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적 가치가 있는 독일의 고성(古城)을 매입해 주거용으로 분양할 목적으로 조성된 헤리티지 펀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가 신탁사를 상대로 투자금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이 항소심에서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원고 패소로 1심 선고가 나온 뒤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헤리티지 펀드를 판매한 6개 금융사는 투자자에게 원금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서는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방송인 김한석 씨 등 라임 펀드의 피해자들이 대신증권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 선고 등 금융상품 투자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결과도 주목하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12-3부(박형준, 윤종구, 권순형 부장판사)는 2월 3일 A 씨가 신한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투자금반환 청구소송(2021나2037824)에서 화해권고결정했다. 조정안에는 소 취하와 함께 투자금 반환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에서 조정안을 받아들여 그대로 확정됐다.
2018년 1월 A 씨는 신한투자증권과 독일 헤리티지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사모발행된 파생금융상품(DLS)에 투자한다는 특정금전신탁계약을 맺었다.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의 기념물로 보존 등재된 건물을 매입해 주거용으로 재건 후 분양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독일 시행사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시행사가 그 자금으로 사업을 진행해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하는 것을 기본적인 수익구조로 삼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A 씨가 신한투자증권에 최초금액 8억 원을 지급하고, 운용지시서 중 A 씨가 선택한 방법에 따라 신한투자증권이 신탁금을 운용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신한투자증권은 중간지급일인 2019년 2월 A 씨에게 중간수익으로 3850만 원을 지급했다. A 씨와 신한투자증권 사이의 특정금전신탁 운용지시서상 중간수익지급일과 만기지급일에 상환한다는 내용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독일 시행사가 만기에 차용금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서 신한투자증권은 만기지급일에 A 씨에게 신탁원본을 반환하지 못했다. 이후 신한투자증권은 가지급금 명목으로 A 씨에게 4억 원을 반환했지만, 2020년 7월경 시행사가 독일 브레멘 지방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면서 나머지 금액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A 씨는 "위험한 투자상품임에도 신한투자증권이 이를 합리적으로 조사하거나 그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히 설명하는 등 고객을 보호해야 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4억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A 씨의 주장대로) 헤리티지 펀드를 통해 매입한 독일의 성이 대부분 소실된 상태였고 해당 부동산은 대부분 산림이었다거나, 시행사가 이 사업에 자기자본 20%를 투자하지 않았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오히려 신한투자증권 직원들이 독일 현지에 출장을 가서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성 대부분은 상당한 규모의 건물로서 실존하고 있고, 그 보존 상태도 양호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신탁사가 신탁계약과 관련된 사정들을 직접 조사하지 않았다거나 그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합리적 조사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심 선고 이후인 지난해 11월 금감원 분조위는 "신한투자증권 등 6개 금융사가 판매한 헤리티지 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 6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분조위는 판매사가 독일 시행사의 사업이력, 신용도 및 재무 상태가 우수하다는 등의 설명으로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일부 투자자는 투자 원금을 반환 받았다.
한편, 부실 사모펀드 환매 중단에 따른 피해 사례 중 하나인 라임 펀드 사건과 관련해 김한석 씨 등 피해자들이 대신증권으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선고는 6월 15일로 예정돼 있다.
이 사건 1심은 지난해 4월 "대신증권은 김씨 등에게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특히 1심은 민법 제110조를 적용해 라임 펀드 판매 행위를 사기에 의한 계약 체결이라고 판단해 투자자들의 계약 취소 주장을 받아들여 대신증권 측에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단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에서 민법 제110조를 적용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1심 판단이 유지된다면 비슷한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을 경우, 증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