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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라운지] 7년 만에 다시 법조인으로 '3색 인생' 조광희 변호사

    "영화제작, 교수, 정치인으로… 아직도 내 꿈은 진행형"

    임순현 desk@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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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광희(46·사법연수원 23기) 법무법인 원 변호사가 지난해까지 갖고 있던 직함은 3개나 된다. 2007년 '달콤한 인생'과 '너는 내 운명', '스캔들' 등 유명 영화를 만든 영화사 '봄'의 대표로 일하면서 한국영화계의 거물로 불렸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와도 인연을 맺었다. 중앙대에서 2000년부터 10여년 동안 저작권법과 문화예술법을 강의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하지만 올해 조 변호사는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직함 3개를 모두 내려놓고 변호사로 돌아왔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평범한 변호사 생활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조 변호사는 여전히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영화인들과 어울려 하루를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려는 꿈도 아직 진행형이다. 강단으로 돌아가 학생들과 문화와 법에 대해서 다시 논쟁하는 순간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광희(46·사법연수원 23기·사진) 변호사의 이름 석 자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영화진흥법 제정과 영화등급보류제 위헌까지 그가 쌓아놓은 업적은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사 대표로 일한 5년 동안 그는 변호사보다는 영화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다시 돌아온 변호사 사무실은 '재밌는 일'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백발의 중년 변호사에게 어쩌면 영화제작 현장이 평생 제격인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24일 조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괴짜 변호사의 영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법연수원 시절 영화동아리'빛 소리' 창립
    영화 감상하고 관련 판례 정리하며 영화와 인연
    영화진흥법 제정 작업 합류하며 영화계 알려져


    조 변호사의 학창시절은 영화와는 멀었다. 영화를 즐겨보기는 했지만 영화를 업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의 성화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원래 꿈은 경제학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조 변호사와 영화의 인연은 사법연수원에서 시작됐다. "저와 함께 김기중 변호사와 정연순 변호사 등 23기 연수생들이 연수원 최초로 '빛 소리'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었지요. 영화는 빛과 소리로 이뤄진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히로시마 내 사랑'과 같은 고전영화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안목도 넓어졌죠."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활동에만 그치지는 않았다. 예비 법조인답게 영화를 사회에 투영했고, 영화와 관련된 판례를 정리하기도 했다. "당시 영상자료원이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있었어요. 영상자료원에서 영사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 영화감상도 하고, 영화에 대한 토론도 많이 했지요. 당시에는 영화와 관련된 판례도 정리가 안 돼서 판례를 정리하고, 영화 관련 주요 이슈에 대해서 토론하고 글을 많이 썼습니다."

    연수원 수료 후에는 여느 변호사와 같았다. 하지만 영화와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1995년 영화진흥법 제정 작업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법률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업무의 80% 정도를 영화와 관련된 일을 했어요. 스크린쿼터, 표현의 자유, 전반적인 저작권 문제 체계 정비 등 개개 영화사의 법률문제뿐만 아니라 영화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들도 많이 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인들과 신뢰 관계를 넓혀간 것 같아요."



    영화 등급보류제 위헌 결정 이끌며 입지 굳혀
    2007년 변호사 휴업하고 영화사 대표직 맡아
    '해변의 여인' '밤과 낮' '멋진 하루' 등 제작


    영화계에서 그의 명성은 2001년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보류제(구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면서 더 높아졌다. "1996년 영화 사전심의제도가 위헌 결정된 후 만들어진 것이 등급보류제도입니다. 사전검열을 폐지하는 대신 모든 영화는 등급을 받도록 하면서 그 등급책정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사실상 사전검열과 다를 바 없는 제도였습니다. 이 등급보류제가 문제가 된 영화가 '둘 하나 섹스'라는 독립영화였죠. 보통의 상업영화였다면 문제가 되는 장면을 삭제하고 등급을 받았겠지만, 이 영화감독은 독립영화고 하니 아쉬울 게 없어서 소송을 냈던 거죠."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후 등급보류제는 폐지되고 완전등급제가 정착됐다.

