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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만나는 법] 정미숙 전국여성법무사회장… 두 손에는 법이라는 창과 배려라는 방패가

    김도언 시인(소설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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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여성법무사회(전여법) 회장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나는 대한법무사협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법무사에 대한 설명부터 찾아보았다. 다음과 같다.

    “법무사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전문가로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권리보장 전문가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법무사는 일반 국민이 생활의 현장에서 가장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법률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30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대부분 법무사의 도움을 받아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친근한 직종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인식은 접근성이 좋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종 정도의 초보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었다. 활발히 매스컴이나 방송에 나와 자신들의 전문성을 알리는 변호사에 견주면 법무사들은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라는 이미지마저 있었다.

    그런데 전체 법무사 중에서 7퍼센트 정도를 차지할 뿐인 여성법무사들을 특유의 온화한 리더십으로 이끌고 있는 이가 있다. 정미숙 회장(64)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20년 전국여성법무사회 회장에 취임을 하고 이어 올해 5월 총회에서 연임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런 특별한 조직을 이끄는 그의 성장 배경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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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여성법무사회 제9대, 제10대 회장. 1995년 법무사 자격을 취득해 법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무사 개업 전에는 법원행정처, 수원지법, 인천지법 등에서 17년간 법원공무원으로 근무했다. 2020년부터 전국여성법무사회 회장으로서 법률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 계층 지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전국여성법무사회는 ‘전문직 여성의 사회적 책임과 여성지위 향상’과 ‘여성법무사 간의 정보 공유와 법무사 업계 내 양성평등 확보’를 목표로 2004년 출범했다.
     
    “저는 수원에서 태어났어요. 2남 3녀 중 막내인데 얼굴도 안 본다는 셋째 딸이에요(웃음). 아버님은 당시 시대로 봐서는 권위적이지 않고 매우 가정적이고 다정하신 분이었어요.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으신 분이었고요. 저희 친정 오빠들도 교육자이고 그리고 저의 시댁도 교육자 집안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가풍이랄까 그런 것이 배움에는 때가 없고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양가 모두 가톨릭을 종교로 받아들였는데, 거기서는 나 자신보다는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정 회장은 법무사를 자신의 천직으로 갖게 되었을까. 현재 법무사는 법원행정처의 주관 아래 자격증 시험을 치러 매년 130명의 인원만을 선발해 자격증을 부여한다. 1차시험은 상대평가로 최종 합격자의 3배수를 뽑는데, 유사법조직역 중 1차시험이 상대평가인 직역은 변리사와 법무사뿐이다. 경쟁률이 상당히 높아서 까다로운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법무사 선발 방식이 처음부터 시험을 통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저는 법원행정처, 수원, 인천법원등에서 17년정도 일을 하면서 법률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키우며 법무사 자격증을 취득 후 1995년 법무사 사무실을 열었고 결혼하면서부터 인천을 기반으로 일을 해오고 있어요. 법원에서 계속 일을 하지 않고 법무사로 직을 바꾼 것은 민원인들을 접하면서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법원 근무 17년…전문성 키운 뒤 법무사로

    회원 수 적고 잘 알려지지 않은 단체지만
    소외계층에 실질적 도움 주는 활동 꾸준히


    2020년 5월 정미숙 회장이 처음 회장으로 추대됐을 때는 코로나가 서서히 확산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희대의 감염병은 꺾일 기세가 없이 이후 임기 내내 정 회장을 괴롭혔다. 그런 와중에도 정 회장은 회원들을 잘 추슬렀고 결속력을 다졌다. 그러곤 올해 회원들의 성원과 기대 속에 연임 회장으로 추대된 것.

    “첫 번째 회장 임기는 코로나 시국과 정확히 겹쳐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임기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비워둘 수 없는 자리인데 내가 다시 봉사를 해야겠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멀리 가보자는 생각을 갖고 연임을 수락했어요. 회장직에 있으면서 여성이라는 젠더적 특성을 살려 가사 쪽 비송 전문가로서의 역할과 법률가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조화롭게 수행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여성법무사회가 정식으로 출범한 것은 2004년이다. 이전에 법원, 검찰, 시험 등 출신에 따라 나누어져 있던 여성법무사회, 여성법무사동우회, 여성법무사시험동우회 등을 통합해 ‘전문직 여성의 사회적 책임과 여성지위 향상’과 ‘여성법무사간의 정보 공유와 법무사 업계 내 양성평등 확보’ 등을 모토로 내걸었다.

