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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대법원 마지막 '독수리' 7월 퇴임 전수안 대법관

    "대법원, 순수 법률심의 기능 못해… 상고허가제 꼭 필요"

    좌영길 desk@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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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0일, 아직 냉방이 들어오지 않아 후텁지근한 집무실에서 '마지막 독수리' 전수안 대법관을 만났다. 마른 체형에 꼿꼿한 자세, 단정한 옷차림. 흐트러짐 없는 인상 앞에서 긴장을 한 것도 잠시, "끝나고 나서 사진 찍는줄 모르고 괜히 미리 화장했다"며 가벼운 목소리로 웃는 전 대법관 덕에 유쾌하게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보이는 동그란 안경과 그 뒤로 보이는 눈웃음…. 법관으로 생활하는 동안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평가에 걸맞게 전 대법관은 인터뷰 내내 에두르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시종 따뜻함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주 어려서부터 법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쌍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겠다, 그런 소박한 동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판사가 되면 드라마같은 데서 보던 '원님 재판'을 해서 마음대로 어려운 사람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일종의 '동기 착오'가 있었던 거죠."


    오는 7월 10일 임기만료로 퇴임하는 전수안 대법관은 겸손했다. 대법관에 오른 사람으로서 법관이 된 동기를 조금은 거창하게 얘기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솔직하게 '소박한 동심'을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하면서도 냉철했다. 그러면서도 농담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소수자 보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은 '독수리 오형제' 중 한사람인 전 대법관을 만나 35년의 법관 생활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퇴임 후 계획을 물었더니 간단하게 '무계획'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자신은 계획을 세우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며 '그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퇴임하면 실컷 여행이나 하고 싶긴 해요. 행선지를 정한 건 아니지만, 대법관 퇴임 후 계획이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좀 그런가요?"

    전 대법관은 사법연수원 8기 출신이다. 여성 법조인이 드물었던 1971년, 경기여고생으로 서울대 법학과에 원서를 냈다. 당시 경기여고에서 서울대 법대에 원서를 낸 것은 황산성(사법연수원 2기) 변호사 이후 10년만이었다. "법대 학생 100명 중 여학생은 2명 뿐이었어요. 사법연수원에서도 동기 60명 중 저 혼자였고요. 그때부터 소수 의견 기질이 있었나 봐요."

    그는 후배인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2004년 먼저 대법관이 되자 사직을 고민하다 주위 만류도 있고 해서 못이기는 척 남기로 했다고 한다. 2년여가 지난 뒤 이용훈 대법원장이 광주지법원장으로 일하던 전 대법관을 신임 대법관 후보로 임명 제청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어요. 객관적으로는 대법관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때였지만, 심정적으론 미련을 아주 떨쳐버리지는 못하던 시기였죠.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보니 대법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법관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분들이 존경스럽더군요. 솔직히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전 대법관은 이런 심정을 담아 취임사에서 문정희 시인의 '먼 길'을 낭독해 화제가 됐다.

    막상 대법관이 되고 보니 법률적 판단만을 하기가 어려웠다. 1,2심 법원에서 28년간 사실심을 해왔기 때문이다. "자꾸 피고인의 개별 사정에 눈길이 가더군요. 그게 대법관 6년 내내 힘들었던 부분이었어요." 그는 '대법원이 법률심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평가했다. "생각해 보세요. 유명 가수가 음반을 취입하면 전국의 시골장터에서도, 도심의 유명 커피숍에서도 같은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데 가수에게 전국 곳곳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라는 것과 똑같은 요구를 대법원에 하고 있거든요." 그는 상고허가제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은 일반병원보다 수술을 잘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수술 사례를 알려주고 시골 병원에 있는 의사들까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데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대학병원에 감기환자가 몰리면 본연의 기능을 못하게 되는 거죠. 대법원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행위준칙이 되는 가치를 확인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진보적 인사로 분류되며 '독수리 5형제' 별명 얻어
    다섯 대법관 간에도 의견 차이 있는 사건 더 많아
    '독수리 5형제'는 앞으로 사건별로 계속 존재 할 것



