내는 건 검사의 당연한 직무 아닌가. 이를 고맙다며 경북 청도군에서부터 내 집까지 물어물어 찾아온 기막힌 사연!

    이 닭 두 마리는 법률상 뇌물이 분명하지만 나는 이 일을 참 잘한 일이라고 지금껏 생각한다. 만약 받지 않았더라면 이 여인은 그 닭을 들고, 애들을 업고 걸린 채 다시 집으로 그 먼 길을 가야 했을 테니 말이다.

    “물순래이물거(物順來而勿拒)”


    일찍이 자허원군(紫虛元君)께서도 순하게 오는 재물은 거절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 이처럼 순하게 오는 재물이 어디 있겠는가.

     

    남편 빨리 기소한 게 고맙다고
    아이 업고 닭 두 마리 들고 온
    교통사고를 낸 피의자의 아내

    그 마음 차마 물리치지 못해


    두 번째는 뇌물을 거절한 사례다.

    대구지검 정사로 기록돼 있는 이 사건의 정확한 내용이나 수사 경위 등은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지만, 내 뇌리에 분명히 각인된 내용은 있다.

    당시 내가 직접 입건한 피의자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가 있는, 우리나라 유명 재벌가의 집안 어른이라 할 만한 사람이다. 수사 과정에서 그 집안과 오랜 인연을 이어오며 거래했던 서울의 명망 있는 인사를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흔쾌히 출두했던 그는 조사과정에서 범죄 사실이 드러나, 대구에서 바로 구속됐다.

    당시에는 형사소송법상 구속적부심사제도가 있어 그는 며칠 뒤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 석방되던 날, 그는 아무도 없는 나의 집을 찾아와 케이크 상자를 놓고 서울로 가버렸다. 퇴근 후 포장을 뜯어보니 성명 석 자가 적힌 봉투 속에 수표 1매가 있었다. 당시 검사 한 달 봉급의 몇 배가 되는 자기앞수표였다. 큰 금액에 놀랐을 뿐 아니라 구속된 공범의 구속 기간이 며칠 남지 않은 사건이라 더욱 당황했다.

    더구나 그는 나의 소환조사에 응했다가 덜컥 구속이 됐던 탓에, 다시 소환해도 검찰에 자진 출두할 것 같진 않았다. 공범 구속 기간 연장 만기가 코앞인 상황에서 수표를 돌려주지 않는 한, 뇌물을 받은 채 결정문을 써 처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고심 끝에 서울행 통일호 열차표를 샀다. 서울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위 재벌가 어른에 대한 조사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출장 절차를 밟은 후 수표를 놓고 간 피의자에게 연락해 서울에서 은밀하게 만나자고 제의했다. 당시 서울 법원과 검찰청의 청사가 있던 서소문의 ‘배재다방’에서 만난 그는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객지에서 구속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석방 당시 주머니에 수표 한 장만 달랑 있어 부득이 그것만 넣어 드렸다는 것이다. 본인의 불찰로 여기고 용서해 달라며. 이번엔 섭섭지 않을 만큼 성의를 마련했다며 안주머니에서 돈 봉투 하나를 슬며시 건넸다.

    나는 똑바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대화 내용이다.

    “내 나이가 몇 살이나 되어 보입니까?”
    “30초반 정도 되어 보입니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세상을 살 것 같소?”
    “검사님께서야 물론 70 넘어 장수하시겠지요.”
    “이놈아! 내 인생 40년을 네가 가져온 이 돈과 바꾸자는 것이냐?”

    나는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그가 대구에 놓고 간 봉투를 내던지고 돌아섰다.

    그러자 그는 급히 내게 와 “이번 성의는 적은 것이 아닙니다. 받아 두시지요”라고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체도 않고 급히 그 다방을 나왔다.

    그길로 위 어른께서 입원해 있던 병실을 찾았다. 이미 방문을 통보해뒀던 터라, 병실 탁자에는 다과와 음료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 그 노인께서는 불편한 몸을 추슬러 가며 예의를 지키려고 애썼다.

    약 3시간에 걸쳐 그 노인과 문답을 진행하며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그가 진술한 취지는 대강 다음과 같다.