    이 사건 이후로 조 변호사는 영화계에서 입지를 더욱 굳혔고, 여러 영화인과 친분을 맺게 됐다. "저도 영화인들을 존중하고 그분들도 저를 신뢰하기 시작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임상수 감독과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1998년 임 감독이 영화 시나리오 중 법률과 관련된 내용을 저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친해졌습니다. 영화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고 얘기도 잘 통해 늘 같이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는 임 감독 외에도 영화 '스캔들'의 이재용 감독과 이창동 나우필름 대표 등 주로 영화배우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결국 조 변호사는 친한 영화인들의 권유로 2007년 변호사를 휴업하고 영화사 '봄'의 대표직을 맡게 된다. "영화계와 신뢰를 쌓아가면서 여러 영화사의 고문변호사로 역할하게 됐죠. 그러다가 2006년 '봄'에서 제작관리부장직을 제안해 함께 일하게 됐고, 이듬해 '봄'의 오정완 대표의 권유로 대표직을 맡게 된 겁니다. 대표직을 맡은 후로 한국영화산업이 전반적으로 투자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조 변호사는 '봄'의 대표로 재직 시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과 '밤과 낮',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등을 제작했다.

    영화사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영화계에도 법률전문가들의 역할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영화계에는 통상적으로 4가지 법률적 이슈가 있어요. 우선 영화도 일종의 저작권이기 때문에 저작권 관련 분쟁이 굉장히 많죠. 사전심의나 등급보류 등 표현의 자유와 한계에 대한 헌법적 문제도 있고요. 또 대부분 영화사들이 영세한 규모여서 각종 투자계약과 관련된 법적 분쟁도 많아요. 창작권과 배급권, 최종 편집권에 관한 분쟁도 잦은 편입니다. 한국 영화시장이 커지면서 이런 문제들을 영화인들끼리 알음알음 해결해 나가던 관행 대신 법률가들의 개입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죠."

    작년 중앙대서 법률 아닌 영화제작 실무 강의
    기회오면 '문화법실무연구회'조직 노하우 전수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캠프서 정치경험도


    조 변호사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봄'의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비록 영화계를 떠나 변호사로 복귀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영화계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요즘 관심을 갖는 부분은 영화제작사와 투자배급사 간의 불공정한 관계이다. "영화 제작의 구조는 쉽게 말해서 배우나 감독 같은 영화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이들을 모아 영화를 제작해 나가는 영화제작사, 그리고 제작사에 투자를 하고 배급을 돕는 투자배급사로 이뤄집니다. 투자배급사들은 영화에 투자를 하는 대가로 영화를 극장에 배급할 권리를 확보하죠. 그런데 이 투자배급사들이 자본을 기반으로 극장까지 소유하게 되면서 영화계의 거대한 권력을 형성하게 됐고, 그로 인해 독과점과 같은 상태가 돼버렸습니다. 자신들이 투자하고 배급하는 영화에 더 많은 극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만 이러한 것들이 공정 규제의 원리에 의해 제한되지 않다 보니 영화에도 부익부빈익빈의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조 변호사는 이러한 투자배급사들의 거대 권력화가 결국은 영화에 대한 사적 영역에서의 사전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작가나 감독의 창조성이 시장논리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것이죠. 힘의 균형이 투자배급사로 쏠리면서 남다른 형태의 영화가 나오기 쉽지 않게 됐습니다. 김기덕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지만 배급이 수월하지 않아 관객이 수만 명에 지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죠."

    조 변호사는 지난해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제작실무를 강의했다. 이전에도 문화예술법이나 저작권법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순수한 영화 관련 강의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1년 전에 말도 안 되는 강의를 맡게 됐어요. 영화사 대표라는 직함 때문에 중앙대에서 영화제작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죠. 영화와 관련된 법률 수업이 아닌 영화제작 자체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오히려 배우는 것도 많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로스쿨에서 문화법을 강의하고 싶고, 문화법실무연구회를 조직해 영화에 관심이 많은 후배변호사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네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꿈도 버리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를 도왔던 것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어요. 한명숙 전 총리를 변호하면서 민주당에 가까운 인사로 분류됐죠. 그분들을 존경하지만 직접 정치를 경험해보니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기득권 정치 세력으로서 공생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훼손된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서는 민주당만의 역할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마침 안철수 후보와 생각이 맞았던 거죠. 안 의원이 자기가 생각한 바를 계속 실천해 나간다면 계속해서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글=임순현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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