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로펌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공정거래법(경쟁법) 법리에만 집중하지 않고 해당 사건이 속한 산업 분야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는 점이다. 공정거래팀만의 단독 플레이보다 같은 로펌 내 유관 전문팀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유형별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법과 산업을 아우를 수 있는 전문성을 키우는데 힘쓴 결과라는 것이다.
기업을 대리하는 대신 공정거래위원회 측에 서서 방어전략을 특화해 전문성을 쌓아가는 로펌들도 있다. 이들은 전략적 차원이나 공익적인 측면에서 공정위 대리를 선택해 공정거래 분야에서 나름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다른 분야 팀과 협업체제 구축', '유형별 전문가 양성' 등으로 성과= 공정거래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한 김앤장은 오래전부터 전사(全社)적 차원에서 협업체제를 구축해 공정거래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고객이 속한 산업 분야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공정거래팀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과 금융 등 각 산업분야 전문팀들이 공정거래사건에서 협업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카르텔 사건인 '흑연전극봉 사건'과 2007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획기적인 판결이 내려진 '포스코 사건', 국내 최초로 공정거래법상 동의의결 제도가 적용된 지난해 '네이버 사건' 등에서 성과를 거두며 공정거래분야를 선도해왔다. 박성엽(54·사법연수원 15기), 안영진(52·16기), 황창식(53·17기) 변호사 등 100여명의 공정거래분야 전문 변호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40여명의 변호사와 전문가로 별도의 공정거래그룹을 만든 율촌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공정거래 규제 유형별로 전문가를 양성할뿐만 아니라 '사업계획 단계 자문'에서 '기업결합절차 대리', '공정위 조사 및 심의단계 대응', '공정거래소송'까지 전 단계별로 전문가를 배치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현대 하이스코와 삼성생명, 신한생명보험, SK네트웍스 등을 대리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공정거래사건을 전담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박해식(56·18기) 변호사가 그룹을 이끌고 있다.
태평양 공정거래팀은 공정거래사건의 해결뿐만 아니라 관련 실무 해설서를 발간하고, 공정거래 관련 법령의 입법컨설팅 업무를 추진하는 등 다방면에서 공정거래분야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12년 대규모유통업법에 관한 실무 해설서인 '대규모유통업 이론과 실무'를 출간하고, 판매장려금 규제 기준에 관한 입법의견을 공정위에 제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현대오일뱅크의 담합 과징금 소송'과 '한화생명보험과 동양생명보험 예정이율 및 공시이율 담합 시정조치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오금석(51·18기) 변호사를 필두로 30여명의 변호사와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화우 공정거래팀은 공정거래분야를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및 불공정거래행위 등 단독행위 △부당공동행위(카르텔) △기업결합 △하도급거래 △가맹사업 및 유통업 △방문·다단계판매 및 하부거래 등 특수분야 등 6개 분야로 세분화해 전문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세분화된 전문그룹이 하나의 공정거래사건에서 유기적으로 협업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시아 지역 공정거래전문가 단체인 아시아경쟁연합(ACA)의 회장을 맡고 있는 윤호일(72·사시 4회) 대표변호사가 이끌고 있는 공정거래팀에는 변호사와 전문가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공정위 대리 '방어전략'으로 특화= 지평은 공정거래사건에서 기업이 아닌 공정위를 주로 대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총 13건의 사건에서 6건을 방어해 48억3233만4132원의 과징금을 지켜냈다.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대형로펌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지평은 일찌감치 공정위를 대리하는 쪽을 선택해 전문성을 쌓아왔다. 경쟁로펌에 비해 늦은 2005년 공정거래팀을 신설한 지평은 다른 대형로펌들이 진출하지 않은 틈새시장, 바로 공정위 대리 분야를 공략해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정위 방어에서 얻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현대 하이스코 사건 등에서 기업 측을 대리해 성과를 내기도 했다.
강호는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회사 철학에 따라 공정거래사건에서는 아예 공정위만 대리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판례 연구와 공정거래법 세미나 참여 등 공정거래분야 이론과 관련된 전문성과 경험을 쌓는데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공정위 송무담당자와 심사관 등 사건 관련자들과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승소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9건의 사건에서 총 6건을 방어해 47억4100만1299원의 국가재정을 지켜냈다.
2007년 설립된 '국가로펌' 정부법무공단의 성과는 독보적이다. 9건의 사건에서 공정위를 대리해 모두 승소해 승률 100%를 달성했다. 공단이 지켜낸 국가재정만 71억800만1398원에 달한다. 조민현(52·17기), 최상철(51·19기), 박시준(39·34기), 이국현(33·38기) 변호사 등 변호사 7명이 팀을 구성해 공정거래사건을 수행하고 있다. 공정거래사건의 방대한 기록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검토하고 유사 판례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리 함께 해당 산업분야 구체적 특성 등 전문성 확보
카르텔·하도급거래 등 특수 분야 별 전문그룹도 운영
"공익" 내세워 공정위만 대리… 방어 전략으로 특화도
◇주요사건 대형로펌 싹쓸이, 공정위 고군분투= 대형로펌들의 공정거래분야 역량 강화로 기업 등 고객들의 만족도는 크게 올랐지만, 대형로펌으로의 사건 쏠림현상이 심화돼 중소로펌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조사결과 과징금이 10억원 이상인 사건 73건 가운데 대형로펌이 관여한 사건은 93.2%에 해당하는 68건에 달했다. 주요 사건 대부분이 대형로펌의 차지인 셈이다. 서초동의 한 중소로펌 대표변호사 A(44)씨는 "대형로펌들은 공정거래분야 전문성과 경험을 쌓는데 멈추지 않고 공정위 출신 전문가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해 주요 사건을 싹쓸이 하다시피 하고 있다"면서 "그나마 대형로펌들이 관여하지 않은 사건은 전관 출신 개인 변호사들의 차지여서 중소로펌들에게 공정거래사건은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형로펌들의 공정거래분야 역량 강화는 공정위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대형로펌들이 법리뿐만 아니라 해당 산업분야와 관련된 전문성까지 갖춰 공격적으로 소송을 수행하기 때문에 공정위가 방어해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실제로 조사된 113건의 공정거래사건 가운데 공정위가 승소한 사건은 절반 수준인 60건(53.1%)에 불과했다. 2건 가운데 1건은 패소해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처분이 취소되고 있는 셈이다. 한 공정거래 전문가는 "항간에 '공정위에 소속된 공정거래 전문가보다 김앤장에 소속된 공정거래 전문가가 더 많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떠돈다"며 "대형로펌에 맞설 수 있는 공정위의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