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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희

    예지희 판사의 오피니언

    일응의 기준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교통, 산재사고 손해배상실무연구회에서는 지난 몇 년간 교통, 산재사고에 관한 피해자의 손해배상금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위자료 책정의 기준이 되어 왔던 8000만 원을 물가변동률 등을 감안해 1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합의하였다. 다만, 이는 교통, 산재사고에 관하여 보험회사들이 책정하는 보험금 계산과 연동하는 것으로서 그 시초는 지난 1990년도 초반 경 2000만 원을 기준으로 하였던 것이고 차츰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한 손해보험 계산방식과 같은 선상에서 간헐적으로 상향조정 되어 왔다. 따라서 통상 일반 민사사건에서나 가사사건에서 언급하고 있는 위자료의 산정기준 금액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 같은 기준은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계류되고 있는 손해배상사건에서 담당 재판부들이 일

    기억과 망각

    최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베를린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유대인 해방 70주년 기념회에서 사과의 발언을 한 것을 두고 국내외 여론은 같은 2차 세계 대전의 전범 국가인 일본의 아베 수상이 보이는 모습과 대비하고 있다. 메르켈이나 그 이전 독일의 대표들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인 유대인 학살행위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독일의 책임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해온 반면, 일본 정부의 대표들은 전쟁당시 침범국가에 대한 '사과' 등에 인색하면서 보수화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에 대하여 일본의 작가 몇 사람은 '기억과 망각'이라는 책에서 양국의 전쟁 당시의 행태가 다름은 물론 전후 주변국의 이해와 용서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하였던 독일과 미국과만 이해관계가 있었던 일본의 사정이 다른 점 등을 거론하면서 나름의 이

    분노의 조절

    '분노하는 사회'. 최근 몇 년간 언급되어 온 키워드이기도 한데, 연말 연초에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들 중 두 가지 사건이 그와 관련되어 떠오른다. 하나는 국내 한 항공사 기내 서비스 부족 시비로 인한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인에 대한 의심으로 부부 간에 불화를 겪고 있던 한 중년 남성이 의붓 딸들을 인질로 잡고 시비를 하다가 결국 딸을 살해한 사건이 그것이다. 각 사건의 배경이나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아직 언급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두 사건의 가해자 모두 분노하고 있었다는 점 말이다. 분노라는 감정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분노는 인간의 뇌 중 '편도체'에서 시작되는 것으로서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거쳐 표출되는데,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으나 가장 바람직하게 자기 내부에

    2015년을 맞이하여

    판사들에게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된 것은 1993년 중순 이후이니 법원과 컴퓨터가 같이한 것이 이제 만 21년이 된 셈이다. 처음 pc가 보급될 때만 하여도 그 편의성이 판결문 작성을 도와주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점차 코트넷이라는 정보의 공유 단계를 지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도 모범사례로 거론되는 전자소송방법을 만들어서 소송에서 실시간으로 직접 활용하고 있다. 판사들은 물론 변호사들도 그로 인하여 더 이상 6,7 책 이상 되는 기록을 힘겹게 들고 다니는 보따리장수가 될 필요가 없으니,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군다나 2015년부터는 증인신문조서도 속기를 하여 저장되고 이에 상급심 법원은 직접 심문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그 증인신문 당시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게

    시간을 늘리는 방법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은 왔다. 거리에서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그 어느 때보타 매운 칼바람이 문득 연말이 왔음을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이때쯤이면 꼭 하게 되는 말들이 있다. "새해 인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정말 세월이 빨라.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인지…." 흔히 지난 1년을 살아온 세월 수로 나누게 되니(1/나이) 이는 당연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것뿐이고 실제로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여러 가지 '시간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관한 다수의 가설 중 나이와 회상효과론이 있다. 우리 몸속에는 여러 가지 생리적 시계들이 똑딱이며 가고 있는데, 즉, 호흡, 혈압, 맥박, 수면, 신진대사,

