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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정근 변호사 김앤장법률사무소

    황정근

    김·장 법률사무소 해군법무관 (1986-1989)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89-1991)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1991-1993)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판사 (1993-1996)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 (1996)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1996-1998)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8-2000)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부장판사 (2000-2002)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2002-2004) 법률신문 편집위원·논설위원 (2003-현재) 김·장 법률사무소 (2004-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행정심판위원 (2006-현재) 저서/활동 인신구속과 인권 (법영사, 1999) 선거부정방지법 (법영사, 2001) 정의의 수레바퀴는 잠들지 않는다 (예옥, 2013)

    황정근 변호사의 오피니언

    법정 안으로 들어간 예술

    때는 서울서부법원이 공덕동 청사로 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96년이다. 영장당직으로 판사실에 늦게까지 혼자 남아 있을 때면 영 기분이 이상하였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그 터 때문이다. 일제시대 경성형무소가 있던 자리다. 독립운동가들이 거기서 죽어나갔다. 해방 후 마포형무소·교도소가 되었다가 1963년 안양교도소가 생기면서 폐쇄된 후 경서중학교가 들어왔다. 1970년 현충사 수학여행 길에 버스가 기차와 충돌하여 경서중학생 4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 여파로 나는 중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 10년 후 1980년에는 경서중 1학년생 이윤상 군이 같은 학교 체육교사에게 유괴 살해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터가 문제여서인지 학생이 줄어든 경서중은 1992년 딴 데로 이

    재판관 이름에 걸맞은 재판관

    '절망의 재판소'는 일본에서 올해 초 출간되어 아마존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법과대학원 교수다. 1954년생으로 도쿄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9년 도쿄 지방재판소 판사보로 임관하여 33년간 엘리트 재판관으로 일했다. 워싱턴대 연수를 다녀오고 최고재판소 사무총국 민사국 판사와 최고재 조사관으로 근무했다. 재판소 계층구조의 상층부로 가는 걸 포기하고 연구와 글쓰기를 통해 '옳은 소리'를 하다가 눈 밖에 난 그는 2012년 결국 교수로 변신했다. △내가 재판관을 그만 둔 이유(자유주의자, 학자까지 배제하는 조직의 구조) △최고재판소 판사의 숨겨진 맨얼굴(겉모습과 숨겨진 속내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권모술수의 책사들) △'감옥' 속의 재판관들(정신적 '수

    사법에 의한 입법, 입법에 의한 사법

    40여년 전 미국에서 사법에 의한 입법(judicial legislation)이 문제 되었다. 낙태에 대해서는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보는 입장(pro-choice)과 태아의 생명권 문제로 보는 입장(pro-life)으로 나뉘는데, 연방대법원은 1973년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텍사스 주 법률에 대해 7 대 2로 임신 후 3개월까지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유명한 로우 대 웨이드 사건이다. 낙태를 어느 시점부터 금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형적인 입법의 영역이다. 사법부가 법률에다 3개월이라는 경계선을 그어넣는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다수의견이 3개월의 경계를 정한 것에 대한 소수의견의 비판은 참 신랄하다. "다수의견은 헌법의 원래 의도보다 더 깊숙이 사법부가 개입하여 스스로 법률을 만드는

    틀 밖의 상상력

    직업변호사로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언제일까.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고 하는 분도 있다. 어느 선배 변호사는 두둑한 보수를 받은 사건의 수사기록을 읽을 때면 그 글자가 그렇게도 크게 보일 수 없다고 능청을 떤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1심과 2심에서 내리 졌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판결을 받았을 때를 들고 싶다. 사실심을 거치며 도합 여섯 분의 법관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배척했던 주장을 대법원이 결국 알아주었다는 데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 때문이다. 파기판결을 받고 기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작년 11월 변호인인 내가 받은 대법원 판결의 이유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가 아니라, '취지의'라는 세 글자가 중간

    형법에 새로 생긴 '벌금 50억원'

    '황제노역' 판결이 온 세상을 뒤흔들자 국회가 형법 제70조 제2항을 신설하였다. 환형유치기간을 벌금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은 300일 이상,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은 1000일 이상으로 강제하였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선을 벗어난 재량 판단이 급기야 '기본법'인 형법의 개정으로 이어졌다. 대의제 하에서 국회가 국민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문제 상황을 바로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선 것 자체는 탓할 바 아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정부입법보다 절차가 간편한 의원입법이 빛을 발한 경우다. 이번 개정 형법의 입법 취지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법률은 그 입법 취지와 내용만이 아니라 법체계와의 정합성도 따져봐야 한다. 의원입법은 심의가 불충분하면 졸속 입법이 될

