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자유무역협정(FTA) 상대국들이 법률시장 3단계 개방 법안(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의 사실상 전면수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이상민)에 제출했다. 이 위원장은 외교적 마찰 등을 우려하며 시간을 갖고 개정안을 검토해 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 위원장을 만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대해 "(대한민국 법률시장을) 더욱 완전하게 개방하는 법안을 채택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공식 전달했다. 이 서한에는 리퍼트 대사를 비롯해 찰스 헤이 주한 영국 대사, 게하르트 사바틸 주한 EU 대표부 대사, 라비 케워람 주한 호주 대리대사 등 4명의 외국 대사가 공동서명했다. 리퍼트 대사 등은 서한을 통해 "현재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은 합작법무법인(조인트벤처·joint venture) 설립을 지연시키며, 외국 로펌의 한국 내 조인트벤처 설립을 제약하는 조건을 담고 있다"며 "미국 등 FTA 상대국의 이해관계와 한국의 서비스 주도형 경제 전환을 이끌 자유무역에 대한 한국의 공약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의 법률시장을 국제적인 로펌에 개방하면 법률서비스 시장 강화와 함께 아태지역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는 한국 내에 더 많은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 영역 확대 및 외국인 투자 유치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서한에서 문제삼은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의 주요쟁점은 △최대 49%로 제한된 외국로펌의 조인트벤처 지분율·의결권 제한 △설립 후 3년 이상으로 제한된 조인트벤처 참여 국내외 로펌의 업무경력 △조인트벤처의 업무범위 제한 등 크게 세 가지다. 법률시장 개방이 가져올 국내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조치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조인트벤처 지분율 제한에 대해서는 "외국 참여자의 투자에 대한 경영권 행사를 막는 조치", 조인트벤처 참여 로펌의 업무경력 제한에 대해서는 "(진입장벽으로) FTA 이행을 3년간 지연시킬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제출된 서한에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로펌 연합체인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회장 이원조·외자협)가 지난해 10월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법사위에 제출한 의견서도 함께 동봉됐다. 외자협은 당시 "(개정안은) 조인트벤처의 무한책임, 합작 당사자의 자격요건, 업무제한 및 내부지배구조의 요건 등을 갖춰야 하는 매우 제한적인 조건의 조인트벤처만을 허용한다"며 "한국 법률시장의 진정한 개방이나 국제화된 법률서비스 제공을 통해 법률서비스 수요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이 위원장은 "FTA 상대국들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무부·외교부 등 관련 부처와 주한 외국대사관들의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며 "(법률시장 3단계 개방 일정을 고려할 때) 5월까지만 법안이 통과돼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심의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외국 대사들이 우리 국회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일부 비판 여론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국의 이익을 설득하고 나설 수 있다. 주권침해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여러나라와 FTA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낙후된 시각"이라며 "외교적 압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이날 성명을 내고 "4개국 대사들이 자국 로펌의 이익을 앞세워 국회를 항의 방문한 것은 대한민국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국 로펌을 위해 국내 로펌에 대한 차별을 강요하는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도 전날 성명을 통해 "외교적 마찰 불사 등을 운운하며 국회의 정당한 입법권 행사에 항의한 4개국 외교사절의 행동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며 "18일 항의 서한을 주한 미국대사관 등 4개 공관에 보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