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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만나는 법]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 굽은 나무처럼 마지막까지 검찰이라는 산그늘 지켜

    김도언 시인(소설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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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새 정부 첫 번째 검찰총장 후보로 마지막 순간까지 인사권자에게 고민을 안겨준 인물이라고 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가슴속에서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모종의 흥분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칠 즈음, 나는 그가 그만한 도량을 가진 재사였음을 별 거부감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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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남해 출신으로 서울 경동고와 동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3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6년 사법연수원을 제25기로 수료한 뒤, 서울지검 북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특수통이자 기획통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법무부 송무과 검사, 거창지청장, 대검찰청 정보통신과장, 대검 대변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 반부패부 선임연구관 등을 거쳤다.
    검찰 안팎의 신망이 두텁다. 검사장 승진 뒤에는 대검 공판송무부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서울북부지검장, 대구지검장 등을 거쳤다.
    2022년 9월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김후곤(57·사법연수원 25기) 전 서울고검장은 2022년 9월, 26년 6개월 동안 몸담았던 검찰을 떠나는 자리에서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를 두고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공정성을 지킬 사람이라며 이원석 검찰이 성공하여 검찰의 봄이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수완박' 법안을 비판하며 "정의로운 것은 정의롭게 끝날 것이다. 이미 그 길로 가고 있다"라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원석 총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직접 꽃다발을 들고 이임식에 참석해 자신에게 길을 내어준 선배와 뜻깊은 포옹을 하기도 했다. 그에게 먼저 더 이상 검사가 아닌 것이 실감이 나냐고 묻고는 두어 달 전에 있었던 퇴임의 소회를 들려달라고 했다.

    "제가 대구지검장으로 있을 때 검수완박이 시작됐는데 법무부에 사표를 냈어요. 그런데 수리가 되지 않은 채 정권이 바뀌었고, 인사발령을 받아 서울로 오게 됐죠. 그 와중에 대검찰청 대변인 출신이라는 빚이 있어 검수완박을 비판하는 의견을 방송에 나가 표명하기도 했는데, 그건 검사로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했어요. 총장 후보로 거명된 건 과분한 일이었고 대통령의 인사가 있은 후 조직의 안정과 효율을 위해 미련 없이 퇴임을 결정했어요."

    그는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푸른 자연의 품에서 자라다가 여덟 살 무렵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았던 부친의 결단으로 서울로 상경, 당시 이주민들의 '가나안 땅' 격이었던 상계동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1960년대부터 있었던 대규모 이농 러시의 막차를 탔던 셈이다. 기술직 하급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3남 1녀의 자녀들에게 매사 겸손하라고 침이 마르도록 말했다고. 이후 '겸손'은 차남인 그가 검사가 되어서도 평생 잊지 않은 금과옥조가 되었다.

    최고위직 검사 출신으로서 '비윤'으로 분류됐던 그에게 다소 짓궂게 검찰 출신에게 편중됐다는 현 정부의 인사에 대한 촌평부터 부탁했다.

    "검찰 내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을 검찰 요직에 배치한 건 사실인 듯해요. 그런데 청와대나 정부에 대통령이 잘 아는 인재를 데려다 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코드인사라는 말이 노무현 정부 때 나온 말인데, 문재인 정부도 그랬고 한국이든 세계 어느 나라든 코드인사를 안 하는 정부가 있을까요. 그 사람이 그 자리를 맡는 게 업무의 적절성을 볼 때 최선인가를 비판하는 게 맞죠. 소위 윤석열 사단은 약진하고 다른 쪽은 피해를 봤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원석 총장이 특수통이긴 하되 공판, 형사, 기획 업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인사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편중인사로만 보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직전 정부가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채기가 난,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검찰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현 정부 지지자든 비판자든 공히 갖는 것일 텐데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지금이 공정성과 독립성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검찰 출신 대통령이 검찰의 중립성이나 독립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가면 그건 대통령 자신이 검찰에 있을 때 피력했던 소신에 반하는 자기부정이 되니까요. 그러면 검찰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가 국민 신뢰를 잃어버리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아는 한동훈 장관이나 이원석 총장은 정부나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래서 기대가 있어요."

