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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만나는 법] ‘수말스러운 프론티어’ 양향자 의원

    ‘사법체계 재설계’ 입법, 졸속으로 통과 시킬 수 없어 기권

    김도언 시인(소설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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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고 출신 최초로 세계 초일류기업이라는 삼성전자 임원의 자리에 오른 양향자 의원(광주 서구을)의 입지전은 달리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 얘길 직접 들을 생각에 제법 설렜는데, 인터뷰를 서너 시간 앞두고 의원실에서 돌연 양 의원이 몸이 안 좋아서 인터뷰를 미루거나 시간을 대폭 줄이면 좋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런 제약을 갖고 그를 만났는데 과연 목소리가 안쓰러울 만큼 푹 잠겨 있었다.

    양 의원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책 '꿈 너머 꿈을 향해 날자, 향자'를 읽고 이미 아는 정보였지만 그는 전남 화순 시골 출신이다. 200명가량이 살던 빈한한 촌락이었다. 한 사람이 써내려간 연혁을 해석할 때 그 기원을 먼저 읽어보는 내 나름의 루틴에 따라 일단 화순에서의 성장 시절이 어땠는지, 양향자는 어떤 소녀였는지 그 각별한 삶의 맹아기를 먼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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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향자 의원 약력 ]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회사를 다니면서 한국디지털대 인문학 학사, 성균관대 대학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를 받았다. 2014년 1월부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팀 상무이사로 근무하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 등을 역임한 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호기심이 무척 강했어요. 냇물에 얼음이 얼면 얼마나 두껍게 얼었는지 궁금한 거예요. 그러면 동네 아이들 불러 모아 제일 먼저 건너가다 얼음이 깨지는 애가 대장하는 거다, 이러고선 항상 내가 제일 먼저 건너갔어요. 그러면서 몇 번을 물에 빠져도 그런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또 제일 먼저 얼음장 위에 올라갔어요. 집에선 늘 일에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와 동생들 챙기고 어른들 일 나가시면 집에 남겨진 동네 아이들까지도 거뒀어요. 그래서 동네 어른들로부터 수말스러운 애라고, 그게 전라도 사투리로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런 얘길 많이 들었죠."


    낭중지추라고 그에겐 어려서부터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리더십이 장착되었던가 보다. 고1때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와 함께 가장 역할을 나누게 된 양 의원은 공부도 잘하고 집안일도 나무랄 데 없는 들보 같은 존재였다. 그 부지런함과 영민함은 아무래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고. 집안 형편상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 그에게 일어난 일, 아니 그가 치열하게 치러내고 기어이 이뤄낸 일은 이미 여러 매체에 소개된 대로 거의 영화나 드라마의 대본에나 견줄 만치 버라이어티한 것이다.

    삼성전자에 입사하고 승진 자격을 얻기 위해 계속 학력을 업그레이드해온 양 의원이 결혼하고(1990년) 아이를 낳자 회사는 E-3(대졸 사원 직급) 승진심사 면접에서 그를 석연찮은 이유로 떨어뜨린다. 사측의 처사가 뜻하는 메시지는 자명했다. 어렵게 두 번째로 주어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면접 자리에서 양향자는 면접관들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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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오늘 여러분께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닙니다. 만약 아이를 낳고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이렇게 승진 시험에서 누락시키는 회사라면 제가 먼저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전 이런 회사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녹음기 틀어놓고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했다는 그 발언은 고루한 편견과 타성에 갇힌 회사에 던지는, 아니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의 세계에 던지는 충심의 일갈, 진심의 절규였다. 결국 승진심사를 통과한 양 의원은 이후 자신과 같은 처지의 후배들이 차별을 받는, 그러니까 실력과 열정은 있지만 성별과 학력 때문에 정당한 평가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기꺼이 프론티어의 역할을 자처한다. 그리고 비범한 노력 끝에 2014년 삼성전자 최초, 고졸 출신 여성 임원(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의 자리에 오른다.

    정치에 입문한 건 영입인재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낙점 받고 삼고초려 형식의 영입제안에 응했던 2016년. 당시 남편은 실업 상태였고 가족 중 환자가 있는 등 집안 분위기가 시난고난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말렸지만 양 의원은 '소명'에 응하는 마음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단다. 그 소명은 당시 다음과 같은 입당 인사말에 수렴되어 있다.

