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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63주년 특집] 사법시험 역대 수석합격자들

    "법조계 동량"… 대법관 3·검찰총장 1·국회의원 4명 배출
    총 55명 중 여성이 15명… 최근 10년동안은 여성이 더 많아
    30명이 판사로 출발… 11명은 검사, 10명은 변호사직 선택
    서울대 출신 80%로 압도적… 합격자 낸 법과대학 7곳 불과
    상고출신 은행원으로 야간대 편입해 영광안은 '인간승리'도

    좌영길 기자 desk@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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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4일 법무부는 제55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306명을 발표했다. 수석합격자는 이화여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신지원(23) 씨다. 여성으로는 15번째다. 1963년 처음 시행된 사법시험은 지난 50년 동안 2만여명의 법조인들을 배출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유일한 사다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돼 2016년 마지막으로 1차시험이 치러지고 2017년 2·3차 시험이 치러지는 것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올해 초부터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법학교수회가 중심이 돼 사법시험을 존치시키거나 변호사 예비시험제도를 도입해 로스쿨제 이외에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둬야 한다고 청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논의가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시험 도입 초기 한해에 두 번 시험을 치렀던 기간을 포함해 지금까지 51년간 배출된 수석합격자 55명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서성 전 대법관 첫 테이프

    ◇대법관 3명, 3선의원 2명, 검찰총장도 배출='고등고시 사법과'였던 사법고시가 지금의 사법시험으로 바뀐 것은 1963년 사법시험령이 공포되면서부터다. 같은 해 치러진 1회 사법시험에는 총 2115명이 지원해 41명만이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서울대 법대에 재학중이던 서성(71·1회) 전 대법관은 평균점수 63.96을 얻어 약관의 나이에 첫 수석합격자가 됐다. 서 전 대법관은 현재 법무법인 세종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영남대 석좌교수로 재직했던 배기원(73·5회) 전 대법관과 김소영(48·29회) 대법관도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출신이다. 신승남(69·9회) 전 검찰총장은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중 유일하게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법률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춘 만큼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으로 활약한 수석합격자도 많다. 윤재기(69·15회) 변호사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공화당)을 지냈고, 원희룡(49·34회) 변호사는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에서 3선(16~18대) 의원을 지내며 유명 정치인이 됐다. 무려 4차례나 구속됐지만 그 때마다 무죄판결이나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형을 선고받아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은 박주선(64·16회) 무소속 의원도 16·18·19대에 당선된 3선 의원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이영애(65·13회) 변호사는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18대 국회 때 여의도에 입성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곧바로 노동계에 뛰어들어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김선수(52·27회) 변호사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다. 권오곤(60·19회)구 유고전범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은 수석합격자 중 유일한 '수석 3관왕'이다. 그는 1977년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기 전해인 1976년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사법연수원도 수석으로 수료했다.

    권오곤 재판관은 '3관왕'
     
    ◇대부분 판사 임용, 여성합격자는 15명= 수석합격자 55명 중 30명이 첫 직업으로 판사를 선택해 판사 선호 현상은 사법시험이 시작된 이후 꾸준히 이어졌다. 이들 가운데 검사로 임관한 첫 사례는 김진세(71·7회) 전 대전고검장이다. 이어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강지원(64·18회) 변호사 등 11명이 검사 임용을 택했다. 김병헌(77·3회) 변호사가 한양대 법과대학 강사로 일하다가 개업한 것을 시작으로 10명이 공직을 거치지 않고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김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곧장 변호사를 선택한 이들이 모두 90년대 이후에 몰려있는 점은 공직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명은 군복무 중이며 2명은 사법연수원생, 이번에 합격한 신지원(23·55회)  씨는 대학 재학 중이다.

    여성은 13회에 처음 나와
     
    첫 여성 수석합격자가 배출된 것은 13회였다. 이영애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1971년 치러진 13회 사법시험에서 23세로 첫 수석합격자가 된 뒤 판사로 임관했다. 2004년에는 춘천지법원장에 임명돼 사법사상 첫 여성 법원장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1987년 29회 시험에서 김소영 대법관이 수석합격할 때까지 16년간 여성 수석합격자가 배출되지 않았지만 이후 추가로 13명의 여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최근 10년간은 홍진영(32·46회) 대전지법 판사 등 6명이 수석합격을 차지해 사회 전반에 걸친 '여풍'현상을 선도했다.

    수석합격자를 배출한 법과대학은 7개교에 불과하다. 서울대가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55명 가운데 80%인 45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신정치(10회) 변호사와 정수진(42회) 서울남부지법 판사를 배출한 고려대와 김병헌(77·3회) 변호사와 윤재남(39·41회) 서울남부지법 판사를 배출한 연세대는 각각 2명씩 수석합격자를 냈다. 김은미(53·33회) 변호사와 신지원 양을 배출한 이화여대, 조재연(57·22회)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와 이영진(52·32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졸업한 성균관대가 2명씩 수석합격자를 냈다.

    영남대(5회)와 경희대(45회)와 경북대(53회)는 1명씩 배출했다.

    ◇'다른 길' 걷다 수석합격한 사례도= 법조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 발을 내디뎠다가 사법시험에 도전해 수석합격의 영광까지 거머쥔 사례도 적지 않다. 조재연 대표변호사가 수석합격한 과정은 그야말로 '인간 승리'로 회자된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부친을 따라 전국을 떠돌다 덕수상고를 졸업했고, 부친이 작고한 뒤에는 한국은행에 취업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며 방통대에 진학했다. 이후 성균관대 야간과정에 편입한 그는 79년 은행일을 그만두고 사법시험준비를 본격적으로 한 끝에 1980년 22회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실상 '고졸 직장인 신화'를 일궈낸 사례다.

    강지원 변호사는 공무원 생활과 수험 생활을 병행했다. 행정고시(12회) 합격한 후 5년여간 사무관으로 일하던 그는 부산세관에서 일하던 1976년 치러진 18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했다. 검사로 재직 중이던 1982년에는 판사였던 김영란(57·사법연수원 11기) 전 대법관과 결혼해 '제1호 판·검사 부부'로 기록되기도 했다. 수석합격자 중 유일하게 공대 출신인 유성수(65·17회) 변호사는 현대조선에 입사한 뒤 엔지니어의 길을 걷다가 뒤늦게 사시에 도전해 합격했고, 이후 검사장까지 승진해 의정부지검장을 지낸 뒤 지난 2006년 퇴임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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