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진 않겠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을 하고 악기를 다루다가 법률이나 법학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패스하고, 법률가의 길을 가고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전회(轉回)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변신의 간극은 강민영(44·사법연수원 46기) 변호사가 학부 시기까지 다뤘던 가야금의 1현과 12현의 거리만큼 멀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몸에 익은 걸 과감히 털고 낯선 세계에 뛰어들 용기가 생겼을까.


[ 약 력 ]
서울 국립국악중·고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한국음악과 학·석사를 취득했다. 대학 졸업 후 라디오와 TV 음악프로그램 구성작가로도 활약했다.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우연히 법학에 관심을 갖게 돼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고 2014년 제5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17년 사법연수원을 제46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가 됐다. 현재 법무법인 플랜에이에서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는 인내와 끈기, 책임감을 갖고 어려운 순간을 다 이겨내신 분이에요. 저도 그런 부분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그 시대 아버지들처럼 좀 가부장적인 분이셨고요.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하신 분이에요. 저는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셨어요. ‘행복해야 돼, 네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 거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저는 그 말이 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매일 듣다 보니까 제가 삶을 살아오는 동안 좋은 에너지가 된 것 같아요.”
얘길 들으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긍정의 태도와 자신을 믿는 남다른 자애심이 변호사 강민영을 만들었다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겠다. 중고등학교를 모두 예고를 나온 강 변호사는 학부에서 가야금을 뜯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국악이론을 공부했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돌연 법학의 매력에 빠진 것.
“사법시험을 봐서 법조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어요. 국악이론을 공부하면서 영·정조 시대의 음악을 공부했는데, 영조와 정조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당시의 자료나 고증 등이 절실했어요. 참고할 텍스트들이 부족해서 늘 답답했죠. 그 과정에서 진로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생겼고 그때 주변에 법 공부를 하던 친구들이 사법시험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해서 학원에 가서 처음 민법을 들었는데 그때 법의 매력에 빠졌어요.”
말을 듣고 보니 강 변호사에게 지적 호기심과 지적 체계에 대한 갈망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실제로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은 정답이 없는 영역이고 법학은 답이 있고 논리정연하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법학에 매력을 느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사람들이 ‘공부머리’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차라리 학문의 길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법학자나 연구자의 길 말이다.
“음악은 같은 연주를 해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도 있는데요. 법은 또 다르더라고요. 제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중에 보면 대체로 다수 의견에 속하더라고요. 법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대체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생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 저는 실제로 법을 적용해서 문제를 푸는 데 관심이 있었고요.”

강 변호사의 이력에서 특이한 것은 대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후반부에 청와대에 들어가 정무수석실의 행정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된 연유를 물었다.
“제가 당원이기도 한데요, 민주당에서 법률위원회 부위원장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청와대에서 오퍼가 와서 거기에 응해서 일을 하게 됐어요. 자치발전비서관실에 소속되었는데 ‘자치발전’과 ‘균형발전’ 투트랙으로 일을 했죠. 그때 지자체 현안이 중앙정부로 올라오는 과정을 보면서 자치분권이라는 아젠다에 대해 깊이 깨닫고 지자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어요. 지자체가 말하자면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약자의 지위인데, 그들의 입장을 열심히 대변하다 보니까 당시 이철희 수석님이 저를 강인권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웃음)”
작년 대선의 결과 정권이 바뀐 부분에 대해 민주당 입장에서 돌아볼 것은 없는지 물었더니, 강 변호사는 공직에 있던 사람이라서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그에게서 미련과 후회를 두지 않는 강단이 엿보였다. 그는 지금 형사전문 변호사를 자임하면서 2017년에 설립한 법무법인 플랜에이를 이끌고 있다. 형사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궁금했다.
