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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지

    임선지 판사의 오피니언

    차가움을 간직한 불꽃, 뜨거움을 동경하는 얼음

    차가움을 간직한 불꽃, 뜨거움을 동경하는 얼음

    "좋아, 차라리 난 지옥으로 가겠어!" 흑인노예 짐과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던 허클베리 핀, 그는 도망하는 노예를 도와주면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떨어진다는 가르침을 한 점 의심 없이 믿으면서도, 친구 짐의 해방을 돕기로 결정한다. 바로 그 순간, 동네의 부랑아 허크는 또래들의 영웅인 톰 소여를 뛰어넘게 된다(개인적으로는, 이때 허크가 도덕적 우월감이나 스스로 옳다는 확신에 사로잡히지 않아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짐 또한 자유로운 삶을 누려야 한다는 소망이나 친구에 대한 소박한 우정을 지키기 위하여 소년 허크가 견뎌 내야 했던 도덕적 갈등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법질서를 배반하였다는 양심의 가책이 안쓰럽기만 하다.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민주

    재판, 말로 할 수 없는 일을 말로 하는 것

    재판, 말로 할 수 없는 일을 말로 하는 것

    재판은 옳고 그름을 따져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리의 치밀함, 판단의 날카로움, 표현의 정연함은 판사라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덕이다. 그런데, 재판은 사건과 판례, 논리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람이 관련되어 있어서 이 같은 미덕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법정에서 늙어 가면서 깨닫는 것은, 재판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말로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논리로만 설득되지 않는다. 마치 설득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건 논리의 정연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말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 수용하는 것이거나 혹은 말발이 달려서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네 말이 맞다. 그런데 나는 네가 싫다"는 것이 보통 사람의 정서다. 판사의 말이라 하여 어찌 다르기만 하겠는가? 내

    12명의 성난 사람들 × 5 = ?

    미국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아버지를 살해하였다는 죄로 한 라틴계 소년이 재판을 받는 이야기다. 처음 11:1로 의견이 갈린 12명의 배심원들 중 무죄의견을 낸 단 1명의 배심원…. 그는, 찜통같이 무덥고 밀폐된 평의실에서 속히 벗어나고 싶어하는 11명의 배심원들을 상대로 검찰 측 증거의 허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현장에서 수집된 흉기 등 증거물을 가지고 공소사실을 되짚는 과정을 거쳐 동료들을 설득하여 나간다. 이 영화는 상식을 갖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제의 장점을 옹호하는 영화일 수도, 배심제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영화일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가 1957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인데도 매우 흥미진진하다는 점과 함께, 민주주의의 참모습은 다수결의

    친절과 공정 사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 사람 대하는 일이다. 그래서 직접 고객을 응대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노동 종사자들의 스트레스는 클 수밖에 없다. 법원은 각종 송사로 마음의 짐을 가득 안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므로,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법원직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대립당사자들 사이에서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어느 한쪽의 민원을 해결하다가는 편파적이라는 시비조차 일기 십상이므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친절하면서도 동시에 공정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친절과 공정, 어떻게 그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가능한 한 친절하면서도 동시에 공정하도록 노력해

    다시금 희망에 관하여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쉼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이 의제적으로 구분한 단위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일상적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더욱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해를 맞이하여 개인으로서의 필자는, 성인의 가르침 속에 등장하는 이른바 세 가지 보물을 지닐 수 있으면 좋겠다. 첫째는 어머니 같이 기르고 감싸주는 마음으로서의 자애(자·慈)를 품을 수 있기를 소망하고, 둘째는 물자, 생각, 행동 등 그것이 무엇이건 함부로 하지 않는 고요함과 차분히 아끼는 자세인 검약(검·儉)을 실천하기를 원하며, 셋째는 남에 앞서려 하지 않는 기본(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을 지키기를 바란다. 이 세 가지 보물의 부스러기라도 지닐 수 있다면,

    따뜻한 겨울

    따뜻하기로 치면 봄과 다툴 수 없겠지만, '따뜻한'이라는 형용사가 가장 흐뭇하게 어울리는 계절은 겨울일 것이다. 바야흐로 송년회의 달이자 묵은 미제사건들을 다시금 챙겨보는 계절이 왔다. 혹자는 나이 듦을 쓸쓸하게 생각하며, 하얗게 세어가는 귀밑 머리카락을 들추어 보거나 예전 같지 않게 침침해진 눈을 비빌지도 모르겠다. 엄동설한의 추위를 녹여낼 온기와 세월의 무상함을 견뎌낼 초연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선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정이 있다. 12월 일정표를 빼곡히 채우는 각종 송년회, 연찬회, 연말 특별강연회와 지인들과의 연말 모임…. 우리는 거기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앞으로의 희망과 격려를 주고받으며 또 한 해를 살아갈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 다음으로,

    어제, 오늘, 내일

    '성격도, 생각도, 일하는 것도 남자 같다.'는 표현이 한때 여성법조인에 대한 칭찬으로 통하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남자같이, 성격도 원만하고, 생각도 합리적이며, 일하는 것도 믿음직스럽다.'는 뜻으로서, 남성성을 가치기준의 표준으로 두던 시절의 일이다. 이제는 여성법조인이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이상 덕담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불편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 시대가 온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여성으로서의 시각과 경험 그 자체의 독자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국법학원이 지난 10월 24일부터 이틀간 '근대 사법 120년-성찰과 새로운 지향'을 대주제로 하여 제9회 한국법률가대회를 개최했다. 10월 25일에는 '여성의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분과 세미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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