    18년 동안 전국여성법무사회는 소외 계층 지원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그 덕분에 미혼모, 한부모, 성매매피해여성, 여성가장 등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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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전여법의 특성에 대해 정회장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국여성법무사회는 회원이 많은 단체는 아니에요. 수적으로 적은 단체지요 그래서 매스컴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개의치 않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들, 소외 계층에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는 것들부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 회장의 말을 들어보니니 ‘전여법’은 적극적인 이슈파이팅을 통해 단체의 사회적 주목도와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이익집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봉사하는 데 존재의 이유를 둔 공익 단체처럼 보인다. 사실 전여법은 이미 설립 초기부터 다양한 봉사 및 공익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미혼모 및 한가족 지원사업, 탈성매매여성 및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사업, 성가복지병원 봉사활동 등이 그것이다. 작년 8월에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회장 정윤숙)와 ‘여성가장 창업자금 지원사업’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 사업의 취지와 목적이 무엇인지 물었다.

    “전국여성경제인협회는 ‘경단녀’들이 창업을 할 때 임대차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요. 우리 전여법에서는 그들이 그런 지원을 받을 때 법률적 리스크를 살펴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예컨대 상가나 점포를 구입하거나 임차를 할 때 법률적으로 안전한지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전세권 등기라든가 권리 보전 등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끔 카운슬링을 해주는 거죠. 언제나 피부에 와닿는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게는 스킨십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것에 사랑과 관심이 개입되어 있다면 스킨십은 얼마나 따뜻한 것인가. 봄볕만큼이나 아기 고양이의 솜털만큼이나 말이다. 전여법은 이런 밀착형 스킨십으로 현장에서 몸을 쓰는 봉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성가복지병원에서의 간호 보조 봉사가 그것이다.

    “우리 회원들은 성가복지병원에서 간호 보조나 간병 봉사를 하고 있어요. 2009년 저희 회 산하에 ‘봉사위원회’를 두어서 그 첫 봉사 장소를 성가복지병원으로 정했어요. 그 병원은 배숙휘 법무사님이 개인적으로 봉사를 해오던 곳인데요. 그분 추천으로 봉사 인연을 맺게 됐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저희는 총회 때 화환대신 쌀을 받아서 병원에 전하고 있기도 하고요. 성가복지병원은 가톨릭재단에서 운영하는데, 의료지원 인력이 모두 자원봉사로 이뤄져요. 인력 풀이 몇천 명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그 일원인 것이 뿌듯하죠.”

    회원들 함께 병원에서 간호 보조 등 봉사도
    딸·아내·엄마 등 다양한 역할 속 ‘배려’ 익혀
    양성평등은 ‘서로의 다름’ 인정할 때 이뤄져


    여성법무사회는 설립 취지문에서 법무사임과 동시에 여성 경영인으로 과거 우리 사회의 여성의 전문성 함양이 어려웠던 구조 속에서 열악하고 부족한 기회와 가능성의 비대칭을 이겨낸 경험들과 실력을 바탕으로 상호 정보 및 경험을 공유하여 남성 중심적 영업문화 속에서 약화된 여성 경쟁력을 강화하고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 속 여성의 기업활동을 강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그들만의 영업방식과 네트워크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미숙 회장에게서 내가 받은 인상은 감성이 풍부하고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단단한 소공녀 같은 것이었다. 요즘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딕션은 또렷하면서도 낭랑했고 매무새도 단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 관리하는 감각과 함께 상대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종 정한 기품 속에 품고 있는 겸손하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이 느껴졌는데, 그런 힘이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하던 차에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풀렸다.

    “저는 운이 좋게도 누군가의 딸로, 여동생으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그리고 장모로, 시어머니로, 할머니로 살아보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조화롭게 하는 게 무얼까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저는 '배려'라고 생각해요.”

    근년 젊은 세대에서 양성간 갈등이 첨예해진 문제의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니 정 회장은 양성평등은 서로가 ‘다름’을 성숙하게 인정할 때 이뤄지는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양성간에 일방적인 주장만 반복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눈으로 법무사의 현장에서 세상의 변화를!’ 정미숙 회장이 귀띔해준 전국여성법무사회의 캐치프레이즈다. 그것이 내 귀엔 관점과 성찰과 전망이 두루 표현된 아주 든든한 복음처럼 들렸는데, 법률이라는 창과 배려라는 방패가 그들의 손에 들려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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