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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신

    정용신 판사의 오피니언

    순간에서 영원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부모가 되고서야 뒤늦게 삶과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오롯이 내 책임인 듯한 생명을 두고, 문득 내일도 살아서 아이들을 볼 수 있음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우리네 삶은 이다지도 유한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서글프기도 하였다. 자유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닌데,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는 것도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주어진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느 노(老) 천문학자는 말한다. 빅뱅으로 우주가 처음 생겨났고, 그때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만 있었다. 그 원소들이 무작위로 부딪혀 덩어리를 만들고, 덩어리가 뭉쳐 별이 탄생하고, 수명을 다한 별이 폭발하는 핵융합 반응을 거듭하여 탄소도, 질소도, 산소도 생겨났고, 이 원소들이 뭉쳐서 지구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슬픔이여 안녕

    슬픔이여 안녕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듯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법원에 오는 분들이 있다.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입니다. 정말 괜찮으신건가요?" 조심스레 물어보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몇 년 지났으니 괜찮다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마음이 무거워 심리검사를 명하고 한참 후 보고서를 받았다. 중증의 우울감, 그러나 법원의 심리상담만으로는 도울 수 없고, 전문가의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 앞에 그저 무력하고 안타까웠다. 그는 아마 늘 그래왔을 것이다. 괜찮다고, 살다보면 그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니, 혼자 극복할 수 있다고. 처음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대했을 때, 그저 슬픔을 극복한 이야기로 기대하였다. 아마도 무의식 속에서, 슬픔은 빨리

    부부에서 연인으로

    부부에서 연인으로

    "우리의 연애는 이렇게 끝이 났다." 우연히 본 광고영상에서 신혼부부의 결혼식 장면 직후 이어진 문구이다. 가사재판연수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자녀가 태어난 이후 부부사이의 만족도는 최하가 된다"고 강의하셨던 내용과, (개인적으로 집중육아기를 거치면서 삐딱해져) 주인공들이 애절하게 연애하다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도 자동적으로 그 이후의 남루한 일상을 연상했던 기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가사법정에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특이한 분들도 계시지만,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더 많다. 그 중 안타까운 경우가, 영유아를 키우느라 힘든 젊은 엄마들이 남편에게 어려움을 다소 높은 수위로 표현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연애시절의 부인과 아이 엄마인 부인이 동일인물이 맞는건지, 채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사랑의 종말을 셀 수 없이 지켜보다 보니, 그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도 많은 사연을 듣게 된다. 최근 데이트폭력에 관한 기사를 자주 접하면서, 분명 신호가 있었지만 사랑을 더 믿고 싶어했던 분들의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같은 길을 가시는 몇몇 분들에게 느꼈던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오랜 기간 정신분석을 체험한 작가 김형경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라는 소설에서,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맺기 방식을 토대로 살아가며, 정신분석가들에 의할 때 인간 정신이 생후 3년까지 60%, 여섯 살까지 95% 형성된다고 썼다. 또한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은, 적지 않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준다고 한다. "너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비밀과 거짓말

    비밀과 거짓말

    가정법원에 오시는 분들은 슬프게도, 비밀이 많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협의이혼이나 재판상 이혼사건에 반드시 제출되는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아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면서 '이 아이는 우리 첫째랑 같은 학년이구나', '이 아이는 우리 둘째처럼 유치원에 다니겠구나', '이 아이는 어려서 엄마 아빠를 많이 찾겠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저려온다. 부모님의 이혼에 관해 아이들과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많은 분들이 아이가 크면 천천히 알리겠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업무로 인해 이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이혼을 선언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아이의 심리검사결과지를 요청한 사건들이 있다. 아이가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괜찮은 상태이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설혹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한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이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아 괴로웠던 적이 있다. 그러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훈육을 위해서는 아이의 행동과 존재를 분리하여야 한다는 구절을 보는 순간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다. 부모는 사랑하는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려 노력한다. 꾸짖는 것은 아이의 행동일 뿐,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여러 종교의 성인들께서 우리네 인간을 사랑해주신다면 그런 방식이 아닐지, 법관이 구도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은 그런 마음으로 재판에 임하라는 의미가 아닐지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의 꾸지람을 미움으로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꾸지람이 잘못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도준아, 너는 이렇게 물었지.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는 방법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거냐구요!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성공하는 방법,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방법, 혼자 잘 살기보단 다같이 잘 사는 방법, 제대로 존중해 주는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거요…. 한 학년 500명 중에 250등하면 그냥 보통 아니에요? 보통사람인데 그냥 보통으로 살다가 죽으면 안돼요? 왜 우월해져야 해요? 우월하지 않으면 루저취급하는, 보통사람을 바보 만드는 이런 세상에서 나는 날 어떻게 해야 사랑할 수 있어요? 가르쳐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이시잖아요!" 여기에 어느 선생님이 답하셨다. "그래. 세상을 살다보면 너에게 불안과 공

    다시 태어남에 관하여

    다시 태어남에 관하여

    '부모복이 반(半)복'이라는 옛말이 있다. 존속살해의 형사사건, 존속폭행의 가정보호사건, 존속에 대한 상속재산분할사건, 자녀가 절절한 진술서를 제출한 이혼사건들…. 수많은 사건의 이면을 통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유년기에 형성된 세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자녀의 인생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고스란히 지켜보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디까지인가 의문이 들었다. '카우아이섬의 아이들'이라는 실험이 있다. 하와이군도 서북쪽 끝에 위치한 카우아이섬은 대대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으며, 주민 대다수는 범죄자, 사회부적응자, 정신질환자였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이 섬에서 1955년에 태어난 모든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태아때부터 30살 이상의 성

    여한이 없기를

    여한이 없기를

    요즘도 학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서를 묻는 시험문제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망설임 없이 답이 떠오른다. 그것은 한(恨)이라고. 부끄럽게도 그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보지 못한채, 우리민족의 반만년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수많은 외침과,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6.25 전쟁의 상흔, 그리고 이어진 군부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국사교과서의 페이지들로 기억해왔다. 그러나 법원에서 만나는 분들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와 그 근원을 탐색할 때마다, 강물처럼 도도히 후대로 흘러오는 감정의 눈물과 마주쳐 마음이 먹먹하다. 전쟁으로든, 독재로든 혹은 그 무슨 이유로든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 앞에 분노를 느꼈으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어느 아버지는 억눌린 분노를 쉬

    고통에 직면한다는 것

    고통에 직면한다는 것

    4월을 맞이하며 얼마 전 읽었던 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1998년 독일 에쉐대(Eschede)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최악의 참사라는 열차사고로 101명이 사망하였다. 바퀴 손상과 부실한 열차 점검이 원인이었다. 유가족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철도청을 상대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재판을 진행하면서,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기차역에 가지 못하고 기차를 타지도 못하는 회피 반응을 보였다. 생존자와 유가족이 회피 반응을 이기고 트라우마의 장소에 머무는 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내적인 치유력 없이 사건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오히려 상처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사고 직후부터 생존자와 유족들의 심리치료를 장기간 진행하였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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