    주취감경

    남재희 선생의 책 '통 큰 사람들'에 나오는 얘기다. 1970년대 유신 후반 무렵 민기식 국회의원이 술을 많이 마시면 "박정희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어. 개헌하자는 김영삼 얘기가 맞아."라고 발언하였다. 서슬 퍼런 긴급조치 제9호는 유신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만 말해도 처벌 대상이었다. 예비역장성이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민기식은 골프를 치다가 중앙정보부에 전격 연행되었다. 중정은 고민이 깊었다. 육군참모총장과 국회국방위원장을 지낸 현역 국회의원에다가 박 대통령이 총애하는 만주 건국대 출신 예비역장성이 긴급조치를 위반했다고 공개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고, 그냥 놔두기도 뭣하여 꾀를 냈다. "장군님. 그때 술에 만취하여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르시지요?" 주취감경으로 용서해 주겠다는 묘책이다. 그런데 민기식 왈, "아

    팀 플레이

    사회가 전문화되고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자꾸 줄어든다. 혼자서도 물론 할 수야 있겠지만 뭔가 불안하다. 법조실무에서 철저한 팀 플레이가 점점 더 강조되는 이유다. 팀 플레이는 전문화된 로펌이나 굴지의 기업에서는 철칙이다.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에서 각자 바쁜데도 불구하고 수시로 모여서 회의를 하여 중지를 모으는 것도 팀 플레이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다. 머리를 맞댄 토론을 통해 사안을 정리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그런데 회의가 회의답기 위해서는 회의 참여자가 미리 안건과 관련 자료를 어느 정도 검토하는 것이 기본이다. 각자가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고 회의에 임해야 활발한 의견 개진과 실질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그러니 한 사람의 입만 쳐다보고 받아쓰기만 하는 회의, 한 사람만 자료를 읽

    판례의 변경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대법원 판례가 변경된 경우일 것이다. 과거에,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여 본인을 기망하고 착오에 빠진 본인에게서 재물을 교부받은 경우, 사기죄만 성립하고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었다(1983. 7. 12. 선고 82도1910 판결). 이 판례는 판례공보에도 실려 있는 중요판결이다. 사법연수생 시절에 자치회 차원에서 판례공보를 책 형태로 복사 제본한 것으로 공부하였다. 1년 치 판례공보를 두 권 정도로 합치면 두툼한 책이 된다. 형사재판실무 시험에서 죄수(罪數)를 물어보는 것은 변별력도 있어 당연히 예상문제였다. 그러니 1984~1985년에 연수원을 다닌 필자 기수에서는 1983년의 위 대법원 판결은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판례

    영화 '변호인'의 추억

    갑오년 최초로 1000만명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부산의 노무현 변호사와 부림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서 요즘 장안의 화제다. 영화에는 '송변'이 개업 초기에 부동산등기 전문이라고 적힌 명함을 뿌리고 다니고 여직원이 없어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엄혹한 1980년대 물고문 장면이 불편하기는 하였지만, '노변'의 명함과 다방커피와 관련된, 필자 개인의 추억이 떠올라 혼자 미소를 지었다. 1985년 부산 법원에서 6개월간 시보를 하였다. 시보 15명이 교실 같이 큰 사무실을 함께 썼다. 부민동 법원청사 중 나중에 부산고등법원, 현재 동아대 로스쿨 건물로 재건축된 낡은 별관 2층이었다. 창밖으로는 마당이 있었다. 꺼벙하게 생긴 40살 정도 되는 남자가 가방을 들고 시

    갑오년, 경장(更張)의 길

    새해는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다. 120년 전인 1894년이 바로 갑오년이었다. 그 해 창업(創業) 500년이 지난 조선은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통해 근대국가체제를 확립하려고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 불리는 개혁조치를 시도했다. 1895년에는 법률 제1호 재판소구성법을 제정하여 근대사법제도를 도입하였다. '기무'라는 용어는 '기무사령부'에 남아 있으나, '경장'(更張)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경장은 요즘 말로는 개혁이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당 태종이 신하들에게 창업과 수성(守成)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방현령은 창업이 어렵다고 하였으나, 위징은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답했다. 창업도 수성도 다 어렵지만,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 그러나 수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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