    "학벌의 유리천장, 여성의 유리천장, 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쳐 노력했지만, 청년들에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 우리 사회가 직장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출산이 출세를 막고, 육아가 경력 단절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꿀 책임이 정치에게 있다."

    이런 소신을 갖고 정계에 입문한 직후 바로 치른 20대 국회의원 선거(광주 서구을)에도 나서는데, 정계 거물인 천정배 의원에게 패해 고배를 든다. 하지만 뚝심을 발휘해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는 기염을 토하고 다시 나선 21대 총선에선 같은 상대로 리턴매치를 치러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국회에 입성한다. 득표율이 무려 75.83퍼센트. 

     

    냇물 얼음 얼마나 두껍게 얼었는지
    제일 먼저 건너던 호기심 많던 소녀

    삼성 입사 후 계속 학력 업그레이드
    정치 입문은 ‘소명’에 응하는 마음

    유리천장을 깨려고 노력했지만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기는 싫어

    소신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면
    여야·당파 떠나 맡을 수 있어


    현재, 양향자 위원은 초선의 무소속 의원이다. 그런데 자의반타의반 연일 언론과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슈메이커가 됐다. 자신 명의로 정권 교체 전후 쟁점이 됐던 소위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법안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내고 기표에서 기권을 하면서부터다. 더욱이 그 직전에 민주당은 해당 안건을 상정하기 위한 ‘사보임’을 실행, 기재위에 있던 양 의원을 법사위로 옮기는 편법을 감행했기에 내상과 충격이 더 컸다. 그 내막을 그는 야무진 말투로 설명한다.

    "저는 글로벌 기업의 엔지니어 출신이잖아요. 하나의 제품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오류가능성을 '0'으로 만들기 위한 무한반복 시뮬레이션을 해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70년 간 이어온 사법체계의 근간을 재설계하는 이런 중차대한 입법을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명백한 상황에서 졸속으로 통과시킬 수는 없었어요. 또한 첨예하게 대립할수록 대화와 타협을 통해 법안을 완성해야만 검찰개혁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국민적 합의 없이, 절차적 당위성 없이 졸속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기권'을 한 거예요."

    이 일이 모멘텀이 되어 그는 최근 여당으로부터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의 출신지이자 지역구 주민들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 집권당 의원에서 무소속 의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는데 불안감 같은 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문을 나무라듯 명품 같은 답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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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감은 직을 원하거나 탐할 때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저에겐 업이 있잖아요. 직을 특별히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불안감 같은 건 전혀 없어요."

    그의 속내를 조금 더 파보고 싶어 다시 물었다. 혹여 국회 차원 특위 같은 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에서 아예 공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그러자 이번에도 주저 없는 답을 내놨다.

    "그 일이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달라질 텐데요. 중요한 것은 여야 당파를 떠나서 소신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정파적 이익이나 이해를 따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자리라면요."

    실제로 양 의원은 공직을 수행한 적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직(차관급)을 맡았는데, 매 기수마다 빼놓지 않고 원장 특강을 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고 호응도 좋았다. 직에 욕심은 없지만 주어지면 진심을 다하는 것, 이 역시 그에게 장착된 비범한 달란트로 보였다.

    인터뷰 도중 양 의원은 도움을 주고받은 지인과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울컥하기도 했는데, 그 옛날 지하수를 끌어올리던 작두펌프가 그렇듯 고여 있던 서사가 마중물격인 새 서사를 만나 펌핑이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영화로 치면 너무나도 다채로운 시놉시스로 배열하고도 남을 서사를 써나가고 있는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폭탄을 던지는 개혁가이자 프론티어다. 그의 지성과 열정은 모두가 한국정치라는 회로판에 그렇게 쓰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인터뷰 중 그의 성정을 알려주는 가장 강렬했던 한 마디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맺겠다.

    "만약 내가 1980년 5월에 광주에 있었다면 아마 나는 앞장섰다가 죽었을 거예요."

    1980년에 그는 다행히 화순 이양중학교에 다니는 열넷의 중1 소녀였고 얼음장에 맨먼저 올라서는 그 마을의 '수말스러운' 지킴이였다. 인터뷰는 양 의원의 자의에 따라 예정 시간보다 두 배 이상 진행됐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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