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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만나는 법

    [시인이 만나는 법] 법무장관 검찰총장과 같은 기수, 성찰과 고민, 그리고 새로운 도전… 최용훈 변호사

    김도언 시인(소설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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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검사로 임용되어 24년간의 검사직을 마쳤는데도 이제 겨우 만 50의 나이. 그의 연수원 동기 한 사람은 장관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검찰총장으로 영전했다. 뭔가 아쉽거나 미련이 있을 법도 한데 최용훈(50·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의 표정에는 묵혔던 걸 전부 다 비워낸 듯한, 자기 몫의 사역을 마친 이에게서 보이는 홀가분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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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   력  ]

    충북 영동 출신으로 서울 서초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8년 수원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부산지검·서울중앙지검·성남지청 등을 거쳤다.
    2005년 법무부 국제법무과 검사로, 2011년 주UN대표부 법무협력관으로 일한 기획통이자 국제통이다. 한·아세안(ASEAN) FTA 협상 정부 대표단, 한·러시아 우주기술보호협정 정부 대표단, 한·미 FTA 협상 정부 대표단,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 대표단, 한·유럽연합(EU) FTA 협상 정부 대표단, OECD 경쟁위원회 정부 대표단 등으로 활동했다. UN총회 정부대표단,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 이사회 정부대표, UN 안전보장이사회 정부대표단 등으로도 활약했다.
    인천지검 외사부장,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 서울남부지검 인권·첨단범죄전담부장검사 등을 거쳐 진주지청장, 전주지검 차장, 안양지청장, 대검찰청 인권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올 7월 검찰을 떠나 지난 달 법무법인 케이원챔버에 합류했다.

     

    지난 7월 검사복을 벗은 그는 최근 로펌 케이원챔버에 합류했다. 케이원챔버는 전 헌법재판관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 헌법심판에서 주심을 맡았던 강일원 변호사가 이끌고 있는데, 강 변호사는 최근 ‘검수완박’ 법안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현재의 법무부를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최용훈 변호사에게 검사직을 마친 소회와 함께 변호사라는 호칭이 아직은 낯설지는 않냐고 물었다.

    "제가 연수원 27기 중에 한동훈 장관 다음으로 연소자였는데, 동기 모임 총무직을 맡기도 했어요. 장관이 되신 분과 총장이 되신 분은 검찰 안팎에서 발군의 실력을 가진 것으로 공히 인정을 받은 분들이고 그래서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인사였어요. 동기나 후배가 지휘부가 되면 퇴직하는 관행을 저도 따랐는데 이런 관행은 아마 로스쿨 정착에 따라 점차 사라지게 되겠죠. 검사로는 조금 이례적으로 국제업무와 관련된 일을 많이 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한미 FTA 협상이었는데, WTO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당시 국제 환경에서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경험이 우리 정부에게 많이 부족했고 그래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때 정부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국가변호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법률가로서 국가를 위해 법률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변호사라는 개념이 생각만큼 저에게 낯설지는 않아요."

    한미 FTA 협상 정부대표단 일원으로 참여

    ‘국가변호사’


    그의 말대로 그는 한·미 FTA 협상 정부대표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위원회 정부 대표단 등에서 국가를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제작의 필수전제조건이던 ‘한러우주기술비밀보호협정’ 체결 협상 과정에서 2005년경 정부대표단원으로 한국에 유리한 조항을 마련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또 2011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안전보장이사회와 유엔총회를 담당하는 주유엔(UN)대표부 법무협력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우주개발 사업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 대표단과의 협상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제법 변덕스러웠어요. 러시아 국내 정치 및 경제 상황에 따라 내거는 요구사항이 수시로 바뀌었죠. 단적으로 러시아 기술자가 국내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한국 정부가 처벌해서는 안 된다, 로켓을 발사했는데 실패해서 잔해가 떨어지면 그 잔해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같은 무리한 주장을 고집하기도 했어요. 이상한 건 실패해서 잔해가 떨어지면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한국 비용으로 수거해서 그대로 러시아 측에 넘겨줘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정부가 잔해에 접근하지 말라고 하면서 직접 수거해서 전달하라는 건 모순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했죠. 그랬더니 러시아 측에서 한국 정부가 예리한 지적을 했다면서 자기들이 보완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부친 최환 전 고검장,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실체 밝힌 역할


    그런데 아무리 검사가 공직이고 국가가 정해주는 자리를 감당해야 하는 존재라지만 자신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할 수 있을까. 듣고 보니 그는 대학 때 법경제학 등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했고 80년대에는 8비트 애플컴퓨터를 쓰던 중학교 성적처리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오류를 중학생 친구들과 함께 고쳐본 경험도 있다고 했다. 그가 가진 일관된 취미는 부임지마다 사적지와 박물관을 찾으며 공동체의 유산을 탐구하고 역사 문헌의 원문을 찾아 읽으며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자신의 지적 욕망과 지향을 자신이 수행했던 일에 작동시킨, 요즘 말로 '덕업일치'를 이룬 그는 양안적 시각을 가진, 탐구심이 강한 전형적인 문과형 수재 타이프인 듯했다. 호기심을 느낀 주제에 접근하고 거기서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유형 말이다. 그는 유독 자기 세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것 역시 역사의 순환과 발전에 대한 진화론적 관심, 남다른 지적 사변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은근한 압박이 들어올 때