    ‘검수완박’ 반대 표명은 검사로서 마지막 봉사
    총장후보로 거명은 과분…조직안정 위해 퇴임
    정부의 인사, ‘편중’으로만 보는 건 착시 현상
    尹 대통령이 검찰중립성 등 훼손하면 자기부정
    조국 前 장관과 인연…검사로 가장 어려운 시기


    김후곤 전 고검장도 그런 사례에 속하지만 검찰 내에서 특수부 출신들이 다른 부서 출신에 비해 승진과 고과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고 결국에는 '꿀보직'으로 영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에 따른 검찰 조직 내 비판적 시선과 불만이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네, 그 불만을 저는 알고 있고 이해도 합니다. 특수부가 상대적으로 외부에 많이 알려진 사건들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에 대해 인사권자들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조직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겸손하게 내부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소외된 동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에 지나친 힘과 권한이 집중된다고 보는 이들은 여전히 들썩거리는 검찰의 어깨를 찍어누르려는 방안을 강구한다. 검찰개혁의 방향 역시 검찰의 힘을 빼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걸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6월, 민주당 최 모 의원이 검찰의 급여를 일반공무원과 일원화하는 소위 '검수월박' 법안을 발의한 것도 그런 일환일 테다. 이에 대해서 김 전 고검장은 일고의 여지도 없이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검사들에 대한 처우는 법원과의 상대성, 효율적 체계를 감안해서 정해진 것인데요. 늘 심대한 책임감을 갖고 사회적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검사들에게 그 정도의 격려와 보상은 필요하다고 봐요. 평검사가 3급 대우를 해달라 검사장이 차관 대우 해달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거든요. 한국 검사들의 현재 처우는 일본이나 미국 검사들에 비해서 여전히 두세 배 정도 낮은 것도 현실이고요. 직군의 특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민주당 최 모 의원의 솔루션은 다분히 감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말에 동의가 되는 것이, 검사들은 사정 권한을 가진 공직자로서 필수적으로 안정적인 지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에게 접근하는 다양한 유혹에 대한 입장을 검사 개인이 각자 알아서 정하라는 것밖에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거야말로 비효율이다.

    이야기가 진척되는 계제에 그와 악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검사에 대한 이야길 안 물을 수 없었다. 그와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는 차분하게 이야길 시작했다.

    “조국 장관이 특정 검사를 법무부에서 쓰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조국 장관에게 그랬어요. 그런 결정을 하기 전에 그 검사가 검찰의 평검사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좋겠다고요. 검사로서 기본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실력이나 자질을 체크하고 쓰시라고 했어요. 그때 법무부에 있는 다른 후배 검사들이 그 검사가 오면 자신은 그만두겠다고 하는 등의 소동이 있었어요. 그 검사는 내가 자신에게 반감을 갖고, SNS에 글 쓰는 걸 자제하고 전직 총장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조건을 받아들이면 받아주겠다는 소위 부당거래를 제안했다고 비판했는데, 그 조건은 제가 아니라 조국 장관이 저에게 먼저 물은 거였어요. 제가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저는 인사에 따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고 그런 조건을 제안하는 건 인사권자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걸 교묘하게 비틀어서 저를 악인으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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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표정이 씁쓸해지는 찰나 내가 마저 물었다. 검찰 내부에서 그런 것이 왜 통제가 안 되는지를.

    “불협화음이나 잡음을 일으키는 검사들은 징계를 통해서 통제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대검 감찰부가 해요. 예방적 감찰 활동 등 시스템이 있죠. 그런데 그런 부서장에 추미애 장관은 정치 성향 논란이 있는 분들을 감찰부에 썼어요. 한명숙 전 총리가 기소되어 일부 무죄판결과 함께 대부분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걸 정치적 공세로 받아들인 추 장관 측이 그 사건을 진행한 검사들을 징치하는 데 그 분들을 쓴 거예요. 감찰부가 정치화되었는데, 어떻게 건강한 통제가 이뤄지겠어요.”