국악 전공한 가야금 연주자
대학원서도 국악 공부하며
교수 꿈꾸다 돌연 법학에 매력
음악은 정답이 없는 영역이지만,
법학은 답이 있고 논리정연하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검사 희망하다 형사전문 변호사로 활동
여성인권·장애인 등 약자들의 문제에도 집중
“원래는 제가 검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형사전문 변호사를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여성인권이나 장애인 등 약자들의 문제에 집중하게 됐구요. 약자에 대한 관심은 그냥 저의 숙명 같아요. 제가 나이가 좀 있는 상태에서 연수원에 들어갔고 여전히 여성 비율이 훨씬 적은 환경에서 기수 주장이나 동문회장 같은 걸 했거든요. 그때부터 소수를 대변하는 역할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선거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선거 운동이 과열돼 변호사 사회에 상당한 분열과 갈등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변호사 사회의 화합과 통합에 대한 그의 복안이 궁금했다.
“변호사 사회의 극한 대립과 분열은 변호사회가 너무 이익집단화하면서 발생한 것 같아요. 예컨대 직역수호 같은 것만 내세우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익이 생기면 또 그 이익을 나눠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경쟁과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잖아요. 변호사단체는 다른 이익단체와 분명 다른 요소들이 있어요. 여러 고위공직자를 추천하는 추천권을 가지기도 하니까요. 변호사들 스스로 직역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공익적 성격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강 변호사는 변호사 사회의 민감한 이슈인 ‘로톡’에 대해서도 명료한 입장을 밝혔다.
“개인적으로 저는 로톡에 참여한 변호사들을 징계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갖고 있어요. 변호사의 수임 금액을 다운시키는 등 로톡으로 인해 왜곡된 법률서비스 문화가 생길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정밀하게 개선하는 게 필요하지 규제나 징계로만 해결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대형로펌에서는 구글이나 포털 등에서 대규모 광고를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거든요. 이런 문제는 그대로 두면서 로톡만 징계하는 건 맞지 않은 거죠.”
강민영 변호사는 이제 40대 초반으로 기성세대에 막 진입하는 세대다. 바로 밑의 20~30대 세대가 현실과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격려나 조언의 말은 없는지 물었다.
“20~30대의 상대적 박탈감 문제는 구조적 측면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냉철하게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배 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다른 세대가 가질 수 없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거예요. 패기, 체력, 건강, 열정 같은 것들요. 그것들을 믿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도전을 하면 좋겠어요. 고민은 하되 짧고 치열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강 변호사는 어머니의 주문처럼 시방 행복한 변호사처럼 보였다. 법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생기가 넘쳤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직업 만족도를 100퍼센트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에게 변호사라는 업의 희로애락은 어떤 것일까.
“무료상담을 하면서 소송으로 가기 전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데 그때 행복감을 느껴요. 저 역시 다른 변호사처럼 피고인을 대리할 때도 있는데, 그때도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회복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사실관계를 다투고 무죄 주장을 하면서 의뢰인과 함께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써서 변론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괴롭기도 해요. 한 가지 변호사로서 아쉬움이 있는데, 무죄 주장을 하는 쪽은 억울한 일이 있어서 하는 건데 판사가 반성의 기미가 없고 괘씸하다면서 관행처럼 엄벌을 내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문제는 우리 법조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먼저 생성된 음이 공명되다가 공기 중에 사라져야 다음 음이 들리는 법이다. 한번 생성된 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음악은 성립될 수 없다. 그 간격과 높낮이가 신묘한 음악을 만드는 것일 게다. 하지만 한번 사라진 음은 어디로 가는가. 이것은 음악을 하는 이들에겐 풀리지 않는 숙제일 수도 있다. 반면 법은 음악과 달리 사건과 판례로 누적되는 것이다. 견고한 성처럼 쌓이는 것이다. 실체이며 실질의 세계다. 실체와 실질 속에서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 이와 같은 투신의 의미를 어느 날 깨달았기에 강 변호사는 자신의 일을 과감하게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포스라고 할까 아니면 아우라라고 할까. 강민영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내내 그의 내부가 당차고 압밀한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팽팽한 가야금 줄을 튕길 때의 긴장감, 음을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민영 변호사의 포스를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희망사항을 물었다.
“죽기 전에 결혼식 주례를 서고 싶어요. 주례를 설 수 있다는 건 제가 삶을 잘 살아왔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제 막 출발하는 젊은 부부를 응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정말 벅차고 설렐 것 같아요.”
그의 꿈이 실현되리라 확신하는 나는 벌써부터 강 변호사의 주례사가 궁금하다.
김도언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