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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내게 2년 후 계획은 없다" 신임 서울 변회장 나승철

    별을 좋아하던 소년, 최연소 변호사단체장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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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승철(36·사법연수원 35기) 신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에게는 2년 후의 계획이 없다. 그는 회원이 9000명이 넘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사상 첫 30대 중반 회장으로서 감당해야 할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2년의 임기 동안 펼쳐질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했다. 2년 후의 인생은 서울변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난 후 그때 새롭게 주어질 길을 따라 나아가겠다는 각오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지금의 자리도 과분한데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저를 뽑아준 회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요." 지난달 30일 나 회장을 서초동 변호사회관에 마련된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취임 이틀째를 맞은 나승철(36·사법연수원 35기·사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밀려드는 면담 요청과 직원들의 업무보고에 정신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집무실 노크소리에 기자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당선하자마자 곧바로 임기가 시작되니 정신이 없네요. 정기총회에서 회장을 선출하고, 당선자가 인수인계 절차도 없이 다음날 곧바로 취임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정기총회 전에 회장을 선출하고 인수인계를 한 후에 정기총회에서 취임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나 회장은 '반골' 또는 '강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 2010년 9월 나 회장은 당시 경력 6년 미만의 변호사 122명과 함께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30% 이내로 정하고, 사법시험을 존치하라'는 의견서를 국회와 법무부 등에 전달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회 이슈에 대해 일선 변호사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드물었기에 청년변호사들의 단체행동은 변호사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나 회장 본인은 세간의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았다. "글쎄요. 제가 강성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변호사 단체가 무력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문제가 있어도 이를 고치려 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을 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죠. 마치 혁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히 변호사들의 의견을 모아 법무부에 전달한 것일 뿐입니다."

    2년 전 도전했다 26표 차 낙선
    몸 낮춰 때를 기다리는 계기로
    시각 넓어지고 사고도 유연해져
    '司試존치'의견서 국회 등 제출
    사회적 이슈, 직접 문제 제기도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 사건으로 나 회장은 '행동하는 젊은 변호사'와 '나서기 좋아하는 풋내기 변호사'라는 상반된 두 가지 평가를 받게 됐다. 타인의 평가야 어쨌든 나 회장은 당시의 행동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대국민 법률서비스 향상이라는 목표는 로스쿨제도를 도입해 공급이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사법시험 합격자를 1000명으로 늘렸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변호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고, 반대로 변호사들은 사건을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공급이 늘어도 정작 국민들은 변호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수요자는 공급이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공급자는 수요자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면 '경쟁이 후생을 향상시킨다'라는 경제학원리는 작동이 안 되는 거죠. 그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변호사 숫자에만 연연하는 정부의 정책에 일침을 놓고 싶었습니다."

    이 사건 후 이듬해 나 회장은 제91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 도전했다가 26표 차이로 낙선을 했다. 간발의 차이였기 때문에 선거 후 나 회장의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나 회장은 이 시기를 오히려 불비불명(不飛不鳴, 날지도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 몸을 낮춰 때를 기다림)의 계기로 삼았다. "낙선 후에는 오히려 담담하더군요. 이미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아깝게 질 수 있다는 것도 각오를 했었거든요. 조금 더 수련하고 오라는 회원들의 뜻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돌이켜보면 2년 동안 성장하고 담금질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고, 좁았던 시각을 넓힐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은 나 회장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훨씬 더 유연해진 사고로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됐다. 한층 더 성숙해진 나 회장은 더 이상 청년변호사들만의 나승철이 아니었다. "검사 임용 로스쿨원장 추천제 반대나 제1회 변호사시험 평가보고서 작성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앞장섰던 것들이 회원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간 것 같아요. 2011년과는 다르게 선배들도 많이 지지를 해줘 용기가 됐습니다. 선거운동 기간에 북부의 한 사무소에 찾아갔더니 아버지뻘 되시는 변호사님이 저를 보자마자 와락 안더니 '왜 이제야 왔느냐'고 반겨 주시더군요. 낙선 후 2년 동안의 행보를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특해 하시는 모습에 눈물이 났었습니다."



    나 회장의 유연해진 사고는 집행부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능력 위주로 집행부를 구성하다 보니 출신들이 다양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대학 동기와 연수원 동기는 한명도 없더군요. 저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어려운 결단 끝에 국제이사를 맡아주신 최승재 변호사님은 제가 변호사의 꿈을 꾸게 해주신 분이시죠. 그 분이 쓰신 합격수기를 읽고 변호사의 꿈을 키웠거든요. 가장 연장자이신 정순철 회원이사부터 가장 어린 손정혜 인권이사까지 다양한 출신의 변호사들이 한데 어울려져 성공적으로 집행부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에 적대적이라는 그의 이미지는 한동안 희석되기 어려워 보인다. 나 회장은 그러한 이미지가 오해에서 비롯된 선입견이라며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로스쿨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로스쿨 출신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도 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들의 실력을 문제 삼은 적이 없어요. 로스쿨제도의 문제점과 변호사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과거 사법연수원 제도의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그에 따라 제도가 개선됐듯이 로스쿨제도도 계속해서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로스쿨에 적대적' 시각은 오해
    로스쿨제도 문제점 지적일 뿐
    '반골' '강성' 이미지 강하지만
    사색을 좋아하는 정적인 성격
    "빨리 결혼해 어머니께 효도를…"


    변호사단체의 수장으로 특정 변호사 그룹과 적대적이라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다행히 나 회장은 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보였다. "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들과 오해는 풀고 싶습니다.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 한 로스쿨생이 저에게 메일을 보냈더군요. '당신 때문에 로스쿨 이미지가 추락했는데, 속 시원하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이런 글을 써서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시간에 거쳐 답장을 작성해 보냈습니다. 학생이 알고 있는 로스쿨의 문제점을 선배의 입장에서 지적한 것일 뿐 로스쿨생들을 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학생이 다시 메일을 보냈더군요. 기대하지 않은 답변을 받아 놀랍고 고맙다면서 제가 제기하는 로스쿨의 문제점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변호사로서 빈틈없어 보이는 인상이지만, 사실 그의 꿈은 철학자였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학구적인 성향이 강했어요. 술 마시고 남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었죠. 원래 꿈은 철학과 교수였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팽창하는 우주 저 밖에는 뭐가 있을지 항상 궁금했었죠. '우주와 비교해 나라는 존재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나라는 존재는 어떤 생명체의 하나의 원소에 불과한 게 아닐까?' 라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철학서를 들추곤 했었죠." 정적인 성격과 달리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해 여러 운동을 섭렵한 그지만 골프만은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땀을 흘리고 난 뒤의 후련함 때문에 격렬한 운동을 좋아합니다. 한때는 복싱을 하기도 했었죠. 요즘은 수영을 즐겨 하는데, 서울변회의 수장으로 골프를 쳐야 할 상황이 많을 것 같아 걱정이네요."

    나 회장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뒤에 서서 묵묵히 아들을 응원해줬다고 한다. 항상 아들이 선택한 길을 믿어주고, 편하게 해주는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 뿐이다. "서울변회장에 당선된 후 어머니와 미국에서 사는 형이 '됐니? 수고했다'라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더군요. 당선 다음날 평상시처럼 어머니가 차려주신 김치찌개에 두부부침을 먹고 출근했어요. 취임 첫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안방에서 주무시더군요(웃음). 가족들은 항상 묵묵히 뒤에서 지켜만 봐주세요. 어렸을 때부터 제 선택을 믿고 기다려주신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울변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말씀 드리니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러니'라고 걱정하시던 어머니께 빨리 효도를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글=임순현 기자, 사진= 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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