    김 전 고검장은 여전히 조금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자신의 심사를 적잖이 괴롭혔을 비사를 차분하게 털어놓았다. 그의 비판적 언술 속에 실명이 등장하긴 했지만, 내가 듣기에 그건 특정인에 대한 비난이나 흉이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시퀀스에 대한 자신의 비애감을 표현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즈음 인터뷰의 클라이맥스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조국 전 장관과의 얄궂은 인연에 대해서다. 김 전 고검장은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서 사태의 시종을 지켜봤다. 보직에 따라 그는 조국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준비단장을 맡았는데, 그때는 이미 언론이나 여러 루트를 통해 조국 전 장관이 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시그널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을 때였다. 검사로서의 판단과 청문회준비단장으로서의 책임이 맞부닥쳤을 당시 그의 흉중에 얼룩졌을 모순과 분열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건 일종의 사디즘이었을까.

    "검사 생활을 하는 동안 심적으로 가장 어려운 때였어요. 지금 창원지검장으로 있는, 저랑 같이 일하던 후배는 마음고생 때문에 이가 다 빠질 정도였어요. 당시, 지금 개혁 법률의 얼개가 된 법안을 문무일 검찰총장을 패싱한 채 민정수석, 법무부장관, 행안부장관 3자 합의로 통과시킨 조국 장관에게 검찰은 우호적이지 않았어요. 저는 이런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면서 조국 장관에게 청문회를 위한 예비 질문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양해를 구했어요. 그 과정에서 밥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길 나눠보니 의외로 쿨하고 대화가 통하는 분이라는 느낌도 있었어요. 그런데 연일 언론에서는 펀드와 자녀 입시 비리 의혹까지 보도가 되는데, 장관님에게 사실 확인을 하면서도 저희는 그래도 장관님 말을 믿어야 하는 자리에 있었죠. 검찰 수사팀은 우리와는 다른 판단을 하고 있었던 거고요. 그 과정에서 청와대나 정부 쪽에서는 특수 검사들과 친분이 있는 내가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취한 정보를 그쪽에 넘긴다는 짜라시가 돌고 있기도 했고, 또 수사팀에서는 조국 장관은 이미 장관직을 수행하기 어려운데 법무부에 나가 있는 검사들이 직언도 못하고 외려 장관을 감싸고 있다고 비난한다는 소문도 들려왔어요. 양쪽으로부터 큰 오해와 압박을 받은 거죠.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 자리를 뛰쳐나올 수는 없었어요. 공직자라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김 전 고검장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결코 개인이 치른 사적 체험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한국 사회가 근년에 겪은 역사적 모멘텀과 그것이 품고 있는 진실의 첨단을 목격한 이의 모뉴멘털한 증언처럼 다가왔다. 그는 그 무겁고 귀한 이야기를 가장 적절한 심급으로, 가장 적실한 형식과 태도를 취하며 들려줬다.

    그는 조직의 많은 선배들이 정치적 파랑에 올라타며 어떤 이는 화려한 산호섬에 오르고 어떤 이는 물길 속에 좌초되기도 할 때, 그리고 어떤 동료들은 상처를 받고 조직을 떠나기도 할 때, 그 수많은 자중지란의 순간에서도 묵묵히 조직을 지켰다. 산그늘을 가장 오래 지킨다는 굽은 나무의 고독한 이미지가 그에게 겹친 순간이다.

    겸손이 실질이 아니라 포즈에 불과하다면 그것만큼 민망한 것은 없다. 그런데 김 전 고검장에게 겸손은 포즈가 아니었다. 그는 익히 알려진, 자신이 거둔 성과와 성취에 대해선 일절 말을 꺼내지 않았고 외려 공판부와 국민참여재판에 소신을 갖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정명원 검사 이야길 꺼내며 격려했고, 자신이 구속영장을 신청해 구속시킨 택시 기사가 검찰에 송치되자 사건을 배당받은 후배 검사가 치밀한 수사로 억울함을 풀어준 일화 등을 들려주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오류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제대 후 치른 사법고시에서 떨어지고 낙심해 있을 즈음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경비를 대주며 여행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는 십여 일 동안 이어진 그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고단한 노동에 치인 여공들과 배추 농사를 짓다 망한 또래들과 무람없이 교류했던 일화를 설렌 표정으로 들려주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때 그는 광활한 밤하늘을 채우는 뭇별들의 자리, 그 어떤 것도 가소로울 수 없고 또 돌올할 수도 없는 그 우주적 섭리를 상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유로운 주유와 사색으로 기꺼이 청춘을 탕진했던 이가 검찰의 성채를 나와 이제 우리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어 있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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