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김도읍)는 28일 김형두(58·사법연수원 19기)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고 본격적인 후보자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회와 국민의식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헌법의 이념이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돼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겠다"며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한편 헌법질서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굳건히 자리잡았다"면서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직면해 있고 세대나 지역, 이념간 갈등과 빈부차이, 저출산·고령화 문제, 환경문제와 같이 여러 변화와 갈등 속에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1991년 결혼했고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째가 자폐성 장애 1급을 진단받았다"며 "우리 부부는 쉬고 싶을 때 편히 쉴 수 없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고단한 처지가 됐지만 이런 경험이 저로 하여금 세상을 좀 더 폭넓고 깊이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됐고 법관으로서 자세나 시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1993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로 임명된 이래 지금까지 30년간 각종 재판업무와 다양한 사법행정 업무를 담당해왔다"며 "어제 법정에서 재판하면서 있었던 일이 오늘 하루종일 머릿속에 맴돌면서 내가 좀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더 나은 해결책은 없었을까 하는 고민을 해왔고, 고민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98년 일본 동경대에서 1년 유학하며 도산법을 연구했는데, 귀국 후 외환위기 극복방안으로 도산법 개정 등 범정부적 작업에 참여하게 됐고, 2000년 미국 콜롬비아대에서 다시 연수하는 보기드문 기회를 가지게 됐다"며 "각 나라의 재판 모습이 서로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며 어떤 방식 재판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늘 고민했기 때문에 해외출장이나 학회 등 기회 있을때마다 각 나라 재판을 직접 방청함으로써 개선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선진사법제도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형사소송법이 기초로 삼는 공판중심주의를 실제 재판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늘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또 배워서 제 재판을 개선하려는게 제 작은 소망"이라고 했다.
전북 정읍 출신인 김 후보자는 전주 동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송무제도연구 판사·사법정책제2심의관, 재판연구관, 강릉지원장,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사법정책연구권 수석연구위원, 서울중앙지법 민사제2수석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지냈다. 김 부장판사는 다양한 재판업무 경험, 해박한 법률지식, 사법행정 능력을 모두 갖춘 법관이란 평가를 받는다. 또 법원행정처의 방대한 업무를 세심하게 파악, 여러 현안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퇴임한 이선애(56·21기) 헌법재판관의 후임 후보자로 김형두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4월 16일 정년으로 퇴임하는 이석태(70·14기) 헌법재판관의 후임 후보자로 정정미(54·25기) 대전고법 고법판사를 지명 내정한 뒤 14일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다음은 김 후보자 모두 발언 전문.
존경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도읍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다양한 의정활동으로 바쁘신 가운데 귀중한 시간을 내어 오늘 청문회를 준비해 주신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과분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 청문회는 국민의 대표이신 위원님들께서 헌법재판관으로서 저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헌법재판관이 가지는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명심하면서 여러 위원님들의 질의에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로 답변하겠습니다.
저는 전북 정읍에서 2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까지 정읍에서 살다가 이후 전주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졸업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정읍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까지 근무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저는 비교적 무난하게 학창시절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1991년에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째가 자폐성 장애1급 진단을 받은 자폐아입니다. 유난히도 잘 생기고 순한 아이였던 둘째가 자폐진단을 받고 나서 우리 가족의 생활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잘 수 없고 쉬고 싶을 때 편히 쉴 수가 없으며 둘째랑 같이 외출을 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고단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 처는 천직으로 생각하던 교사직을 포기하고 둘째 뒷바라지에 전념하여야 했고, 첫째는 둘째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자폐아의 형이라는 시선을 감내하여야 했습니다. 지금도 제 처와 저의 몸에는 둘째로부터 꼬집히거나 물려서 생긴 상처와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둘째를 돌보아 왔으며, 우리 둘째는 가족들로부터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종일 둘째를 돌봐야 하는 힘겹고 고단한 생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힘겨운 삶의 경험들은 저에게 세상에는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고 주변에 우리 가족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내 처지가 좀 어렵더라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저로 하여금 세상을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법관으로서의 자세나 시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993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로 임명된 이래 지금까지 30년 동안 각종 재판업무와 다양한 사법행정업무를 담당하여 왔습니다.
법관으로서 저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반성과 후회의 연속이었습니다. 어제 법정에서 재판하면서 있었던 일이 오늘 하루종일 머릿속에 맴돌면서 내가 좀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더 나은 해결책은 없었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하였습니다. 그 고민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1998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1년간 연수를 하면서 도산법을 연구하였는데, 귀국 후 외환위기의 극복방안으로 우리나라의 도산제도를 개선하고 통합도산법을 제정하기 위한 범정부적 연구작업에 참여하게 되어 2000년에 미국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6개월간 다시 연수를 하는 보기 드문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미국과 일본의 실제 재판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각 나라의 재판 모습이 서로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였습니다. 어떤 방식의 재판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를 늘 고민하였기 때문에, 해외출장이나 학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각 나라의 재판을 방청함으로써 개선점을 찾고자 노력하였고, 선진 사법제도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에서 재판장으로 근무할 때는 형사소송법이 기초로 삼고 있는 공판중심주의와 집중심리주의 원칙을 실제 재판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공판중심주의의 구현과 집중심리주의야말로 법관이 편견 없이 사건의 실체에 도달하고 피고인의 방어권도 보장할 수 있는 형사재판의 이상적인 모습에 해당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이후 실무에서 공판중심주의 원칙이 점차 강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른 법관들보다 재판을 더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법관으로서 능력에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늘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또 배워서 저의 재판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으로 1987년 탄생한 현행헌법은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헌법재판소를 두었습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가 지키고 추구해야 할 헌법적 가치를 선언하고,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결정을 내리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한편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고, 세대나 지역, 이념간 갈등, 빈부차이, 저출산·고령화 문제, 환경문제 등과 같이 여러 변화와 갈등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헌법재판소는 헌법가치를 수호하고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한 중추적 역할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만약 저에게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러한 사회와 국민의식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헌법의 이념이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한편, 헌법질서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 청문회에도 진심을 가지고 임하겠습니다. 위원님들께서 주시는 충고와 당부의 말씀을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로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저에 대한 청문회를 위하여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신 김도읍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청문회를 지켜보시는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3. 3. 28.
헌법재판관 후보자 김형두
박수연·박선정 기자 sypark·s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