    판결은 양심과 소신… 채택되지 않으면 '소수의견'
    처음부터 마음먹고 소수의견 내는 대법관은 없어
    소수의견 많다지만 '다수'에 선 비율은 80% 넘어


    전 대법관은 퇴임한 김영란·이홍훈·김지형·박시환 대법관과 함께 진보적 인사로 분류되며 '독수리 오형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실은 여성도 두 명 있으니 형제가 아니라 남매가 맞죠." 전 대법관은 '젠더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명'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소수 의견에 섰다고 많이들 말씀하시지만 다수의견에 선 비율이 80%가 넘어요. 어느 대법관인들 소수의견을 내야겠다 마음먹고 내겠어요. 모든 대법관이 자기의 양심과 소신에 비춰볼 때 이것이 옳다고 생각해 주장을 했는데, 그 시점에는 채택되지 않아서 소수의견이 되는 거죠. 그 소수의견은 나중에는 다수의견이 될 수 있는, '잠재적 다수의견'이지요." 전 대법관은 독수리 오형제가 대법원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다섯 대법관 간에도 의견 차이가 있는 사건이 더 많았어요. 아마 평가하는 분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특정 판결을 골라놓고 보니 다섯 사람이 나란히 있는 것처럼 비쳐졌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수리오형제는 앞으로 인적 구성에 관계 없이 사건 별로 계속 존재하게 되겠지요."

    전 대법관이 물러나면 대법원에는 박보영 대법관만이 유일하게 여성으로 자리를 지키게 된다. 여성 대법관 수가 줄어든 데 대해 전 대법관은 이렇게 말한다. "전원합의체 선고할 때 여성대법관이 12명, 남성 대법관이 1명인 대법정 풍경을 떠올려 보세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 반대라고 왜 안 이상하겠어요. 대법원은 많은 판결을 하기 보다 좋은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좋은 판결은 균형잡힌 시각에서 나오는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배경으로 인적 구성이 되는 게 중요하죠. 각자의 경험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13명이 같이 논의하는 것 아닙니까."

    전 대법관은 가정에서도 '소수자'로 살았다고 했다.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아들 둘을 두었다. 시아버지를 25년간 모셨고, 결혼 초에는 시동생도 같이 지냈다. 그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다수'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남편은 바쁜 배우자와 결혼하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감수해야죠 뭐. 그런데 아이들은 선택한 게 아니니까 더 미안한 거죠. 두 아이 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은 물론이고 군대 있을 때 면회 한 번 못갔어요." 누구보다 바쁜 사회생활을 한 여성으로서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답했다. "사법연수원 교수로 일하던 시절, 연수원장이 '여성 사법연수생들도 전 교수처럼 일도 열심히 하고 가정에서도 잘해야 한다'며 저에게 이야기를 자꾸 시키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일을 열심히 한 것은 자부하지만, 솔직히 집안일은 엉망진창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여자연수원생들이 박수를 치며 호응을 하더라구요. 일하는 여성이 원하는 바를 펼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라야 가족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재판을 통해 지키고 싶은 가치는 '평화'
    是非曲直 가리기보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회로
    자리 연연 않고 법관생활하는 분들 존경스러워


    전 대법관은 재판을 통해 지키고 싶은 가치는 '평화'라고 했다. 그는 선의와 사랑으로 유지되는 따뜻한 사회, 시비곡직을 가리기보다 이해하고 이해받고, 용서하고 용서하는 사회, 재판이 적은 사회가 바로 평화로운 사회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법관 생활을 하는 동안 형사사건에서도 피고인과 피해자를 따로 차례대로 불러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해줄 수 있는 지를 물어 보는 등 화해와 조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다. 요즘 흔히 일컫는 '회복적 정의'의 개념이 잡히기 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다음해 1월에 공석이 되는 헌법재판소장 얘기를 꺼내자 전 대법관은 '관심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여성 헌재소장도 한번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통령이나 대법원장, 헌재소장과 같은 한 명이 역할을 하는 자리는 '젠더의 잣대'가 등장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 경우에도 '여자라서 안된다'는 조건이 붙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글=좌영길 기자·사진=홍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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