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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18번 도전 끝 법조인으로…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

    "단 한번 뿐인 인생… 꿈 위해 가난과 타협하기 싫었다"

    박지연 기자 desk@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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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퍼스의 가을은 생동감 넘치는 젊음과 꿈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18번의 도전 끝에 법조인의 꿈을 이룬 정형근(55·사법연수원 24기)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그 캠퍼스 한 켠에서 여전히 '젊은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은 중년의 교수는 학생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이를 잊고 젊게 살 수 있는 대학교에서의 생활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가을 분위기가 완연한 경희대학교 캠퍼스에서 정 교수를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어봤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던 소년의 꿈

    전라남도 장흥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9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곧바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 1년간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17살이 돼서야 중학교 2학년이 된 소년은 법조인의 꿈을 품었다. "제 때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번의 인생을 소신껏, 가치있게 살아보자." 19세에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읍내에서 사온 참고서로 매일 15시간씩 5개월을 혼자 공부했다. 드디어 검정고시 원서를 내기 위해 광주교육청으로 가려고 집을 나서던 그는 라디오방송을 듣고 그날이 검정고시를 보는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허탈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걸어갈 여정에 비춰보면 좌절하기에는 너무 일렀죠. 어차피 대학교에 가지 못할 바에야 고등학교 졸업장도 필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광주의 큰 서점으로 가 사법시험 모든 과목의 책을 샀다. "서점 주인이 과목마다 누구의 책을 찾는지 물었지만 저는 그 의미도 모른채 '아무 책이나 상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법시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고교 진학 포기하고 검정고시 도전 시골 소년
    원서 내러 가는 날이 시험 날… 응시조차 못해
    司試 도전 결심하고 20살에 상경, 독서실 기거


    그는 집을 떠나 천관산에 위치한 탑산사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상태에서 법을 공부하려니 이해가 될 리 만무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알든 모르든 우직하게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공부하라는 지인의 조언으로 20세에 상경했다. 서울 생활은 고향에서의 생활보다 더 어려웠다.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신문배달을 하며 독서실에서 24시간을 보냈다. 밤에는 의자 서너개를 붙여 잠자리를 만들었고 버너로 지어먹던 밥 값이 부족해 끼니를 건너뛰기 일쑤였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배불리 먹고 편히 잘 수 있는 고향집이 그리웠지만 "단 한 번의 인생을 순간의 고통 앞에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고 마음을 더 굳게 다졌다.

    #9급 검찰 사무직에서 7급을 거쳐 사법시험으로 가는 여정

    무작정 도전에 한계… 단계별 극복 전략 수정
    22살에 검찰서기보 합격… 부산서 공무원 생활
    "司試 응시 大卒로 제한"… 기사보고 大入 결심


    무작정 사법시험에 도전하려던 계획을 바꿔 먼저 9급 검찰 사무직과 7급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검찰 서기보 필기시험에 합격하고도 면접에 대한 정보가 없어 최종 면접에 탈락하기도 했다. 22살이 되던 해에 최종 합격을 했고 곧바로 군 복무를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부산지검으로 발령을 받아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밤에는 7급 검찰직을 준비하는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1981년 공무원 시험에 국어과목이 추가되면서 또 다시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고등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그에게 국어시험은 커다란 장벽이었다. 7급 검찰직에 매달려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곧바로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가 대학 진학을 결심한 것은 사법시험 응기자격을 법대 졸업자로 제한한다는 공청회 기사를 접하고서였다. 그는 당장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새벽에는 대입학원 단과반을 수강하고 출근했고 사무실에서도 수학책을 펴고 틈틈이 공부했다. 퇴근 후에도 야간 학원에 갔다가 도서관에서 통행금지 시간 무렵에야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그해 8월, 26세의 나이로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획득했다.

    26살에 검정고시 통과… 再修 끝에 경희대 입학
    연탄가스로 모친·형 잃고 통곡하며 마음 다져
    司試 7번 낙방 끝 합격… 변호사 거쳐 교수로


    한번의 재수 끝에 28세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차비가 없어 답십리에서 회기동까지 1시간을 걸어 등교했다. 새벽 6시면 가족들은 공장으로, 리어카 행상으로 일하러 나갔고, 결혼한 누님 집에서 잠을 잔 그는 산꼭대기에 있는 어머니와 형이 계신 집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안개가 가득했던 어느 가을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집에 들른 그는 어머니와 형님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됐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형근이, 네가 고시에 붙는 것을 못보고 죽으면 내가 눈을 못 감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두 눈을 쓸어내리며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두 분의 몫까지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혹독한 가난에 두 생명을 뺏겼다는 괴로움에 틈만 나면 벽제공동묘지로 달려가 통곡했다. 신림동 고시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던 그는 6개월 동안 거처를 3번이나 옮기다가 결국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 경희문센터에서 지내게 됐다. 그 후 7번의 낙방을 맛본 그는 결국 제34회 사법시험에서 합격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교수의 길을 걷다

    변호사가 돼 형편이 나아진 뒤에도 '젊은 꿈'을 잃지 않았다. 서울에서 변호사생활을 하던 개업 초기에 석사학위까지 받았던 그는 전남 해남으로 법률사무소를 옮긴 뒤에도 3년 6개월동안 서울을 오가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교수를 꿈꾸거나 학문을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아니었다. 박사학위까지 획득한 것은 순전히 친구의 농담 때문이었다. "연수원 동기가 30세를 넘으면 대학원에서 잘 안 받아준다고 하길래 얼떨결에 사법시험 합격자 장학금을 받고 대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 물어보니 '농담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농담을 자주 들어야 인생이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잘 짜놓은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니지만 정 교수는 변호사보다 교수로 연구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고 했다. 2008년부터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해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에는 박윤흔 교수와 '최신행정법강의 상·하'의 개정에 공저자로 참여해 개정판을 출간했고 로스쿨이 개원한 후에는 '법조윤리강의'를 출간했다. 지난해에는 '공법기록형 공법소송실무'를 국내 최초로 출간하는 등 연구 활동을 계속해 법조실무 경험을 담은 교재들을 발간했다. 지금까지 17편의 논문을 썼고 2010년 한해에만 논문을 9편이나 썼다.

    대학에서 교수 승진을 위해 5년동안 7편의 논문을 요구하는 점에 비춰볼 때 그의 학문적인 연구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행정법 이론 분야에서 깊은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과 실력있는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토요일에도 연구실에 나가며 한 학기 동안 외출을 한번도 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정 교수는 인생의 전반기에 겪었던 고된 경험들이 지금의 삶에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매일같이 출근하자마자 제비뽑기를 했다. 종이컵에 담긴 몇 개의 계좌번호들 가운데 먼저 손에 잡히는 곳에 5만원의 후원금을 보냈다. 그러다가 '상대방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2만원을 올려 7만원씩을 송금했다. 사무소의 수입은 일정치 않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생명과 같은 식비를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제비를 계속 뽑았다. 주로 장애인시설이나 고아원에 10만~30만원을 보내다가 점차 액수를 늘려갔고 금액이 커진 후로는 매일 보내지는 못했다. 어느 날은 500만원을 보낸적도 있다. "학교에 온 뒤로는 매일 제비를 뽑지는 못하지만 계속해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박지연 기자·사진=백성현> 

    △전남 장흥 출생 △대입 검정고시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서울지검 검찰사무직 근무 △사시34회(연수원24기) △경희대 대학원 졸업(석사·박사과정 수료) △전남지방경찰청 법률상담관 △한국교직원공제회 법률자문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법무부 변호사제도개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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