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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교토 2호 매각해 유족 보상금 일부로 사용토록 협상

    ‘교토 1호 침몰 사고’ 유족들 도운 항해사 출신 성우린 변호사

    강한 기자 strong@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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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카오슝을 출발한 배가 사고 313일만인 지난달 13일 부산항에 들어섰다.

      

    지난해 4월 7일 대만 인근 해역에서 예인선 '교토1호(332톤)'가 침몰했다. 바지선 '교토2호(3000톤)'를 끌고 부산항에서 인도네시아 바탐항으로 가던 중이었다. 한국인 선원 6명이 먼바다에서 실종됐다.

    한국 정부는 다음날 해경 경비함 3012함을 사고해역에 급파해 수색을 개시했다. 한국에서 구조대원 6명을 실어와 경비함에 내린 뒤 부산으로 복귀하던 헬기까지 해상에서 추락했다. 승무원 3명이 사망했다.

    선원 6명의 유가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유족들은 어떻게든 보상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상을 받을 법적근거가 없었다. 선원들은 인력 사무소를 통해 배에 탔지만 배에는 선박보험이 없었다. 사고는 대만에서 터졌고 배의 주인은 아랍에미리트(UAE) 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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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해사 출신 성우린(38·변시 4회·사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가 부산에 있는 유가족들을 찾아갔다. UAE 선사 측은 "우리도 피해자다. 시간은 내 편"이라며 보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두바이 현지 로펌들을 통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장기화 되기 마련인 국제 소송을 버틸 여력이 없었다. 해외 로펌 변호사 비용이 높고, 수년간의 소송 끝에 승소하더라도 유족에게 남는 것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배와 유족을 둘러싸고 UAE 선주, 대만 정부, 한국 정부·국회 간 줄다리기가 수개월 간 이어졌다. 해법을 찾던 성 변호사는 남겨진 교토2호에 눈을 돌렸다. 그 사이 교토2호는 대만 정부와 선박구조업체(일종의 해상 레커차)가 인양해 대만 카오슝 항만에 정박 중이었다.

    "배를 팔아서 해결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교토2호는 이미 골칫덩이였다. 항만사용료와 선박구조료가 점점 불어나 합계 5억 원을 넘기고 있었다. 성 변호사는 비용을 감당해야 할 UAE 선주와 대만 정부를 각각 설득했다. 유족에게 보상금 성격의 금전이 돌아가면서도 관련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영국·싱가포르·중국·부산을 뒤져 배를 사 줄 선박고철업자(스크랩업자)를 물색했다. 고철업자들에게는 배만 사주면 거래 자문을 무료로 하겠다고 설득했다. 항해사와 해상 전문 변호사로 쌓은 지식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철업자들에게 거절 당하기를 10여차례, 그동안 8개월이 흘렀다. 고철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교섭이 결렬됐다. 배가 팔릴 것 같자 가격을 올려받겠다는 선사를 재설득해 비용을 맞췄다. 대만 정부를 설득해 구조료 1억여 원을 깎았다.

    올해 1월 3일 교토2호가 마침내 부산의 고철업자에게 팔렸다. 대만에 있는 배를 옮겨 오는 비용을 미리 제하고, 항만사용료와 선박구조료를 치렀다. 대만 카오슝을 출발한 배가 사고 313일만인 지난달 13일 부산항에 들어섰다. 남은 1억6300만 원을 받아 이틀 뒤 여섯 유족에게 나눠 전달했다. 성 변호사는 "인명 피해가 컸으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건이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유족들이 나를 믿는다고 말했다. 끝까지 해서 유족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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