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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현직 법원장서 행정직으로…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

    28년 4개월 만의 외출…'가 보지 않은 길'에 새로운 기대

    채영권 chae@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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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8일 서울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접견실에서 이성보(56·사법연수원11기) 신임 국민권익위원장을 만났다. 취임 후 보름 남짓인데도 그의 일정은 빽빽하게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전날에는 강원도로 국군 장병 위문을 다녀오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이었던 그는 지난달 11일 김영란 권익위원장 후임으로 취임했다. 현직 법원장이 행정부처의 장으로 임명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관 시절 항상 선두권을 유지하며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그였다.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에 동의하겠느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너무나 뜻밖이어서 꽤 고민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법관으로 공직을 마치는 것도 영예롭지만 사법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부 일을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관 때보다 대외 활동이 많아요.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자리입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든 기색을 비칠 만도 했지만, 그의 얼굴은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사진은 권익위원회 신문고 앞에 서 있는 모습.



    부산에서 태어난 이성보(56·사법연수원11기·사진) 권익위원장은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4살 이후 줄곧 서울서 자랐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암기력이 좋아 어려운 한자도 일찍 터득해 신문을 술술 읽었다. 그래서 별명이 '도사'였다. 선생님이 칠판에 한자를 써놓고 '이게 무슨 자냐'고 물으면 대답은 '도사' 몫이었다. 그가 일찌감치 법관을 천직으로 결정한 계기는 간단했다. "제 모습을 보시고는 어머니께서 '넌 법관 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예전 부모님들은 고시에 합격하면 출세한다고 생각하셨을 테니까요. 그때부터 막연히 판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공부를 하면서 법관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때 쯤엔 확신이 들었죠."

    어릴 때 암기력 좋아 '도사' 별명
    "판사 돼라" 모친 뜻 따라 法大로
    78년 사시합격 후 줄곧 선두주자
    대법관 제청 후보 탈락에도 '담담'
    아쉬움 털고 주어진 일에 충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대학 4학년이 되던 1978년 3월 사법고시에 합격해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소년등과'를 한 것이다. 법관이 된 이후에도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대법관 후보에서 몇차례 미끄러진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변이었다. 그는 "순번이 줄곧 1번이었기 때문에 주위에서도 기대를 많이 해주셨죠.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그는 청주지법원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 퇴임을 앞둔 김영란 대법관의 후임으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로부터 제청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그때 제청된 이인복 대법관은 아주 친한 선배에요. 당시 제청 소식을 듣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이 대법관은 본인이 돼서 미안하다고 말하더라구요. 실력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저보다 훌륭하신 분이에요."

    그는 자신이 대법관 후보에 제청되지 않은 것에 대해 "제가 여러가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전까지 '잘 나갔다'는 것이 어찌보면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법원 구성 원칙에서는 마이너스로 작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며 "하지만 훌륭한 분들이 대법관이 되셨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털어버리고 제게 주어진 자리에 충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를 좌우명처럼 여긴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학교도 그렇고, 시험도 실패한 적이 없고, 사법시험도 일찍 합격했고, 판사로서 줄곧 선두 주자처럼 이 자리까지 왔기 때문에 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판사 꿈만을 꾸며 살아온 그가 28년 4개월만에 법복을 벗고 국민권익위원장으로 가게 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는 "지금은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로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며 "초등학교 동창으로 31년간 친구처럼 곁에 있어 준 부인의 격려도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집사람도 처음 얘길 듣고 놀라긴 했지만 '법원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다했으니 이젠 능력있는 후배들에게 넘겨줄 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곳에서 그동안 키워온 능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다'고 격려를 해줬습니다."

    치과의사인 부인은 그가 초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을 할 때 부회장으로 함께 활동하면서 만났다. 졸업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가 대학 시절 이 위원장이 직접 만든 '아람'이란 이름의 기독교 동아리에서 재회해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 때 교회 목사님께서 '대학 진학 후에도 뿔뿔이 흩어지지 말고 동아리를 만들어서 같이 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때는 동아리 활동이 쉽지 않아 종교단체에서 만드는 동아리만 가능했죠. 제가 동아리를 만들어 여학생들도 섭외했어요. 그런데 같이 만든 친구 하나가 우리 집사람과 치과대학을 같이 다니고 있었던 거에요. 이 친구가 우리 집사람한테 동아리 가입을 권유했는데, 처음에는 안 한다고 하다가 거기 누가 있느냐고 물어 제가 있다고 하니까 가입을 했다고 하더라구요(웃음)."



    큰 난관 없이 탄탄대로만을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다소 내성적인 성격을 빈틈으로 꼽았다.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죠. 그래서 그걸 불식하려고 애를 씁니다. 20여년째 헬스장에서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데 자주 만나는 분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상대방이 인사하면 그때서야 인사하고 그랬죠. 나이가 들면서 바뀌고는 있지만 지금도 그런 면이 있어요. 권익위에 오고 나서 장차관을 만나는데도 내가 사교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제는 '신참'으로서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돌이켜 보면 많은 혜택 받은 삶
    이제 모든 일에 '감사'가 좌우명
    판결문 곳곳 소수자 위한 흔적
    지금 일도 판사 업무와 연관성
    억울한 당사자 권리 회복 최선


    그는 엘리트 법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소수자를 배려하는 판결을 여럿 남겼다.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국내에 입국한 미얀마인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월남전 참전 군인의 고엽제 후유증을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로는 형사단독판사로 근무하던 젊은 시절의 시국사건을 꼽았다. "시국사범에 대한 형벌이 엄했던 시절인데, 학생들 중 서울대 법대생의 어머니가 눈물의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기대하고 잘 키운 아들이라 조만간 법대 위에서 재판을 하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법대 아래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됐더라, 한번만 선처해주면 책임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내용이었죠. 집행유예로 석방을 해줬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자식이라면 반드시 훌륭한 인재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선처한 사람 중에는 현직 국회의원도 있다. "그 분이 당시 재판을 받다가 제게 말했죠. '내가 구속이 돼서 생각을 해보니까 학생으로서 운동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 좀 더 공부를 해서 내가 실력을 키운 다음에 그때 나라와 사회를 개혁하는 일을 하고 싶다. 나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선처를 호소했죠. 진심이면 한번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적이 있습니다. (웃음)"

    이 외에 수업 배제로 인한 교수권 침해를 이유로 대학측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 한전이 원고 소유 토지 상공에 설치한 고압송전선 철거를 명한 판결, 취객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데 대해 국가(경찰)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 법정에서 증인이 당사자에게 상해를 입히게 된데 대해 법원과 검찰 모두에게 증인 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한 판결 등이 있다.

    "억울한 당사자가 법적인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권익위원장과 법관은 업무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권익위에 민원 등을 내면 그것을 우리가 해결해 주죠. 부패방지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행정심판으로 가면 재판과 구조가 비슷해요. 그동안 법관으로 생활하면서 연마한 법적 사고력과 정의감, 그리고 억울함을 당한 시민들에 대한 관심 등 제 역량을 총동원해 직원들과 더불어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글=채영권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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