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뉴스

    사설

    [Dr.K의 와인여정] ③ 며느리 와인 ‘피숑 라랑드(Pichon Lalande)’

    섬세한 맛과 향 …그 내면에는 강인함이 느껴져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2022_wine.jpg

     

    2018년 여름. 영국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던 아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여자친구 A의 부모가 여름 휴가 기간에 우리 가족을 포르투갈의 휴양지로 초대해 함께 지내고 싶다는 전언이었다. A는 아들의 동급생이었는데 부모가 동구권 출신으로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모범생이었다.

      

    A 부모의 초대를 받고 긴장했다. 만의 하나 사돈이 될지도 모르는 분들, 혹시나 훗날 며느리가 될지도 모를 A의 가족을 처음 만나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일. 무슨 선물을 준비하고 어떻게 예의를 갖추어야 할지 숙제였다. 고민 끝에 A를 가장 잘 표현하고 동시에 나의 의중을 담은 와인을 선물로 가져가기로 했다. 


    그 몇 달 전 아들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아들의 기숙사 방에서 우연히 A가 아들한테 보낸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랬다. 깨알같은 글씨로 정성들여 곱게 쓴 편지였다. 자기가 부족해서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하고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 말로 전하기가 두려워 글로 쓴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순수함과 아련함이 묻어나는 편지였다.

     

    179853_1.gif

     
    심사숙고 끝에 A를 위한 와인을 결정했다. 2003년 산(A 또한 아들과 같은 2003년 생이었다) 피숑 롱그빌 꽁떼스 드 라랑드(Pichon Longueville Comtesse de Lalande, 간단히 줄여 Pichon Lalande라 부른다. 사진 참조)였다. 이 와인을 아는 분이라면 내 심정을 한순간에 간파하였으리라!


    이 와인 케이스 세개를 바로 주문하였다. 두개는 후일을 위하여 내가 보관하고 하나는 포르투갈에 갈 때 A의 부모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다. 지불한 가격은 한 병당 89파운드. 

     

    179853_2.gif
    샤또 피숑 롱그빌 꽁떼스 드 라랑드 (Chateau Pichon Longueville Comtesse de Lalande)의 창시자 꽁떼스 테레즈 드 라 랑드(Comtesse Therese de Lalande) 백 작부인의 초상화.

     

    여기서 잠깐 피숑 라랑드(Pichon Lalande)의 역사를 보자. 정확히 330년 전인 1692년 프랑스 보르도 뽀이약 지방의 와인 거상 겸 지주였던 피에르 드 로잔(Pierre de Rauzan)이 죽자 그의 딸 테레즈(Therese)가 이 땅을 물려받고 2년 후 자크 드 피숑 롱그빌(Jacques de Pichon Longueville) 백작과 결혼하여 라랑드 백작부인(Comtesse de Lalande)이 되고 와인사업을 시작, 당시 보르도 와인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여인이 되었다. 그녀가 죽자 그녀의 며느리(Germaine de Lajus)에게 상속되고, 그 후에 손자며느리(Marie Branda de Terrefort)에게 다시 상속되었다. 3대에 걸쳐 며느리들에 의해 운영된 것이다. 그 후에도 1925년 새로운 주인에게 팔릴 때까지 200년 가까이 그 가문의 딸들이 운영했고 새 주인에게 넘어간 후에도 새 주인 가문의 여인들이 운영했다. 아마도 와인 역사상 며느리/여인의 이미지가 가장 강한 와인이리라. 주인이 바뀐 지 오래지만 이 샤또의 가장 깊숙한 응접실에는 테레즈의 초상화가 걸려있다(사진 참조). 이 샤또의 역사상 최고의 와인이라 평가받는 1982년 빈티지 와인도 당시 가문의 여주인 메이 엘리안느 드 렌쿠에사잉(May-Eliane de Lencquesaing)의 작품이다.


    피숑 라랑드 와인의 특성은 어떠한가? 우선 맛과 향이 여성적이다. 원래 메를로(Merlot) 포도의 함량이 많은 데다 여러 꽃과 과일의 향이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응축된 와인이다. 외연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확연한 여성적인 느낌인데, 그 깊은 내면에는 강한 골격이 느껴진다. 여전히 주종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약 4% 정도 들어간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품종 포도의 영향이리라. 그래서 오랜 동안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면서 지조있는 여성의 개성을 유지한다.

     
    혹자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와인으로 보르도의 마고(Margaux) 혹은 부르고뉴(Bourgogne) 와인을 떠올릴 것 같다. 나도 처음에 최종 후보로 피숑 라랑드 2003과 함께 마고, 팔머(Palmer) 2003, DRC, Chambertin (Armand Rousseau) 2003 등을 고려했다. 그러나 마고와 팔머는 여성적이기는 하나 너무 음기가 강하고, 부르고뉴 와인은 밝고 양성적인 여성성은 훌륭하나 너무 화려하고 감각적이어서 수수하고 지조있는 여성스러움과 그 이면에 숨겨진 강인함은 없다.


    나는 들뜬 마음에 아들과 함께 포르투갈로 가서 꿈 같은 1주일을 보낼 계획을 세웠다. 출발 며칠 전 아들에게 일정을 통보하려 전화를 했는데, 이게 웬 일!

     
    "아빠, 우리 (포르투갈에) 안 갈 거야. 나 A랑 헤어졌어."

     
    얼마 전 집의 셀러 한 구석에 있는 피숑 라랑드 2003 뜯지 않은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는 아들이 이런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 여름 방학에는 이 와인을 구하게 된 연유를 아들에게 설명해주면서 함께 마셔보려 한다.

     
    방금 검색해보니 이 와인의 현재 (보세) 거래 가격은 160~200파운드 정도 한다.

     


    리걸북스

    더보기

    리걸에듀

    더보기

    리걸인사이트 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