    열정과 냉소

    법정에서 최선(最善)의 변론행위는 어떤 것일까? 새삼 어제 재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자문하게 되었다. 물론 각 사건 당사자 혹은 그 대리인들이 법정에서 다소 특이한 변론행위를 하더라도 재판기일 하루 평균 40~50건 이상을 매주 1,2회씩 진행하는 일상이고 보면 보통은 특별히 기억에 남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 기억에 남는 사건은 이미 종전에 몇 차례 변론이 있었고 어제는 증인신문을 하는 변론기일이었는데 그 중 한쪽 당사자의 변호인은 종전 기일에서 재판장이 구두 변론을 요청하면, "준비서면에 쓴 것과 같습니다"라고 아주 간단하게 변론을 마치시던, 무척 냉소적인 변론행위를 보이시던 분이다. 그런데 어제 증인신문기일에서는 종전과 달리, 반대신문을 하면서 증인과 계속 대립각을

    최고의 덕목

    스페인의 14세기 고전 산문학을 대표하는 '후안 마누엘'이라는 작가가 쓴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보면, 충직한 신하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바빌로니아 술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술탄은 여러 악한 사람들의 조언에 빠져 신하를 아주 먼 곳으로 임무를 보낸 후 그 신하의 아내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다가 그 아내로부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답을 알려 주면 지시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긴 여정을 갖고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그 답을 얻었다고 깨달으며 의기양양하게 귀향하여 그 아내에게 말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품 중 으뜸은 '부끄러움'이라고. 그러자 그 신하의 아내는 울면서 청한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분이신 술탄께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법정에서의 대화 기술

    법정에서의 대화. 사실 법정에서는 당사자의 소송행위, 재판부의 소송행위가 있을 뿐 국어사전의 개념으로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를 주고 받음'이라는 의미인 '대화'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구두변론이 활성화 되고 있는 요즈음 법정에서 재판부의 석명과 당사자 혹은 대리인들의 답변 등 변론행위가 왕왕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 질 때도 있고 보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대화(변론행위)의 예의', '대화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장을 상대로 '부적절한 변호사의 법정언행 사례들'을 취합한 바가 있었는데,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었으나, 그중 대화의 기법과 관련된 것들이 다수 눈에 띈다. '변호사가 변론기일 직전 방대한 분량의 서면을 제출하여 판사가 변론기일에서 이를 구술로 요약 진술할

    못 듣는 사람, 안 듣는 사람, 편의적으로 듣는 사람

    공교롭게도 오늘 진행한 사건들 중 3건의 한쪽 당사자들은 청각장애가 있었다. 먼저 첫 번째 사건. 피고는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한 후 첫 변론기일인 오늘, 본인의 청각에 문제가 있다면서 친 오빠를 소송대리인으로 대동하고 나왔다. 일단 합의부 사건에서는 소송대리 허가가 불가능함을 알려 준 후 그 오빠를 편의상 열석하게 하고 원고 쪽 대리인에게 몇 가지 석명을 구하고 있자니 피고석이 웅성웅성한다. 재판부의 석명이나 원고 쪽 진술에는 관심없이 그들끼리 계속 얘기를 나눈다. 그래서 그 정도 청력이라면 변론능력도 있어 보인다고 하자, 피고는 우측 귀는 그런대로 들리는데 좌측 귀가 안 들린다면서 갑자기 정면을 보고 앉아 있던 자세를 고쳐 뒤통수가 정면을 향하게 앉는다. 그러다가 큰 소리로 원고를 성토하기 시작하고 결국

    어떤 눈물

    최근 중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이 문제가 된 사건을 진행했다. 피해자와 부모가 학교측이 자신들의 요청을 외면하는 바람에 불가역적인 정신적인 손해를 입었다며 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원고들은 피고측에 상급 학년 진급 시 가해학생과 같은 반에 배정될 될 경우 분반을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피해학생은 정신적으로 우울증 및 자해 등 문제를 야기하게 되어 정상적으로 중학교 졸업을 못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쟁점은 피고들이 원고들의 분반 요청을 반드시 받아들였어야 하는지, 피고 입장에선 나름의 판단으로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믿었거나 별거 아닌 것이라고 보고 원고들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 잘못은 없는지 등이었다. 첫 변론기일에서 원고측 대리인은 피해자인 원고 본인신문을 신청하였다. 피고측 대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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