    ‘오래전부터 고미술품에 관심이 있어 이를 수집해왔는데,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그간 모아뒀던 물건들을 모두 모 대학교에 기증했다. 이번에 문제 된 이 물건은 과거에 보던 것과는 달리 모양, 색감 등이 전혀 달라 매우 특이하다고 판단했다. 골동품은 처음 감별하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이라, 높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더라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물건을 보는 순간 이것만은 죽는 날까지 내 곁에 둬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요구하는 대로 값을 치렀다. 아무개가 몇천 만원에 이 물건을 샀다고 하면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사지 않았더라면, 이미 일본 같은 외국에 헐값에 팔려 나갔을 것이다.’

    조사가 끝날 즈음, 향후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묻는 그 노인에게 나는 정중히 “현재 압수돼 있으나 판결은 나지 않았으므로 지금까지의 법률상 소유자는 노장(老長)님입니다. 그 처분은 당사자의 자유의사와 판결의 내용에 따라 결정될 것이므로 그것은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노인께서는 “검사님 말씀대로라면 내가 주인이 틀림없으나 나는 이미 주인이 아닌 것 같소. 나와는 인연이 다하였으니 이 물건을 나라에 기증하리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소유권 포기서를 내밀었다.

    “검사님의 추궁을 받는 과정에서 내가 이미 짐작했습니다. 그 물건에 이제 미련은 없소. 도장을 찍어 드리리다.”

    그 노인은 껄껄 웃으며 도장을 찍은 뒤 내게 말했다.

    “나도 보통 사람은 아닌데, 송 검사님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하오. 이런 포기서까지 미리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오. 그런데 내가 준비한 그 음료수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어찌 한 입도 대지 않소? 내가 검사님을 서울역으로 잘 모셔다 드리도록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해 두었으니 이 병원 정문에 그 차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 차를 타고 가십시오.”

    정중히 그 노인의 쾌유를 빈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병실을 나섰으나, 대기하던 차는 기어이 사양한 채 택시를 잡아타고 만 29세의 어린 검사는 그 병원을 떠났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간의 정리가 무엇인지, 받아야 할 호의와 받지 않아야 할 호의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했던 좁쌀만 한 마음가짐의 옹졸한 검사! 내 철없는 행동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불편한 몸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우리나라 고미술계의 선각자! 이들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화재보호법위반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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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167호 청자 인물형 주전자

     

    소유권이 포기된 그 물건은 재판이 끝나고,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됐다. 팔공산 기슭에서 출토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희귀한 모습의 청자, 국보 제167호 ‘청자 인물형 주전자’다. 판결 확정 후 1974년 7월 9일 국보로 지정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 사건이 처리되던 날, 나의 보고를 받던 차장검사가 내게 한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내가 며칠 전 돈 봉투를 되돌려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검사장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차장검사 왈 “송 검사 의견이니 그 뜻을 존중해 결정하는 게 좋겠으나,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므로 이를 참작해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소?”

    듣고 보니 그의 의견이 과연 옳았다. 범죄 성립 여부에만 매달려 가부를 가리려 하는 초임 검사의 눈에는 오랜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가 전혀 없었다. 그날 검사장실에 불려가 그 역시 전후 사정을 나보다 더 소상히 알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무서운 세상이었다.

      

    고미술계 대부로 불리던 피의자
    두 번의 봉투, 매몰차게 거부
    사건 보고하니 이미 알고 있어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아

     

    만일 돈 봉투를 받은 채 사건을 처리했다면 상사들은 나를 어떤 눈으로 보았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상사를 속일 수 있었더라도 차마 속이지 못한다는 뜻의 가기불인(可欺不忍)은 내 마음이었고, 상사를 속이려 해 보아도 결코 속일 수는 없다는 뜻의 욕기불기(欲欺不欺)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두 번씩이나 뇌물을 주려 했던 고미술계의 대부라 할 만한 그는 그때로부터 10년 이상 흐른 후, 내가 서울지검 특수3부장으로 재임할 때 그 부 소속 눈 밝은 검사에게 같은 죄명으로 걸려 오랫동안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런 것을 악연이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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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인규 차장검사 · 고 조태형 검사장

     

    내가 대구지검 검사로 발령받을 당시 우리나라 검사의 총 정원은 정확히 300명이었고, 내가 모신 검사장은 고 조태형(趙台衡) 씨였다. 인자하신 풍모의 검사장님 영전에 합장하여 경의를 표한다.


    본보는 72년 만의 베를리너판으로의 판형 변경을 기념해 송 전 장관이 2015년 써두었던 회고록을 오늘자 신문부터 매주 1회 연재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검사와 법조인들에게 길잡이가 되길 소망한다. 회고록은 총 18편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리=박솔잎 기자  soli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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