    부친 명성을 방패막이로 쓰기도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제 또래는 이른바 (권위적 태도를 청산하지 못한) 선배 세대와 (개인의 가치실현이 중요하고 자유분방한) MZ 세대 사이에 제대로 ‘낀 세대’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로 인해 앞뒤 세대 간 갈등과 스트레스를 많이 경험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저희 세대야말로 진정한 탈권위의 시대적 변화를 경험해 왔고, 서태지나 박진영처럼 MZ세대나 더 어린 세대의 문화 토양의 기반을 함께 일구기도 했고요. 앞뒤 세대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터전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가치관과 세계관이 많이 다른 두 세대 사이에서 소통의 매개가 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분위기가 우리 세대의 역할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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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훈 변호사의 부친은 1987년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최환 전 고검장이다. 최 전 고검장은 1987년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으로 경찰이 박종철의 시신을 부검을 생략하고 서둘러 화장하려 할 때 검사로서의 쇠심줄 같은 소신으로 그걸 막아낸 인물이다. 그가 그때 느꼈을 압박감을 우린 상상할 수 있을까. 최용훈 변호사에게 검사로 일하는 동안 부친의 이름값에 따른 부담 같은 건 없었는지 궁금했다.

    "공직자로서는 국가에 기여하신 분이고 아들을 떠나 검사로서 볼 때 그분이 견지하셨던 원칙을 존경해요. 고전적인 측면에서 ‘충신’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들 입장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려워요. 아버지가 4남 4녀의 장남이었고 할머니는 좀 고지식한 분이셨는데, 어머니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셨어요. 집안의 살림과 대소사를 시어머니의 지나치다 싶은 통제 아래 다 치러야 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는 바깥일에 전념하느라 그런 내자의 괴로움에 무심하신 측면이 있었어요. 애들이 어떻게 크는지, 집안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셨죠. 그건 그랬지만 나중에 제가 검사가 되었을 때, 재량권을 발휘해서 체포영장이나 기소 같은 걸 좀 면해주면 안 되겠냐는 은근한 압박이 들어올 때 부친 명성을 방패막이로 쓰기는 했어요."

    공명의 후광과 사적 기억의 그늘을 모두 가진 부친에 대해 그가 토로한 양가적인 감정을 나는 이해한다. 강직한 한 사내를 무심한 남편과 무정한 아버지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어지럽고 슬픈 현실 앞에서 섬세하고 명민한 최용훈 변호사는 역사의 실존적 국면을 누구보다도 뜨겁고 생생하게 촉지했을 것이다. 그에게 앞으로의 고민과 전망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공직에 다시 나아갈 기회가 있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물으니 그는 자리와 상관없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케이원챔버에서부터 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케이원챔버의 대표변호사들은 자신에게 한참 선배이고 어른인데, 상당히 역동적이고 진취적이어서 배울 점이 참 많다고 느꼈단다. 그러면서 자신도 계속 성장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여기서 당분간 한국 사회 모든 이슈를 집어삼킬 수도 있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 및 한계, 그리고 향후 전망에 대해 검사 출신으로서 어떻게 들여다보고 있는지 솔직한 생각을 들려달라고 했다.

    "투여할 수 있는 물량 측면에서 경찰 조직이 더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 경찰이 수사를 맡는 걸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 업무의 최우선 순위가 '수사'라는 오해가 경찰 내부나 우리 사회에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찰이 수사 기관인 것은 맞지만 경찰의 가장 본질적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있거든요. 경찰청법을 봐도 예방과 보호, 진압이 먼저이고 수사는 후 순위에 있어요. 그리고 경찰의 수사가 부실하면 검찰이나 공수처가 다시 들여다볼 수 있으니 지금은 지켜봐야죠."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은 고급 라이선스다. 그를 통해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과 존경받는 신분에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일반적인데 대화를 나눠본 최용훈 변호사는 법학을 하나의 학문이나 생태, 또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들려준 어떤 말에서는 세속의 허명 같은 걸 그가 확실히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결벽증까지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런 발언이다.

    "저는 검사들이 피고와 나누는 문답을 신문이 아니라 대화라고 생각했어요.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들과 대화하기도 어려운데 검사로서 전혀 모르는 사람과 몇 시간씩 이야길 나누는 사이에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생겨난 것 같아요. 저는 대검찰청, 고등검찰청, 지방검찰청, 지청, 법무부, UN 파견 등 제가 노력해서 갈 수 있는 모든 기관에서 일해봤어요. 사건도 기업 사건부터 혐오범죄까지 다양하게 맡아봤고 메이저 로펌을 상대로 판결을 엎어본 적도 있어요. 후배 검사가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인권정책에 대한 고민도 깊이 해봤고요. 그래서 업무에 여한이 없어요. 일하는 동안 승진이나 발탁과 관련해 다양한 시그널을 받기도 했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건 검사의 기본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공직에서는 최소한 기본을 지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이런 인재를 구성원으로 두게 된 케이원챔버는 참 든든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챔버오케스트라'가 들려줄 법의 향연이 몹시 기대되는 것이었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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